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으로 보는 한국문화
꽃으로 보는 한국문화
  • 원예산업신문
  • 승인 2005.12.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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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야국=들국화를 소재로 한 현대시 가운데는 노천명의 <국화제>가 있다.들녘 경사진 언덕에 네가 없었던들가을은 얼마나 적적했으랴아무도 너를 여왕이라 부르지 않건만봄의 화려한 동산을 사양하고이름모를 풀 틈에 섞여외로운 절기를 홀로 지키는 빈 들의 새악시여가-ㄹ 꽃보다 부드러운 네마음 사랑스러워거친 들판에 함부로 두고 싶지 않았다한아름 고이 꺾어 안고 돌아와책상 위 화병에 옮겨 놓고거기서 맘대로 화창하라 빌었더니웃음 거둔 네 얼굴은 수그러져빛나던 모양은 한잎 두잎 병들어가는구나아침마다 병이 넘게 부어주는 많은 물도들녘의 한방울 이슬만 못하더나?너는 끝내 거친 들녘 정든 흙냄새 속에맘대로 퍼지고 멋대로 자랐어야 할 것을...뉘우침에 떨리는 미련한 손이시들고 마른 너를 안고높은 하늘 시원한 언덕 아래묻어주려 나왔다 들국화야!저기 너의 푸른 천정이 있다.여기 너의 포근한 가-ㄹ(蘆) 방석이 있다.이 시는 들국화의 외로운 모습을 너무도 애틋하고 처량하게 읊고 있다.들녘 언덕 아래 이름 모를 풀속에 섞여 외롭게 피어 있는 들국화는 작자의 자화상일는지 모른다.거친 들녘에 함부로 두고 싶지 않아 고이 꺾어 돌아와 화병에 꽂아 두었다가 생기가 없어지자 다시 푸른 하늘 아래 갈 방석이 깔려 있는 그 벌판에 묻히게 된 그 가엾은 들국화의 모습에는 46세의 나이로 죽은 박명한 그의 운명이 비쳐 있는 것 같기도 하다.이제 들국화를 읊던 그의 무덤가에는 그가 그렇게도 좋아했던 들국화가 차가운 가을하늘 아래 외롭게 떨고 있을는지 모른다.또 들국화를 노래한 다음과 같은 아름다운 시가 있다.흰 구름이 떠도는 가을 언덕에한떨기 들국화가 피고 있는데그 누구를 남몰래 사모하기에오늘도 가련하게 구름만 돈다.실바람이 불어온 가을 언덕에말없이 들국화가 피고 있는데그 누구도 안오는 외로움 속에오늘도 가슴태워 기다려 본다.-장수철, <들국화>이 시는 아동문학가 장수철(이 지은 것이다. 이 노래는 김대현의 대표적인 가곡의 하나인데 가련한 들국화의 모습을 한국적인 가락에 담은 아름다운 곡이다.△국화와 술=앞에서도 설명한 바와 같이 시가에서 국화는 흔히 술과 짝을 짓는다. 여기에 다시 달 또는 거문고가 한 묶음이 되거나 또 벗이 참여하는 시를 볼 수 있다.춘삼월 봄바람에 곱게 핀 온갖 꽃이한떨기 가을국화만 못하구나향기롭고 고우면서 추위를 견뎌 사랑스러운데더구나 술잔 속까지 말없이 들어오네-이규보, <영국>, 《동국이상국전집》국화는 서리 내리는 늦가을 찬바람이 몰아오는데도 이에 굴하지 않고 아름다운 꽃을 피우므로 그것만으로도 사랑스럽기 그지없는데 그 꽃잎은 술잔에 들어와서 그윽한 향기를 보내주니 더욱 정답게 느껴지는 것이다.고려시대 이규보가 그의 문집에서 국화를 시제로 읊은 5수 가운데 2수는 술과 짝을 짓고 있다.술없는 꽃이야 있으나마나임없는 술이야 더욱 있어 무얼해세상사는 유유히 살아 별일 없으니꽃을 보며 잔을 잡고 노래 부르세-고의후, <영국>, 《이조명인시선》국화를 완상하는 데는 술이 있어야 한다고 한다. 거기다 임이나 벗이 있어 같이 대작할 사람이 있어야 흥을 돋울 수 있을 것이다.세속을 멀리하고 유유자적하며 살아가는 선비에게는 세상의 일이야 관심 밖이다. 술잔을 들며 국화를 완상하는 선비의 풍유와 마음의 여유를 볼 수 있다.창밖에 피운 국화 어제 핀다 구제 핀다나보고 반겨 핀다 구월이라 미처 핀다아야 잔 가득 부어라 띄워두고 보리라-작자 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