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원예품종개발 어디까지 왔나?
우리 원예품종개발 어디까지 왔나?
  • 원예산업신문
  • 승인 2021.02.26 1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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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 가구 증가 중소과 사과 수요 꾸준히 증가

소비경향과 생산환경 변화에 따른 사과 품종 개발

권 순 일(농촌진흥청 국립원예특작과학원 사과연구소 연구관)
권 순 일(농촌진흥청 국립원예특작과학원 사과연구소 연구관)

◈ 품종 육성 방향

급증하는 1인 가구는 TV 프로그램뿐만 아니라 사회 곳곳에 많은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 사과 소비시장은 소포장 활성화와 조각 과일 판매증가 시기를 거쳐 컵 과일 소비 증가로 이어지고 있다. 실제로 최근 농업전망대회 발표 자료에 따르면 2010년 대비 2017년의 중ㆍ소과 사과 가격은 대과 대비 9~22% 상승하였다고 한다. 이는 일상 소비의 증가로 소비자의 과일 선호 크기의 변화에 기인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1인 가구 증가 등의 사회현상이 일시적이 아닌 것으로 예상되는 바, 중소과 사과의 수요는 꾸준히 높아질 것으로 생각된다.
기후변화 시나리오에 따르면, 우리나라 기후는 급변할 것으로 전망되며, 이로 인해 작물의 재배지, 생산량, 품질이 크게 변화할 것으로 예상한다. 지난 100년 동안 세계의 평균기온은 0.7℃, 우리나라는 이보다 더 높은 1.5℃ 상승하였다. 우리나라는 1980년대를 기점으로 온난화 현상과 관계되는 이상고온 현상이 그 이전에 비해 7배 정도 많이 발생하고 있다. 앞으로 온난화 현상은 점점 가속되어 21세기 중반쯤에는 현재보다 폭염은 두 배, 열대야는 여섯 배 정도 늘어날 것으로 학자들은 예측한다.
대구는 한때 초등학교 교과서에도 실리는 중요한 사과 산지였다. 하지만 지금은 대구와 그 주변에는 사과가 생산되지 않는다. 도시화 영향이 크지만, 온도가 너무 높아 맛있는 사과를 생산할 수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실제 경북 남부지역의 사과 재배면적은 1990년 7,958ha에서 2015년 1,787ha로 반의 반 가까이 줄어든 반면, 산지이고 비교적 온도가 낮은 경북 북부지역의 재배면적은 같은 기간 5,863ha에서 10,292ha로 두 배 가까이 늘었다. 주된 이유는 온도상승 때문이다. 겨울철이 너무 추워 사과 재배에 부적합하다고 여겨졌던 강원도 영월, 정선, 양구는 같은 기간 재배면적이 51ha에서 343ha로 6배 이상 늘어난 점은 주목해 볼 만한 부분이다. 단 25년 만에 사과재배 주산지는 경북 남부에서 경북 북부 산간지대로 옮겨졌으며, 이제 강원도 지역으로까지 확장되고 있다.
국립원예특작과학원에서는 이 같은 소비 환경 변화와 온난화와 이상기상을 대비한 품종들을 개발하고 있다. 크기와 색깔이 다양한 품종, 성숙기 고온에서도 품질이 우수한 품종, 꽃이 늦게 피어 늦서리 피해를 줄일 수 있는 품종, 자가결실성 품종, 고온에도 육질이 잘 물러지지 않고 즙이 많이 생기며 저장력이 좋은 품종 개발을 진행 중이다.

◈ 주요 품종

# 홍로
착색 양호하고 당도 높아

1990년대까지 추석명절 차례상에 올리는 사과 품종은 ‘쓰가루’, ‘홍월’ 등과 같은 일본에서 도입된 품종이 많았다. 이들 품종은 대부분 익는 시기가 추석보다 이르거나 늦어 과실이 물러지거나 덜 익어 소비자들의 원성이 잦았다. 이에 농촌진흥청에서 추석용 사과 품종 개발을 목표로 1988년에 만든 것이 ‘홍로’ 품종이다. ‘홍로’는 붉은색으로 착색이 양호하고 당도가 높다.
사과의 경우 품종육성에 대개 15~20년 정도 걸리나 ‘홍로’는 8년이라는 단기간에 선발된 품종이다. 육성목표가 확실하고 추석 출하용 사과가 절실했기 때문이다. ‘홍로’ 맞춤형 재배기술의 개발과 보급으로 재배면적이 급증하게 됐으며 고질적인 추석용 사과물량 부족을 근본적으로 해결하게 되었다.
‘홍로’는 특히 단맛이 많고 신맛이 비교적 적어서 신맛에 익숙하지 않은 어린이나 장년층에게 인기 있는 품종으로 알려지면서 우리나라 사과 재배 면적 순위에서 ‘후지’ 다음의 2위로 자리 잡았다. 또한 상온 저장력이 약 30일 정도로 기존 추석용 사과에 비해 2주 이상 되기 때문에 재배 농가뿐만 아니라 유통 상인들도 선호하는 품종이다.

