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으로 보는 한국문화
꽃으로 보는 한국문화
  • 원예산업신문
  • 승인 2005.12.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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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인고와 지조=봄부터 울어대는 소쩍새의 슬픈 울음도, 먹구름 속에서 울던 천둥소리도, 차가운 가을밤에 내리는 무서리도 모두가 한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서이다. 그 뜨거운 정열과 향기를 풍기며 피어나는 생명을 위하여 그 많은 시간이 필요했고 천시와 지리의 우주적 섭리의 작용이 필요했던 것이다.서리속에서 피어난 국화를, 인생의 온갖 풍상을 다 겪고 나서 성숙한 모습으로 돌아와 거울앞에 선 누님과 같은 여인의 모습에 비유하고 있다. 여기에서 국화는 오랜세월 격정과 고통을 견디어 낸 인간의 인고를 상징하고 있는 것이다.△열사·은사·군자=고려말 정몽주는 국화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읊고 있다.꽃은 비록 내 말을 알아듣지 못하지만나는 그 꽃다운 마음을 사랑하나니내 평생 술잔을 들어본 일 없으나오늘은 너를 위해 잔을 들어 보리라내 평생 입을 벌려 웃어본 일 없으나오늘은 너를 위해 크게 한번 웃어 보리라오직 나는 국화를 사랑하나니도리는 번화하기 이를 데 없네-정몽주, <신축10월정전국화탄>, 《포은집》기울어져 가는 고려 오백년 사직의 운명을 외로이 받쳐보려는 그에게는 국화만이 그의 충절을 이해하고 위로해 주기에 더욱 국화를 사랑하게 되었고, 비록 말못하는 꽃이지만 무언의 대화를 나누면서 구곡간장 마디마디 맺힌 한과 고민을 호소하고 있는 것이다.온갖 유혹과 협박에도 굽히지 아니하고, 일편단심 한결같이 충절을 지키고자 하는 다짐이 국화속에 감돌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서 도리는 이성계 일당을 뜻함이리라.한가위 지난 열엿새 밤에도달빛은 다시 휘영청 밝고중양 지난 구월 십일 국화도그 향기 변함없이 그윽하네세속으 뇌동하기 좋다 하지만때 지나고 보면 기대에 어긋나는 것을나 혼자 이 고운 꽃을 사랑하나니늦은 계절에 나와 뜻을 같이 하네바람따라 향기를 맡으려 해도세속의 구린내 묻어올까 염려되어차라리 좋은 술에 꽃잎을 띄워 마시고얼근히 취한 채로 저녁을 맞으려네-이곡, <십일국>, 《가정집》이 시에서는 8월 보름 다음 날인 16일의 달빛과 또 중양절 다음날인 10일의 국화 향기를 들고 있다. 9월 10일은 중양절과는 불과 하루 뒷날임으로 그 사이에 국화의 향기가 쇠해졌다고 말하기는 어렵다.그러나 사람의 마음은 국화가 한창시절일 것이라는 상징적인 날짜인 9월 9일을 지났기 때문에 어제보다는 어딘지 모르게 시들어진 것으로 생각하게 마련이다.그래서 사람들은 십일국에 더욱 아쉬운 정감을 보내게 마련이다. 여기서는 16일 밤의 달빛과 10일의 국화로 하여 더욱 은일의 의미가 고조되고 있는 것이다.시세의 변화에 좌우되기 쉬운 이 사회에서 개인의 뜻을 펴 나간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시세에 따라 뜻을 굽히고 만다. 그러나 자신은 자기와 뜻을 같이하는 국화를 사랑하며 세속에 물들 수 없다는 것이다.“불어오는 바람에 국화의 향기를 맡으려다가 세속에 물든 나쁜 것까지 묻어올까 저어하며 차라리 꽃잎을 술에 띄워서 마시리라”고 한 표현에는 강한 현실부정의의미가 내포되어 있다.나와 국화는 누가 더 어렵게 살까하찮은 벼슬이나 했다고 나를 비웃겠지꽃다운 마음 하나되어 서로 비추는데쓸쓸한 사립문을 달 아래 바라보네-홍세태, <월하대국>, 《유하집》홍세태(1653~1725년)는 비운과 가난 속에서 살면서도 풍류생활을 즐겼던 위항시인이다. 낮은 벼슬을 하고 가난하게 사는 것을 결코 부끄럽게 생각지 않았다. 그는 국화를 통해서 고고한 은사의 품위를 배우고 덕을 쌓는 것으로 낙을 삼았다.국화를 소재로 한 우리나라의 시가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사람은 중국의 도연명이다. 전술한 바와 같이 중국 역사상 가장 전형적인 은사로는 도연명을 꼽는다.그가 전원생활중에 마음속에서 우러나온 감정을 시로 표현한 것이 있다. 저 유명한 <음주>의 시가 그것이다.초가를 지어 변두리 마을을 살고 있으니수레의 시끄러운 소리 들리지 않는구나그럴 수 있느냐고 사람들이 묻지만마음이 세속과 머니 사는 곳은 저절로 변경과 같도다동쪽 울타리 아래에서 국화를 꺾어 들고고요히 먼 산을 바라다 본다(이하 생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