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정부가 최근 한미 국장급 관세 기술협의에서 한국 농산물 시장의 비관세장벽을 허물라고 압박한 것으로 확인되면서, 농업 현장엔 긴장감이 짙어지고 있다. 비관세장벽이 무너지면 사실상 국내 농업, 특히 농업 분야의 피해는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미국은 그간 국가별 무역장벽보고서(NTE)를 통해 한국의 위생·식물검역(SPS), GMO 관리 규제, 농약허용물질목록관리제도(PLS) 등을 지속적으로 문제 삼았다. 이번 협상에서도 미국 측은 한국 시장에 진입하지 못하는 미국산 사과, 배, 딸기, 핵과류 등 농산물에 대한 수입 규제 완화를 구체적으로 요구했다는 전언이다.
관세가 사실상 사라진 상황에서 한국 농업의 마지막 보호막은 안전과 품질을 앞세운 비관세장벽이었다. 그러나 미국의 요구가 현실화되면 값싼 수입 농산물의 범람은 물론, 국내 농산물의 경쟁력 하락과 생산기반 붕괴가 불가피해진다.
더 큰 문제는 이번 협상의 시점이다. 6월 3일 대통령 선거를 앞둔 상황에서, 현 정부가 이 문제에 대한 실질적인 협상력을 발휘하기는 어렵다.
결국 새 정부의 몫으로 넘어갈 가능성이 높다. 새 정부가 출범 초부터 한미 관계의 부담을 안은 채, 농업분야를 중심으로 미국과의 어려운 협상 테이블에 마주앉아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농업계는 이미 FTA와 같은 국제 통상협상 때마다 희생을 감내해왔다. 미국의 압박이 반복될수록 국내 농업의 희생은 상수가 되어선 안 된다. 농민들에게만 희생을 강요하는 무역 협상은 더 이상 정당화될 수 없다.
지금이라도 농업 현장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원칙과 명분 있는 협상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 미국의 일방적 압박에 휘둘려 농업이 또다시 희생양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정부는 명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