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 독자 대담 / 과수산업, 품목 중심 조직화가 해답이다
초대 독자 대담 / 과수산업, 품목 중심 조직화가 해답이다
  • 권성환
  • 승인 2025.06.11 1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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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수 없는 원예 없고, 품목농협 없는 과수산업도 없다”
기후위기·유통난 앞에 구조개편은 선택 아닌 필수

■ 윤익로 - 전 한국과수농협연합회장 /  장호열 - 본지 편집국장

기후위기와 통상환경 변화, 인력난과 유통 불균형 등 복합 위기에 직면한 우리 과수산업은 지금 중대한 기로에 서 있다. 산업의 지속가능성을 좌우할 핵심은 구조개편이며, 그 중심에는 ‘품목 중심의 조직화’가 있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특히, 생산자 중심의 협동체계 회복과 품목농협의 본래 정체성 강화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로 부상하고 있다.
이에 본지는 창간 30주년을 맞아, 초대 독자이자 과수산업 조직화의 산증인인 윤익로 전 한국과수농협연합회장을 만나 품목농협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우리 농업이 나아가야 할 미래 30년에 대한 고견을 들었다.

▲본지 초대 독자이자 애독자로서 항상 격려를 아끼지 않으심에 감사드립니다. 본지가 원예산업 발전에 미력이나마 도움이 되고자 걸음을 뛴지 어언 30년이 됐습니다. 저희 신문과 같이 하시면서 지켜 봐 왔던 소회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 신문은 시대를 담는 그릇이며, 농민의 목소리를 전달하는 수단이다.
원예산업신문이 창간될 당시, 원예인의 권익을 대변해 줄 언론은 거의 없었다. 나는 전국을 다니며 품목조합의 독립성과 필요성을 외쳤지만, 중앙회 중심 구조 속에서 늘 고립돼 있었다. 제도권의 언어가 현장의 언어를 덮고, 농민의 현실은 공론장에서 다뤄지지 않았다.
그런 시절, 원예산업신문은 단순한 매체가 아니었다. 침묵하던 언론 사이에서 이 신문은 농민의 이야기를 기록했고, 중앙회와의 갈등에도 흔들리지 않고 문제의 본질을 짚어왔다.
과수연합회를 창립할 당시, 장소 하나 구하기도 쉽지 않았고, 조직 구성을 놓고도 견제가 심했다. 대부분의 언론이 외면할 때, 원예산업신문은 연합회 창립의 의미와 품목농협의 존재 이유를 지속적으로 조명했다. 그 보도는 여론의 흐름을 바꾸었고, 내 외침을 사회적 논의로 끌어올리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언론은 싸우는 이의 손을 잡아야 한다. 단순히 소식을 전하는 데 그치지 않고, 공동체가 가야 할 길을 함께 고민하는 나침반이어야 한다.
원예산업신문은 지난 30년간 글로 싸우고 지면으로 연대해왔다. 나는 지금도 이 신문을 ‘동지’라 부른다. 언론은 원래 그렇게, 현장과 함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국내 원예산업의 근간을 이루어 오고 있는 우리나라 과수산업의 변천에 대해 회고해 주시지요.

- 과수산업은 단순한 작목의 축적이 아니라, 품목 중심 협동조직의 형성과 발전 역사와 맞닿아 있다.
1917년 경북 능금조합 설립을 시작으로, 1920~40년대 배·예산·충북·전주 등지에 품목별 조합이 생기며 전국적으로 확산됐다. 이들 조합은 고부가가치 품목을 기반으로 한 생산자 중심 조직이자, 지역 단위 품목특화의 출발점이었다.
그러나 1961년 농협법 제정 이후 정부는 단위조합 중심으로 구조를 재편했고, 특수조합은 ‘품목농협’이라는 이름으로 제도권에 흡수됐다. 형식은 유지됐지만, 독립성과 자율성은 크게 제약을 받았다. 나는 협동조합의 본질은 현장의 필요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강조해 왔다.
사과, 배, 감귤, 복숭아, 포도 등 주요 과수는 각각 품종과 시장 구조가 달라 일괄된 체계로는 대응이 어렵다.
품목농협은 생산자 중심의 세밀한 대응 조직으로서, 단위조합과 다른 역할과 정체성을 가진다. 과수는 지역 산업이자 농민 생계의 기반이다.
배는 충청, 사과는 경북, 감귤은 제주 등 지역별 특화 품목은 농민의 땀과 함께 협동조합 틀 안에서 성장해왔다.
과수 품목은 생산을 넘어 지역 소득과 문화의 정체성으로 기능해왔다.
현재 과수산업은 기후변화, 수입 개방, 유통구조의 불합리, 인력난 등 복합적 도전에 직면해 있다.
냉해·일소 피해와 재배적지 북상은 현실로 다가와 있으며, 이대로면 산업의 지속가능성도 위협받는다.
그러나 나는 과수산업이 여전히 농업의 중심축이라 믿는다.
과수 없는 원예는 없고, 품목농협 없는 과수산업도 있을 수 없다.

