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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속△식용·약용=국화는 봄에는 국화의 움싹을 데쳐 먹었고 여름에는 국화잎을 쌈으로 먹었으며 가을에는 국화꽃잎으로 화전을 부쳐 먹었고 겨울에는 국화 뿌리를 달여 마셨다고 한다.감국 포기 밑에서 나오는 샘물은 국화수라 하여 이 물을 장기간 복용하면 안색이 좋아지고 늙지 않으며 풍도 고칠 수 있다고 하였다. 또 국로수라 하여 국화꽃에 맺힌 이슬을 털어 마시기도 했다고 한다.국화의 효용에 대하여 《본초강목》에 이르기를 오랫동안 복용하면 혈기에 좋고 몸을 가볍게 하며 쉬이 늙지 않는다고 했다. 그밖에도 감기,두통·현기증에 유효하다고 했다. 그러한 약효를 얻으려면 꽃을 따서 그늘에다 말려 조금씩 물에 넣고 달여서 마신다. 술마신 다음날 국화 2~3송이를 달여 마시면 술이 깨고 머리가 가벼워진다고 한다.또 전술한 바와 같이 국화주는 두통을 낫게 하고 눈과 귀를 밝게 하는 등 여러가지 병을 없애는 데에 큰 효과가 있다고 믿어왔다. 국화주를 만드는 방법에 대해서는 제1권 제3장 제5절(화식문화)에서 설명하고 있다.고려가요 <동동>의 9월령에서는 다음과 같이 읊고 있다.9월 9일에 아으 약이라 먹는(9월 9일에 아! 약이라 먹는)황화고지 안해 드니(황국화가 집안에 드니)새셔 가만히애라(초가집 마을이 조용하여라)아으 동동다리△국침=국화꽃잎을 곱게 말려서 베개속에 넣거나 이불속에 넣어 그윽한 향기를 즐겼다. 이와 같이 국화꽃잎을 넣어 만든 베개를 국침이라 하였다. 국화 꽃잎을 베개에 넣을 때에는 주로 메밀 껍질을 섞어 넣는다. 국침을 베고 자면 머리가 맑아지고 단잠을 잘 수 있다고 하였다. 이것은 오늘날에도 두통치료의 민간요법으로 쓰이고 있다 한다. 《고려도경》에서는 중국사신의 일행으로 고려에 왔던 서긍이 고려인들의 향침에 대하여 소개하고 있는데 이것은 국침을 말한 것으로 보인다. 《고려도경》에서는 향침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흰 모시로 자루를 만들어서 그속에 향기로운 풀을 넣고 양쪽 마구리를 오무려서 만든 다음 비단으로 싼 듯한데, 거기에서 가는 금사로 무늬를 극히 정교하게 수놓아 다시 여기에 붉은 비단으로 장식을 한 바 그 무늬가 연꽃모양과 같았다.조선 현종 때에 시명을 떨쳤던 조수삼(1762~1849년)은 국침의 효용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읊고 있다.현기증이 있어도 온갖 약효 없더니의원이 이르기를 국침이 좋다 했다(중략)잠깐 베고 있어도 ‘중향국’에 들어간 듯높이 괴어 베면 감수곡이 부럽지 않도다효험도 신기하여 몸이 가뿐하고더욱 신기한 건 두 눈이 점차 밝아지네머릿속의 잡생각이 말끔히 가셔지고목욕하고 난 듯 그 기운 온몸에 퍼지네-조수삼, <국침>, 《추재시초》또 시인 서정주는 국침의 향기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황국은 그 잠 다 깬 황금의 내부와 같은 빛깔이 어리지도 야하지도 화려하잘 것도 없어서 그 빛깔이 우선 낯익은 어여쁜 아주머니 같아서 남 같지 않는게 좋지만 그 냄새에서는 또 우리에게 늘 영원에의 향수를 느끼게 하는 시골다움이 베어 나와서 좋다. 단군 할아버지의 어머니께서 사람 노릇하다 식품으로 삼았다는 그 시골중의 시골의 풀, 쑥과 한 계통의 냄새여서 좋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단군의 어머님을 본따서 그러는지 장미보다도 화려한 무슨 꽃 냄새보다도 이 시골뜨기 쑥이나 국화 냄새라야 안심이 돼 국화꽃을 말려선 베개를 만들어서 1년내내 그 냄새를 잠자리에서 맡고 지내지만, 이것은 저 먼 신시의 방향으로 향해서 우리를 늘 바로하기 위해서는 당연한 선택으로 생각된다.-서정주, <국화 에필로그>중에서△창호지의 국화 문양=옛날 민가에서는 흔히 햇살 밝은 창호지 문에 국화문향을 새겨 넣었다. 국화가 한창 피었을 때 화창한 날을 골라 깨끗한 꽃송이와 잎을 따서 창호지 문짝의 손잡이 가까운 곳에 꽃잎과 잎 두세 개를 자연스럽고 예쁘게 배치하여 바르고 다시 그 위에 창호지를 두겹으로 바른다. 그것은 주로 어머니의 손으로 이루어진다.이른 아침 햇살이 창문을 비추면 하얀 창호지 사이에서 국화꽃 무늬가 환희 드러난다. 특히 달밝은 가을밤에 은은히 비치는 문양의 흥취는 이루 말할 수 없다.가을이 깊어 울 밑의 국화가 모두 사라진 뒤에도 창호지 속의 국화는 겨울 내내 그 향취를 느끼게 해준다. 참으로 정겹고 소박한 민속이 아닐 수 없다.그러나 이제 국화 문양을 바를 창호지 문이 점점 사라져 가는 것이 아쉽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