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수 재배의 핵심은 대목으로부터
과수 재배의 핵심은 대목으로부터
  • 원예산업신문
  • 승인 2019.12.16 1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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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목·접수 궁합 맞지 않으면 1~2년내 고사
사과 제외한 대부분 과종 대목품종 개발되지 않아

수확철 과수원은 풍요의 상징으로 묘사된다. 나무마다 탐스럽게 열려있는 과실은 보는 이의 마음을 여유롭고 풍성하게 만든다. 흔히 유실수(有實樹)라고도 하는 과수(果樹)는 ‘과실을 맺는 나무’를 의미한다. ‘실(實)’이라는 한자는 ‘열매’를 나타내지만 ‘가득차다’는 의미도 담겨 있다. 이런 점에서 보면 우리가 과수를 보면서 느끼는 풍요로움은 이 시대에만 느끼는 특별한 감정이 아니라, 예로부터 보편적으로 느꼈던 정서가 이어져 온 것으로 볼 수 있다. 과수를 유실수라고도 부르는 것 또한 이런 감상이 녹아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아쉽게도 사람들은 과수 재배의 최종 결과물인 과실에만 관심을 둔다. 대부분의 농업인들도 과실을 얼마나 크게, 많이 생산할 수 있는지에만 관심을 가질 뿐이다. 기본적인 나무 상태나 생리 현상은 도외시하는 것이다. 하지만, 우수한 품질의 과실 생산은 나무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를 바탕으로 이뤄진다. 즉, 과실 못지않게 과수 묘목 성장에 핵심이 되는 대목(臺木, rootstock)에도 관심을 쏟아야 한다.

과수 묘목은 대부분 대목과 접수로 나뉜다. 대목은 나무의 지하 부위로, 뿌리줄기 또는 근경으로 불리는 뿌리 체계(根界)를 구성한다. 접수(接穗, scion) 품종을 자라게 하는 역할을 한다. 접수 품종은 과실의 품질과 특성은 좋으나 뿌리의 활력이 좋지 않기 때문에 생육이 원활하지 못한 경우가 많다. 그러나 대목은 뿌리 체계가 잘 발달된 자원으로 튼튼한 뿌리와 양분흡수 능력을 보유하고 있다. 접목한 접수의 생육을 원활하게 하고 지탱해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재미있는 점은 대목과 접수 품종 간에도 궁합이 있는데 이를 접목친화성이라고 한다. 궁합이 맞지 않는 경우, 접수 품종이 대목에 비해 과도하게 굵어지거나 1~2년 내에 고사하는 현상이 나타난다. 대목과 접수 품종의 조합에 따라 과실의 생산량과 특성이 다르게 나타나기도 한다. 사과 ‘스퍼골든’을 실생묘(과실 종자를 파종하여 얻은 나무)와 M.9 대목에 접목하여 6년간 생육시킨 연구가 있었다. 그 결과 M.9 대목에 접목한 ‘스퍼골든’의 과실 생산량은 실생묘보다 3배 높게 나타났다. 서양배의 경우에는 대목의 차이에 의해 접수 품종 과실의 산 함량이 2배가량 변화하는 연구 결과가 보고되기도 했다.

과수 품종 같은 영양체는 종자번식 시 특성이 달라진다. 이 때문에 조직배양 증식이 선호되고 있다. 과수에서 가장 연구가 많이 된 사과는 다양한 대목이 개발돼 있기 때문에 대목 선택의 폭이 넓다. 그러나 사과를 제외한 대부분의 과종에서는 아직 우수한 대목 품종이 개발되지 않았다. 또, 증식 효율이 낮아 실생묘를 사용하는 경우도 많다. 실생묘는 과실의 종자에서 유래한 식물로, 부모 특성이 혼재되어 있는 잡종이다. 이 때문에 특성을 명확히 알 수 없다. 그리고 개별 식물체들의 유전 양식이 서로 다르기 때문에 대목으로 쓸 경우 접수 품종의 특성이 일정하게 나타나지 않을 확률이 높다.

국내 과수 연구와 산업 분야에서도 대목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커지고 있다. 대목은 접수 품종보다 오랜 선발 기간이 필요하다. 품종 개발과 동시에 증식 기술을 확보해야 하는 등 시간적·물적 비용 부담도 크다. 그러나 과수 재배의 기본이자 핵심은 대목으로부터 시작된다. ‘뿌리 깊은 나무가 바람에 아니 흔들린다’는 말처럼 양질의 대목 사용이 안정된 과수 생산과 과수산업 발전을 책임질 수 있다. 대목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을 통해 국내 과수 산업이 한 단계 도약하는 계기가 만들어지기를 기대한다.

■원경호<농진청 원예원 배연구소 농업연구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