보험 가입 품목도 제한적 … 농가 재해에 무방비

최근 기록적인 폭우로 농작물 피해가 심각한 상황이지만, 정작 농민들의 믿을 구석인 농작물 재해보험이 현실과 괴리된 기준과 보상범위로 실효성 논란을 빚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지난 16일부터 21일까지 집중호우로 인한 농작물 피해 면적은 2만9,448ha에 달하며, 농경지 유실·매몰 피해만도 250ha에 이르는 것으로 잠정 집계됐다. 이는 서울시 면적의 절반에 달하는 규모다.
이처럼 피해 규모가 전국적으로 확산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현장에서는 보험 제도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충남 아산에서 배 과수원을 운영하는 한 농민은 “보험에 가입돼 있어도 실제 피해 면적은 나무가 식재된 가식면적만 따져 산정한다”며 “농장 전체가 침수됐는데도 피해율이 낮게 계산돼 제대로 된 보상을 받지 못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이어 “나무가 완전히 고사하지 않으면 피해로 인정되지 않는다”며 “겉으론 멀쩡해 보여도 침수로 생육이 위축돼 수확량 감소 등이 우려되는데, 이 같은 잠재 피해는 아예 지원 대상에서 제외된다”고 지적했다.
시설농가들은 이번 폭우로 모종이 완전히 침수됐지만 보험 대상이 아니어서 전액 손실을 떠안게 됐다.
경남 산청의 한 딸기농가는 “모종을 키우는 과정도 분명히 농사의 시작인데, 보험에서는 인정하지 않고 있다”고 한숨을 쉬었다.
영농자재에 대한 보상 기준도 현장 농민들의 불만을 키우고 있다. 과거에는 상토와 배지 등도 일부 보상 항목에 포함됐으나 현재는 ‘소모품 및 동산시설’로 분류돼 지원을 받기 어렵다.
전남 나주에서 딸기를 재배하는 한 농민은 “배지의 경우 한 번 구입하면 최소 10년은 사용하는데, 보험사는 이를 일회용 소모품으로 본다”며 “침수 시 병균 오염으로 전부 교체해야 하고, 비닐하우스 한 동당 수백만 원의 비용이 발생하지만 전액 농가 부담”이라고 호소했다.
보험 가입 품목이 지나치게 제한적이라는 점도 현장의 비판을 사고 있다. 특히 화훼 분야의 경우 재배 품목이 수십 종에 이르지만, 보험 가입이 가능한 품목은 국화·백합·장미·카네이션 단 4종에 불과해 가입조차 할 수 없다.
충북 음성에서 선인장을 재배하는 한 농민은 “보험 가입 자체가 막혀 있다 보니 재해나 피해 상황에 대해 아무런 대비책이 없다”며 “예측 불가능한 기후 속에서도 안정적으로 농사를 지을 수 있도록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