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비관세 장벽 정조준 … 시장 개방 압박 강화
고품질·저가 공세 … FTA로 관세까지 사라져
트럼프 2기 행정부가 한국의 위생·검역(SPS) 조치를 ‘비관세 무역장벽’으로 정조준하면서, 미국산 사과 수입 현실화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미국 무역대표부(USTR)가 지난 3월 발표한 국별무역장벽보고서(NTE)를 통해 한국의 SPS 제도를 사과를 비롯한 원예 농산물의 수입을 가로막는 장벽으로 지목하며, 시장 개방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기 때문이다.
외국 농산물이 국내에 들어오려면, 관세와는 별개로 국제식물보호협약(IPPC)과 세계무역기구(WTO)의 SPS 규정에 따라 8단계의 수입위험분석 절차를 거쳐야 한다. 이는 국내에 존재하지 않는 병해충의 유입을 차단하기 위한 조치다.
현재 미국·일본·뉴질랜드 등 11개국이 사과 수출을 위한 수입위험분석 절차를 밟고 있다. 미국산 사과는 현재 2단계에 있다.
그러나 최근 미국 정부의 통상 압박이 강해지면서 절차가 급물살을 탈 경우, 미국산 사과의 수입 허용이 현실화될 가능성이 높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의 ‘2023 해외 과수산업 경쟁력 실태조사’에 따르면, 미국은 연평균 400~500만 톤을 생산하며 세계 2위의 사과 강국으로 손꼽히고 있다. 수출량만 연간 70만 톤으로 한국의 연간 전체 사과 생산량을 뛰어넘는 수준이다. 특히 가격 경쟁력 면에서도 미국산 사과는 국내 평균 판매가보다 18.2% 낮은 것으로 조사됐다.
품질 면에서도 미국산 사과는 국내산과 비교해 경쟁력이 떨어지지 않는다. 미국과 한국 양국에서 모두 6개월 이상 거주한 소비자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미국산 사과의 당도와 품질에 대한 선호도가 국산 사과와 거의 동등하거나 일부에서는 오히려 우위라는 평가가 나타나기도 했다.
관세 또한 미국산 사과 진입의 걸림돌이 되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이미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따라 부사(후지) 품종을 제외한 모든 품종의 사과에 대한 관세가 철폐됐으며, 부사 품종의 관세마저 오는 2031년이면 완전 철폐를 앞두고 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은 앞서 발표한 보고서를 통해 사과 수입이 전면 허용될 경우 국내 사과 산업은 연평균 4천억 원 이상의 피해와 농업 GDP 6천억 원 규모의 손실이 발생할 것으로 예측했다.
서병진 한국사과연합회장(대구경북능금농협 조합장)은 “국내 대표 과일인 사과 시장이 뚫리면, 배나 단감 등 다른 주요 과일 품목까지 연쇄적으로 무너질 수 있다”며 “이는 결국 한국 농업의 생산 기반 전체를 위협하는 결과로 이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aT 관계자 역시 “미국 사과는 높은 생산성과 다양한 품종, 뛰어난 품질 경쟁력으로 국내 사과와 정면 경쟁할 수 있는 수준”이라며 “검역이 풀리면 미국산 사과 수입이 국내 시장에 큰 타격을 줄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