▲원예인들의 권익 보호를 위해 협동조합 활동을 하시면서 원예농협의 최다선 조합장으로 많은 업적을 남기셨는데, 품목농협의 역사와 앞으로 나아갈 방향에 대해 말씀해 주시지요.

- 품목농협은 단위조합과 본질이 다르다. 출발부터가 농민의 필요에서 비롯됐고, 생산부터 유통, 수출까지 같은 작목을 중심으로 고통과 성과를 함께 나누는 조직이다. 그 뿌리는 특수조합이며, 조합장은 주권자가 아니라 현장을 대표하는 봉사자라는 인식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일부 품목조합은 신용사업에 치우치며 본래의 사명을 흐리게 만들었다. 품목농협의 정체성과 존재 이유에 대한 회의가 제기된 것도 이 때문이다.
앞으로 품목농협은 현장 중심의 특수성과 자율성, 책임성을 다시 회복해야 한다. 단순한 경제조직을 넘어, 생산 기반을 지키고, 작목별 전략을 주도하며, 정부 정책에 대안을 제시하는 전문조직으로 자리매김해야 한다. 그것이 품목농협 본연의 길이며, 농업 구조 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유일한 방향이다.

▲한국과수농협연합회가 최근 과수산업의 큰 기둥으로의 역할을 해 내고 있습니다. 이 과수농협연합회를 회장님께서 창립하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 창립배경과 그동안의 문제점, 그리고 앞으로 나아갈 방향에 대해 말씀해 주시지요. 그리고 창립 과정에 있어 원예산업신문이 기여한 부분은 무엇이라 생각하십니까.

- 과수농협연합회는 절박함에서 시작된 조직이다. 당시 품목농협들은 중앙회 체제에서 정책 결정과 자금 배분 등 모든 면에서 소외됐고, 현장을 대변할 목소리는 어디에도 없었다. 누구도 나서지 않던 상황에서, 품목농협 간 연대를 구축하고 과수산업의 공적 발언권을 세우기 위해 연합회를 창립했다.
창립 당시에는 법적 지위도, 예산도 없었고, 조합 간 이해관계도 복잡했다. 하지만 연합회는 단순한 회의체가 아니라, 품목농협의 실질적 구심점이 되어야 한다는 믿음으로 하나씩 기반을 다져왔다.
이 과정에서 원예산업신문의 역할은 작지 않았다. 당시 대다수 언론이 중앙회 눈치를 보던 가운데, 품목조합의 자율성과 독립성을 꾸준히 보도하며 연합회의 설립 취지와 필요성을 공론화해주었다. 현장의 입장을 대변하고, 침묵하던 구조 속에서 연대의 목소리를 대신 전한 언론이었다.
앞으로 연합회는 단순한 협의 기구를 넘어, 정책을 제안하고 유통 전략을 주도하는 실천조직으로 거듭나야 한다. 중심에는 여전히 품목농협이 있어야 하며, 그 과정에서 원예산업신문과 같은 현장 중심 언론의 동행이 중요하다.

▲과수농협연합회 주 회원이 원예농협으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각각의 역할은 무엇이라 생각하십니까.

- 과수산업은 농민 개인이 대응하기에 구조적으로 벅차다. 유통, 가격, 수급의 불안정은 조직의 힘으로만 조정이 가능하며, 품목 단위 협동 없이는 시장에서 살아남기 어렵다.
이런 구조에서 원예농협은 산지 기반의 실무 조직이다. 생산자와 가장 가까운 현장에서 품질 관리, 조직화, 공동출하, 물류 기반 구축 등을 맡고 있으며, 산업의 기초를 실질적으로 책임지는 주체다.
과수농협연합회는 개별 농협의 공동 이익을 조율하고 정책 대응, 제도 개선, 수출 전략 수립 등 상위 기능을 담당하는 전략 조직이다. 원예농협이 손발이라면 연합회는 머리다. 방향 없이 움직일 수 없고, 실행력 없는 전략은 의미 없다.

▲앞으로 우리나라 과수산업이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한다고 보시는지.

- 경쟁력은 기술이 아니라 구조에서 나온다.
첫째, 품종 다양화와 대목 개선이 시급하다.
둘째, 기후변화에 대응할 스마트 시설과 방제 시스템이 현장에 뿌리내려야 한다.
셋째, 유통과 수출은 개별이 아니라 조직 단위로 협동화돼야 한다.
이 모든 전략의 중심에는 ‘조직화된 품목농협’이 있어야 한다.
혼자서는 버틸 수 있어도 바꿀 수는 없다. 과수산업은 단체전이다. 전략 없는 개별 생존에는 미래가 없다.

▲창간독자이자 애독자로써 본지에 바라는 바가 있으시다면.

- 부디 “언론이 언론다워야 한다”는 말을 잊지 말아야 한다.
원예산업신문은 이미 30년 동안 현장을 지키고 농민의 말에 귀 기울여온 언론이다.
앞으로는 단순 정보 제공을 넘어, 농업 정책을 선도하고, 조직화의 방향을 제시하며, 현장의 여론을 묶는 구심점이 되어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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