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으로 보는 한국문화
꽃으로 보는 한국문화
  • 원예산업신문
  • 승인 2005.11.29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국화
▲문학△열사·은사·군자=이 시에서 읊어지고 있는 울 밑의 국화는 아마도 속진에 오염되지 않고 불어오는 찬바람에도 늠름하게 서 있는 청초한 들국화일 것이다.탈속의 시인 도연명은 거기에서 자기의 이상향을 발견했는지 모른다.동쪽 울 밑에 석양이 비스듬히 떨어지는 오후, 풍상이 섞어치는 속에서도 향기를 잃지 않고 있는 한 송이 노란 국화를 꺾어 들고 백만년 푸른빛을 지니고 있는 남산을 우두커니 바라보며 아득히 먼곳에 눈을 보내고 있다. 그리하여 작자의 심경이 자연과 국화 속에 용해되어 혼연일체의 경지에 이르고 있는 것이다.국화의 아름다움을 자연과 인생에 조화시켜 나타낸 도연명의 이 시는 동양예술의 진수를 나타낸 것으로 평가되었다.그리하여 이 시 가운데 “채국동리하 유연견남산”이란 짧은 구절은 오랜 세월 많은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며 애창되었다. 그리고 국화를 사랑했던 도연명은 중국의 화신묘에 9월을 대표하는 국화의 신으로 모셔져 있다.국화를 소재로 한 시가 가운데는 국화를 군자에 비유하여 읊은 경우를 볼 수 있다.미미한 풀이지만 그윽하고 곧은 풍취를 지녀바로 군자와도 같구나이런 군자를 만날 수 없으니그냥 이 꽃하고나 친하려 하네-고징후, <영국>, 《해동시선》고징후는 국화의 그윽하고 곧은 품위를 군자에 비유하고 있다. 그리하여 국화와 같은 군자를 만날 수만 있다면 그와 교우를 하고 싶으나 만날 수 없으니 국화하고라도 친하게 지내고 싶다고 하고 있다.국화가 군자를 상징하다보니 국화분을 집안에 들여 놓고 이를 친구나 가족에 비겨 읊은 시를 볼 수 있다.가을이 되자 우리 집엔 새 권속이 불었는데희고 누른 산국화 두 세가지가 그것일세-남병철, <국>중에서, 《규재집》조선 순조 때의 재상이던 남병철은 이 시에서 국화를 정다운 한집안의 식구에 비유하고 있다.△야국=시의 소재로써의 국화는 정원에 있는 정국과 분국 그리고 야국이 그 대상이 된다. 이 가운데는 특히 정원의 동쪽 울타리 밑의 국화가 가장 많이 시의 소재로 등장한다.그러나 특히 들국화를 사랑한 시인도 없지 않았다.조선 선조 때의 문신이자 학자인 조호익은 개울가에 소옥을 짓고 들국화가 핀 것을 바라보며 즐겼는데 “들국화야 말로 진정한 천향을 지니고 있다”《지산집》, <야국>고 하면서 들국화를 매우 사랑했다고 한다.그리고 현대시인들은 너무 인위적인 원예종에 대해서는 거부감을 느끼고 오히려 소박하고 청초한 들국화를 선호한다.가을 하늘이 엷게 흐리니화악의 그림자도 침침하구나국화 떨기는 타향에서 눈물짓게 하고외로운 등불은 이 밤의 내 마음 같구나-백대붕, <추일>, 《대동시선》위 한시는 국화를 주제로 한 시는 아니다 그리고 들국화란 표현을 직접 사용하고 있지는 않지만 그 내용으로 보아 여기서의 국화는 들국화를 가리키고 있음이 분명하다.들국화는 들판이나 야산에서 피어난다. 가을이 되면 고향의 들판에 지천으로 피어나는 것이 들국화이다.그래서 타향에서 들국화를 보게 되면 마음이 고향으로 달려간다. 그리고 고향이 그리워지고 어딘지 모르게 외로움을 느끼게 된다. 고향을 떠나 사는 사람에게 들국화는 고향을 생각나게 하는 망향초인 것이다.들국화는 본래 임자가 없는데차가운 꽃은 누구를 위해 피었는고길가는 나그네가 꽃을 꺾어말 위에서 새로운 시를 읊으리-홍세태, 《야국》, 《유하집》홍세태는 가난했지만 호방한 위항시인이었다. 국화를 소재로 한 시를 여러 수 남기고 있다.가을바람이 불면 들국화는 산과 들을 장식한다. 산기슭이나 개울가 언덕이나 길가의 잡풀 속에서 청초한 모습을 드러낸다.정원의 울타리 밑이나 분에 심은 재배국화가 아니니 임자가 있을 리 없다. 누구를 위해서가 아니라 아무도 찾아 줄 사람이 없어도 스스로 호젓이 피어난다.그러나 들국화는 온천지의 가을을 장식하여 가을을 더욱 가을답게 만들고 있다. 길가는 나그네가 말에서 내려 몇송이를 꺾어 간다. 그는 그윽한 들국화 향기에 취하여 새로운 시상에 잠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