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에서 판매되는 고추 종자는 세포질-유전자적 웅성불임성(CGMS)을 이용한 일대잡종(F1) 품종이고, 일대잡종 품종 육성에 관련된 고추 육종 기술 또한 우리나라가 단연 세계 최고의 수준이다. 이런 우수한 고추 육종 기술력으로 고추 종자는 해외로 수출되고 있다. 수출액은 약 700만 달러로 채소 종자 수출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며 이러한 수출량은 매년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고추의 안정적 생산에 가장 치명적인 피해를 주는 요인 중 하나는 식물 바이러스이다. 바이러스 발생 양상도 고추 재배품종, 포장 환경 등의 재배환경의 변화와 함께 달라질 수 있다. 1990년 초반에는 고추약한모틀바이러스(PMMoV) 및 오이모자이크바이러스(CMV)가 주종을 이루고 있었으나, 최근에는 오이모자이크바이러스가 제일 많고, 잠두위조바이러스(BBWV2), 토마토반점위조바이러스(TSWV), 고추모틀바이러스(PepMoV) 및 PMMoV가 복합적으로 발생되어 피해를 발생시키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해마다 바이러스 피해가 반복되는 원인은 고추 바이러스에 대한 농약이 전혀 없으며, 고추 재배 특성상 바이러스를 매개하는 많은 해충들을 확실하게 박멸할 수 있는 방법이 신통치 않다는 데 있다. 가장 효과적으로 바이러스를 억제할 수 있는 바이러스 저항성 고추 소재들이 없다는 것도 한 몫 한다.
식물의 저항성은 식물체 유전자들에 의해서 조절되는 현상이며, 외부 공격자인 바이러스 및 병원체들에 대해 완벽하게 방어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음을 뜻한다. 저항성 도입의 성공적인 예로 PMMoV 저항성 고추 품종의 개발 및 보급이다. PMMoV에 대한 저항성을 가지고 있는 고추 유전자원들에 대한 활발한 연구를 통해 저항성 유전자원을 선발 및 확인 과정을 거친 후 상업용 고추 종자에 도입하여, 현재 PMMoV병의 발생률이 현저하게 낮아지게 되었다. 이 PMMoV 저항성 유전자는 거의 모든 상업용 파프리카 품종들에도 도입되어 피해가 상당히 줄어들었다.
이런 상황에서 고추에 가장 큰 피해를 끼치는 병원체는 CMV이다. 그럼 이쯤에서 ‘CMV 저항성 유전자들이 있는 고추 유전자원 또는 소재들을 찾아서 앞선 경우처럼 착착 도입하면 되는데 왜 못하지?’하는 궁금증이 생길 것이다. 질문의 답으로 첫 번째는 고추 유전자원들에서 CMV 저항성 유무를 판별하기 어려우며, 두 번째는 CMV 저항성 고추 유전자원을 찾게 되면 유전양식, 식물병리학적 특성 평가 등 기초적인 데이터 수집 과정에 여러 해 시간이 소요된다. 세 번째는 설령 확실한 CMV 저항성 소재를 찾더라도 같은 종인지 혹은 다른 종인지에 따라서 전통적 교배육종 전략 수립이 필요하며 네 번째로 전통적 교배육종법으로 농업인들이 사용할 만한 품종으로 개발되기까지 긴 역교배 기간, 포장 저항성 검정 등 5∼10년의 긴 시간이 소요되기 때문이다. 다섯 번째로 바이러스는 보통 변종이 나타날 확률이 높기 때문에 다양한 방법으로 이 품종들을 시험재배 하면서 반복적인 병 저항성 검정 등을 수행해야 한다.
많은 국내외 고추 연구자들의 연구 성과 덕택에 운 좋게도 골칫거리 CMV에 대한 저항성 고추 유전자원을 찾아낼 수 있었다. CMV 저항성 고추 유전자원에 대한 다양한 기초 연구를 수행하여 유전양식, 재배 특성 분석, 바이러스 병 저항성 병리학적 특성 분석을 활발히 연구를 수행 중이다. CMV 품종이 나오기까지는 여러 단계의 검정 및 연구 등이 필요하므로 시간이 더 많이 필요하겠지만, CMV 저항성 고추 유전자원을 확보하여 추후 연구 및 품종개발에 이용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다.
앞으로 해야 할 일들 및 풀어야할 숙제들이 산적해있지만, 이번에 찾은 CMV 저항성 유전자를 이용한 전통교배육종으로 CMV 감염 피해를 줄이는 날이 아마도 먼 미래의 허황된 꿈은 아닐 것이다.
■윤주연<농진청 원예원 원예특작환경과 농업연구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