텃밭 일의 즐거움
텃밭 일의 즐거움
  • 원예산업신문
  • 승인 2018.03.19 1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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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물이 생동하는 따사로운 봄날, 한해 농사를 시작하는 바쁜 농부들의 손길 마냥, 도시농부들도 농촌농부 못지않게 분주하다. 기대와 희망을 안고 시작한 텃밭농사의 즐거움이 배가 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본격적인 농사를 시작하기 전, 농사가 이루어지는 공간과 더불어 우리 마음도 준비하는 시간을 가져보자.

“텃밭에 무엇을 심으면 좋을까?”라는 질문은 자주 받는 질문일 것이다. 그러나 질문을 조금 바꾸어 “텃밭에 무엇이 있으면 좋을까?”라고 물으면 그 대답은 조금 달라질 것 같다. 내 입을 즐겁게 해줄 상추, 치커리, 당귀, 토마토, 고추, 콩, 고구마뿐만 아니라, 벌레가 좋아하는 겨자채, 다채도 심어보자. 남아서 옆집에 인심 쓸 상추 대신에 옆집 어르신이 좋아하는 채소는 무엇인지 넌지시 여쭙고 심어보는 건 어떨까? 텃밭 입구에서 오가는 나를 향기롭게 맞이하는 허브들, 뙤약볕에서 땀 뻘뻘 흘리고 고생한 내 눈과 입을 호강시켜주는 예쁘고 맛있는 꽃들까지, 또한 내가 초대하지 않은 나비와 벌, 따스한 햇살과 땅을 적시는 촉촉한 비까지 내려주길 기대한다. 뿐만 아니라, 잘 가꾼 내 텃밭을 보여줄 친구와 가족, 그리고 나도 더 자주 이곳 텃밭에 있으면 좋겠다. 파릇파릇 싹이 트고, 잘 자라서 수확하여 소중한 이들과 나누어 먹을 생각에 벌써 뿌듯하기까지 하다. 탄생, 성장, 발전, 수확, 나눔! 이러한 사건과 함께하는 기쁨, 환희, 즐거움, 만족감! 우리는 텃밭에서 이런 사건들을 기대한다.

그러나 세상일이 내 뜻대로만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텃밭은 이상이 아닌 현실이다. 텃밭에 두길 원하지 않았던 초대하지 않은 충과 병, 과한 바람과 비뿐만 아니라, 누군지 모를 큼지막한 발자국도 불청객으로 찾아온다. 병듦과 시듦, 죽음, 잡초까지… 어쩌면 텃밭은 분노와 슬픔, 좌절을 경험하게 하는 공간인지도 모른다. 기대와 희망, 분노와 좌절이 공존하는 텃밭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텃밭에서 내가 해야 하는 일은 텃밭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수용할 마음가짐을 가지고 식물을 가꾸고, 그 식물을 가꿈으로써 나를 성장시키고 발전시키는 것이다. 텃밭에서의 한해살이는 우리의 인생을 미리 한 바퀴 살아본 것만 같은 깨달음을 가져다준다.

씨앗을 뿌리면서 ‘나는 내 인생에서 어떤 씨앗을 뿌리며 살아왔나?’ 질문도 해보고, 이사한 다음 날 욱신거리는 몸과 낮선 이웃을 보면서 옮겨심기 한 모종이 낮선 환경에서 몸살을 할까 걱정도 해보자. 오이의 덩굴손이 잡을 수 있는 망을 설치하고 토마토가 기댈 수 있는 지주대를 꽂아주면서 나는 과연 누군가의 손을 잡아주고, 기꺼이 어깨를 내어주고, 그들이 가야 할 길을 안내해 준적이 있는지 되묻기도 하고, 순자르고(적아), 꽃도 따주고(적화), 열매도 따주면서(적과) 이 예쁜 것들을 잘라야 하다니…. ‘자를까말까’라는 양가감정(兩價感情, ambivalence)의 소용돌이에서, 다음 과정에서 보다 나은 결과를 도출하기 위한 선택과 집중하는 삶이란 무언인가에 대한 철학적 질문도 던져보자. 전투적으로 뽑아냈던 잡초가 이듬해 다른 식물에게 영양분을 제공할 퇴비가 되는 것을 보면서 ‘세상에 쓸모없는 것은 하나도 없단다~’라는 애니매이션 대사를 떠올려 보기도 한다.

텃밭은 그렇게 고스란히 인간사에서 발생하는 ‘흥망성쇠(興亡盛衰)’와 ‘희노애락(喜怒哀樂)’을 모두 경험하는 곳인 것이다. 집터에 딸리거나 집 가까이 있는 밭을 의미하는 ‘텃밭’은 노동을 하는 ‘일터’ 가 아닌, 도시농부들에게 있어 ‘쉼터’요, ‘놀이터’요, ‘배움터’이며 더 나아가 위안과 치유를 위한 공간이 되기를 바란다. 그럴 때 텃밭 일은 즐거움이 될 것이다.

■이상미<농진청 원예원 도시농업과 농업연구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