# 아리수
고온에서도 착색 잘 돼

사과 ‘아리수’는 농촌진흥청 사과연구소의 영문명인 Apple Research Institute의 첫 문자만 딴 A.R.I에 빼어나다는 한자의 뜻을 가진 秀가 결합한 4차 산업시대에 어울리는 융·복합적인 품종명이다.
지구 온난화의 영향으로 여름철 고온이 가을까지 지속되는 달라진 우리나라 기후에서 과일이 익을 무렵 기온이 높은 지역에서는 착색을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아리수’는 고온에서도 색이 빨갛게 잘 드는 추석용 품종으로 단맛과 신맛이 적당하고(당도 15.9Brix, 적정산도 0.43%), 아삭아삭한 식감이 좋은 품종이다. 
너무 달기만 하지도 않고 새콤하면서도 단맛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아삭아삭한 사과로 가정에서 구입 후 상온이나 냉장 상태로 보관도 쉽고, 농가 입장에서는 병에도 강하고 수확 전 낙과도 적어 소득 증대에도 유리한 효자 사과이다. 과일 무게는 285g 정도의 중과이고 껍질에 줄무늬가 없이 골고루 붉은색으로 착색된다. 
‘아리수’는 8월 하순부터 출하가 가능하다. 무엇보다 숙기가 9월 상순으로 우리나라 1호 추석 사과인 ‘홍로’보다 빨라 국민 최대 명절인 추석이 빠른 해의 경우 ‘홍로’가 나오기 이전 제사 상차림에 과일 크기도 적당하고 특히 과형이 예쁜 국내 산 빨간 사과로 활용 가능하기에 소비자들의 주목을 끌기에 충분하다.

# 썸머킹
과즙 풍부하고 당산비 좋아

보통 햇사과라고 하면 초록색의 ‘쓰가루(아오리)’를 가장 먼저 떠올린다. 그러나 ‘쓰가루’를 맛본 사람이라면 대부분 껍질이 두껍고 과육이 질긴 텁텁한 맛없는 사과라고 생각한다. 이유는 제대로 성숙되기 50일 전부터 덜 익은 상태로 시장에 출하되기 때문이다. ‘쓰가루’는 8월 하순이 되어야 제대로 성숙하며, 원래는 초록색이 아닌 빨간색 사과다.
사실 덥고 다습한 우리나라의 여름은 서늘하고 건조한 중앙아시아가 원산지인 사과가 견디기엔 힘든 기후다. 우리나라의 기후 조건에서 제대로 성숙한 여름 사과는 금방 푸석거려 소비자들의 외면을 받는다. 사과연구소에서 여름에 수확할 수 있는 우수한 사과 품종을 육성하고자 노력한 결과, 여름사과 시장을 평정할 ‘썸머킹’ 품종을 개발하게 됐다. ‘썸머킹’은 7월 중순에 출하되는 품종으로 과즙이 풍부하고 당산비(당도 11브릭스∼14Brix, 산도 0.4%∼0.7%)가 좋아 여름사과 중 최고의 맛을 자랑한다. 과일 무게는 270g 정도이고 껍질은 줄무늬가 있는 붉은색으로 착색이 된다. 30%∼40% 정도 붉은색으로 착색됐을 때가 맛과 저장력이 가장 좋은 수확 적기이다.

# 피크닉
무게 220g 맛 뛰어나

우리나라에서 생산되는 사과는 300g 이상으로 큰 편인데 유럽이나 미국을 여행하다 보면, 휴게소에서 판매되는 사과는 대부분 테니스공 크기로 작다. 우리 기준에서는 매우 작아 보이지만 그 나라 사람들은 작은 사과를 주머니나 가방에 넣고 다니며 갈증 날 때 쉽게 꺼내서 먹는 것을 볼 수 있다.
사과연구소에서는 이런 점을 고려해 크기가 220g 정도로 크지 않고, 맛이 뛰어난 사과 신품종 ‘피크닉’을 육성했다. ‘피크닉’ 품종은 익는 시기가 9월 하순으로 외관은 ‘후지’ 품종과 비슷하나 크기가 220g 정도로 작다. 당도 14.5Brix, 산도 0.43%으로 당도가 높고 산도가 적당해 맛이 매우 좋다. 10월 상순에 도시 소비자를 대상으로 그 시기에 수확되는 사과 여러 품종들을 놓고 식미 검정을 했을 때 ‘피크닉’의 선호도가 가장 높았다. 경도도 높아 과육이 단단하여 유통 및 이동 중 압상에 의한 상처과 발생이 적고 씹히는 감이 좋다. 상온저장성이 좋아서 상온 30일 이상 가능하다.

# 루비에스
90g 무게 식미 우수

1인 가구의 증가와 핵가족화 등 사회 변화에 따라 최근 과실 소비 트렌드는  많이 바뀌고 있다. 소비 트렌드 변화를 미리 예측하고, 이에 대응하고자 농촌진흥청 사과연구소에서는 2004년부터 크기가 작은 사과 품종 육종 연구를 시작해서 2015년 세상에 첫 선보인 품종이 미니사과 ‘루비에스’이다.
이름만큼이나 예쁜 미니사과 ‘루비에스’는 8월 하순이 제철인 사과이다. 우리가 늘 먹어오던 사과와는 다르게 앙증맞고 귀여운 크기로 다 자라더라도 90g 내외의 무게다. 비교하자면 탁구공보다는 조금 크고, 테니스공보다는 작아서 미니사과라고 불릴만하다. 과실은 전체적으로 진한 빨간색으로 물들고 동그란 모양이며, 식미 또한 빠지지 않을 만큼 좋다(당도 13.9°Brix, 산도 0.49%). 상온에서 50일 이상 유통이 가능할 정도로 저장성이 우수해서 오랫동안 보관할 수 있고, 껍질이 얇아서 깨끗하게 씻으면 껍질째 바로 먹을 수 있다. 어린이들이 한 번에 먹기에 적당한 양이기 때문에 도시락이나 급식용으로 적당하며, 향후 이에 대한 수요가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