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으로 보는 한국문화
꽃으로 보는 한국문화
  • 원예산업신문
  • 승인 2005.12.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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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화는 중국이 그 원산지라고 한다. 그리고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다. 중국의 오래된 기서의 하나인 《산해경》에는 “여궤의 산에 국화가 많이 있다”하고 굴원의 <초사>에는 “아침에는 목란(木蘭)의 이슬을 마시고 저녁엔 가을 국화의 꽃을 씹는다”고 한 것으로 보아서도 이를 짐작할 수 있다.우리나라 재배 국화의 기원에 대해서는 《양화소록》에서 고려 충숙왕 때 원나라에서 학정홍·소설백 등 여러 품종의 국화를 다른 꽃들과 함께 도입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그러나 우리나라에도 오래전부터 국화는 있었다. 중국 송나라 때의 양국 대가인 유몽인 <국보>에는 품종에 신라국의 이름을 들고 일명 옥매 또는 능국이라 한다고 기록하고 있고 또 일본의 《왜한삼재도회》에서는 4세기 경에 백제에서 청·황·홍·백·흑 등 오색의 국화가 일본에 수출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또 《고려사》에는 고려 의종 14년(1160년) 9월에 왕이 국화를 감상했다는 기록을 볼 수 있다.이로 보아 우리나라에서도 삼국시대 또는 그 이전부터 이미 국화가 있었고 중국으로부터 도래된 국화와 더불어 재배 또는 교류되었다고 추정할 수 있다. 따라서 우리나라도 중국과 같이 국화의 원산지로 보아야 할 것이다.그런데 백제에 있었다는 흑색 국화가 실제로 어떤 꽃이었는지를 알 수 없다. 짙은 붉은색을 흑색이라고 했는지도 모른다. 《습유기》에는 중국의 종남산의 오로동비에 “영수는 한의 호묵인데 검은 국화가 있어 그 빛이 먹과 같아 옛날에는 그 즙으로 글을 썼다”고 하였는데 그것과 같은 종류였는지 지금은 어느 것이나 알 길이 없다.국화 재배는 그후 계속 발전하여 품종의 수도 많이 증가하였는데 《양화소록》에는 20종, 또 《화암수록》에서는 황·백·홍·자 등 도합 154종이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유명한 유몽의 《국보》에는 35종의 이름이 등재되어 있다.국화의 한명 별호는 그 품종만큼이나 많다. 국화의 옛이름은 《본초강목》에서는 절화·여절·여화·여경·일정·갱생·부연년·치장·금예·음성·주영 등으로 적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이름 가운데는 여자의 성기를 연상하여 붙여진 것이 많다. 그것은 국화의 존귀함을 생에 대한 신비한 상징성과 연계시켜 붙여진 것으로 짐작된다.국화의 별명을 황화(黃花) 또는 황예(黃蘂)라 하기도 했는데 이는 그 꽃빛이 황색이기도 하지만 황의 사상이 중국 민족에 있어서는 신성한 것의 대명사로서 지상지고(至上至高)의 군주를 황제(黃帝)라 했듯이 국화를 꽃의 왕자라 하여 황화라 한 것이다. 그 밖에도 국화는 그 상징성 또는 시제 등과 관련하여 은군자·은일화·중양화·오상·상하걸·황금갑·동리·동리가색 등으로도 불린다. 여기에서 ‘오상’이란 말은 서리에도 굴하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17~18세기에 유럽으로 건너간 국화의 꽃말은 ‘역경에도 꺾이지 않는 쾌활함’이었다고 한다. 그 밖에도 연년·수객·가우·일우·냉향 등이 있다.또 중국에서는 다음과 같이 국화의 색깔과 모양에 따라 매우 매혹적이며 세련된 이름들을 가진 것이 있다고 한다.야생 국화종과 비슷한 노란 단추 모양의 국화는 ‘별이 가득한 하늘’이라 불리며, 하얀 깃처럼 생긴 국화는 ‘거위 깃틀 관’이라 하고 노란 깃처럼 생긴 국화는 ‘붉은 실’이라 하고 깔죽깔죽한 커다란 자줏빛 국화는 ‘신선들의 복숭아로 만든 술에 취한 국화’라고 하고 중심부가 노랗고 커다란 한송이 흰 국화는 ‘옥쟁반을 받친 황금의 잔’이라 했으며 섬세한 꽃잎의 변종들은 ‘솔 침상엽’또는 ‘용의 수염’이라고 불렀다. 붉은 바탕과 흰 점이 있는 것은 ‘단풍잎과 갈대의 꽃’이라고 했고 붉은 선 무늬의 흰 국화는 ‘붉은 바탕에 덮인 백설’이라 했는데 거기엔 눈을 찬미하는 어린 소녀나 중앙 아시아 눈 덮인 불모지를 떠난 사랑하는 왕차오 췬을 연모하는 어린 소녀의 사연이 나타나 있다.우리나라에서는 목은 이색의 시로 말미암아 우리 예원에서는 상파란 이름이 흔히 사용되고 있다.들국화란 말은 국화의 종(種) 이름이 아니고 구절초·개미취·개쑥부쟁이 등과 같이 산야에 절로 피는 야생종 국화를 총칭하는 말이다. 그것은 문인들이 만들어낸 이름으로 우리의 정서속에 깊이 뿌리를 내려 우리들의 사랑을 받은 꽃이 되었다.이와 같이 국화는 그 아름다움이나 상징성과 관련하여 이를 사랑했던 많은 문인들이 각기 나름대로 새롭고 특수한 어휘를 사용해서 국화를 예찬한 글을 쓰다보니 그 속에서 국화의 새로운 별명이나 아호가 생겨났다. 이와 같은 현상은 오늘날에도 이어진다. 시인 이은상은 흰 국화의 화분을 집안에 들어놓고 ‘선생’이라 부르기로 했다는데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나는 오늘 백국화 한 분(盆)을 내 조그마한 서실로 뫼셔 드리며 스스로 ‘선생’이라 부르는 뜻은 세상이 하도 구지분하고 어지럽고 시속이 또한 얕고 엷어 미황속에서 허덕이므로 나는 물러나 조용히 이 꽃앞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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