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산물 저율관세할당 졸속 심의
농산물 저율관세할당 졸속 심의
  • 나동하
  • 승인 2025.06.04 11: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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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원 감사결과 22차례 모두 서면 진행
“현장 의견 반영될 수 있는 거버넌스체계 정비 필요”
지난 3월, ‘WTO TRQ 양파 20,885톤 수입 규탄 기자회견’에 참석한 양파 생산자들이 고흥에서 수확된 양파를 들고 수입 중단을 촉구하고 있다.
지난 3월, ‘WTO TRQ 양파 20,885톤 수입 규탄 기자회견’에 참석한 양파 생산자들이 고흥에서 수확된 양파를 들고 수입 중단을 촉구하고 있다.

양파·마늘·생강 등 주요 농산물의 저율관세할당(TRQ) 수입 증량이 대부분 고작 나흘 남짓한 서면심의로 처리돼 온 것으로 확인됐다. 절차적 정당성과 정책적 타당성을 결여한 졸속 행정이 감사원 감사를 통해 드러나며, TRQ 제도 운용 방식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감사원이 지난 5월 발표한 ‘농산물 수입 및 양곡 매입에 대한 감사’ 보고서에 따르면, 농림축산식품부는 2022년 7월부터 2024년 9월까지 총 22차례의 심의회를 모두 서면으로 진행했다. 현행 법령은 정당한 사유가 없을 경우 출석회의로 심의회를 개최하도록 규정하고 있음에도, 이 기간 동안 대면 회의는 한 차례도 열리지 않았다.

특히 마늘, 생강, 양파 등 생산 기반과 시장 가격에 민감한 주요 품목에 대해 대면 토론 없이 수입 증량이 결정된 사례가 다수 확인됐다. 감사원은 이 가운데 5건에 대해 정당한 서면심의 사유가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실제 심의회는 평균 3.9일간 운영됐으며, 심의위원에게는 증량 사유와 물량 정도만 담긴 간략한 명세서만이 전달됐다. 사안의 중대성과 논의 필요성에도 불구하고 위원 간 논의 없이 일방적인 절차로 일관된 점에서, 심의회의 자문 기능이 사실상 무력화됐다는 지적이다.

자료 누락도 지적됐다. TRQ 증량을 요청할 때 의무적으로 제출해야 할 ‘생산농가 피해 영향’, ‘3년간 수급 전망’, ‘국내 생산실적’ 등 핵심 자료가 2022년 이후 7차례 증량 요청 과정에서 다수 누락된 것으로 드러났으며 기획재정부는 이를 보완 요청 없이 승인한 것으로 확인됐다. 감사원은 TRQ 증량과 같은 수입 결정이 충분한 정보와 검토 없이 이뤄진 결과, 위원회가 수출입 정책의 합리적 조정이라는 설치 목적을 달성하지 못했다고 명시하며, 농식품부와 기재부 양측 모두에 ‘주의 조치’를 내렸다.

이번 감사 결과에 대해 농업계 일각에서는, 올해 초 양파 TRQ 수입을 둘러싸고 제기된 논란과 무관하지 않다는 반응도 나왔다. 당시 농업인 단체들은 심의 절차의 투명성 부족과 수입 정책이 시장에 미칠 영향에 대해 우려를 표한 바 있으며, 이번 감사 결과가 이러한 우려의 정당성을 뒷받침해주는 사례라는 지적이다.

배정섭 전남서남부채소농협 조합장은 “이번 감사는 정책 결정 과정에서 산지가 구조적으로 배제돼 왔음을 보여준 것”이라며 “생산과 유통을 책임지는 현장의 의견이 실질적으로 반영될 수 있도록 거버넌스 체계를 정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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