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아생화 - 쑥부쟁이
한국의 아생화 - 쑥부쟁이
  • 원예산업신문
  • 승인 2013.11.25 1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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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삶의 애환과 그리움 간직한 꽃

먼 옛날 어느 마을에 대장장이가 살고 있었다. 그에게는 열한명이나 되는 자녀들이 있었다. 대장장이는 열심히 일을 했지만 많은 식구를 먹여 살리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살림이 궁핍하여 봄이 오면 늘 밥을 굶기 일쑤였다. 대장장이의 맏딸은 어린 동생들의 허기를 달래기 위해 산과 들로 쑥을 캐러 다녔다. 이 때문에 동네사람들은 그녀를 ‘쑥을 캐러 다니는 불쟁이네 딸’이라고 해서 ‘쑥부쟁이’라고 불렀다
어느 날 쑥부쟁이가 쑥을 캐러 나갔다가 상처를 입고 쫓기고 있는 노루를 치료해 주었다. 그런 다음 쑥부쟁이가 산 중턱쯤 내려왔을 때 한 사냥꾼이 함정에 빠져 있는 것을 보았다. 쑥부쟁이는 사냥꾼을 구해 주었다. 이것이 인연이 되어 사냥꾼 총각과 사랑에 빠졌다. 하지만 이듬해 다시 오겠다던 총각은 오지 않았다.
그리움에 지쳐가던 쑥부쟁이는 총각을 만나게 해달라고 산신령에게 기도를 드렸다. 그러자 자신이 목숨을 구해준 노루가 나타나 보랏빛 주머니에 담긴 노란 구슬 세 개를 주면서 말했다. “구슬을 입에 물고 소원을 한 가지씩 말하세요. 그러면 소원이 이루어진답니다.” 쑥부쟁이는 구슬을 입에 물고는 어머니의 병을 낫게 해달라고 말하자 어머니의 병이 씻은 듯이 나았다. 두 번째 소원으로 결혼을 약속한 사냥꾼 총각을 나타나게 해달라고 빌었다. 눈앞에 나타난 사냥꾼은 이미 결혼하여 가족이 있었다. 마음씨 고운 쑥부쟁이는 마지막 하나 남은 구슬을 입에 물고 사냥꾼이 가족에게 돌아갈 수 있게 해달라고 말했다.

 
그 후에도 쑥부쟁이는 사냥꾼을 잊지 못하다가 절벽에서 발을 헛디뎌 죽고 말았다. 죽은 그 자리에 쑥처럼 생긴 나물이 자라나 가을에 보랏빛 꽃을 피웠다. 죽어서도 배고픈 동생들을 위해 나물로 태어났다고 해서 마을사람들은 그 나물을 ‘쑥부쟁이’라고 불렀다.
해마다 쑥부쟁이 꽃은 청년이 돌아온다고 약속한 가을이 되면 산과 들녘을 보랏빛 꽃으로 수놓았다. 연한 보랏빛 꽃잎과 노란 꽃술은 쑥부쟁이가 지니고 다녔던 주머니와 구슬과 같은 색이며 목처럼 긴 꽃대는 옛 청년을 사랑하고 안타까워했던 쑥부쟁이의 기다림의 표시라고 전해진다.
쑥부쟁이는 늦가을까지 꽃을 피우는 여러해살이풀인데 우리나라에는 15종 정도가 있다. 무등산에는 쑥부쟁이, 개쑥부쟁이, 까실쑥부쟁이 등이 살고 있다. ‘개쑥부쟁이’는 가지가 많이 갈라지고 잎에 털이 있으며 열매에 보송보송한 솜털이 있는 점이 쑥부쟁이와 다르다. ‘까실쑥부쟁이’는 잎에 거친 털이 많이 있어 까실까실한 느낌이 든다.
우리 가난한 선조들은 온 종일 들과 산에서 열심히 일했으나 끼니를 때우기도 힘들어 했다. 특히 흉년이 들거나 전쟁이 났을 때는 쑥부쟁이로 끼니를 때우기도 했다. 그렇기에 쑥부쟁이라는 이름에는 가난과 애절한 삶이 담겨있다.

■신동하 종자원 충남지원장
우리 꽃의 관심을 높이기 위해 10회에 걸쳐 한국 야생화를 소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