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밀농업·스마트팜·디지털농업의 탄생 비화 ①
정밀농업·스마트팜·디지털농업의 탄생 비화 ①
  • 원예산업신문
  • 승인 2022.08.03 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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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자재 투입 최소화·환경보호위해 시작된 정밀농업
98년 세미나 개최로 국내 정밀농업 연구 돌입

▲정밀농업
1929년, 미국 일리노이 대학 학술지에 「클로버 씨앗과 석회비료 살포량을 줄이려면 토양의 산성도를 측정해야 한다(Test your soil for acidity systematic testing saves clover seed and limestone)」라는 논문이 게재되었다. 추측하지 말고 직접 테스트해보라(Don’t guess- test!)는 부제목도 같이 실려서 눈길을 끌었다. 밭에 클로버 씨앗을 뿌린 뒤 칼슘이 들어 있는 석회가루를 밑거름으로 같이 뿌려주면 질소 흡수를 촉진하는 효과가 있다.(음이온인 질산태질소가 흡수될 때 양이온인 칼슘을 넣으면 동반흡수 효과가 있음) 비료를 자주 주면 밭의 산성도가 올라가게 되는데, 이를 개량하거나 중화시키려고 석회고토를 쓰기도 한다. 

하나의 밭 안에서도 위치별로 토양 산성도는 다를 수 있다. 이를 고려하지 않고 석회가루를 뿌리면, 어떤 곳에는 석회가루가 필요이상으로 많이 들어갈 수도 있고, 다른 곳은 필요한 양보다 적게 뿌려질 수도 있다. 따라서, 위치별로 산성도가 같을 것이라고 추측하지 말고(Don’t guess), 직접 산성도를 측정(test!)해보라는 것이다. 그 결과에 따라, 산성도가 높은 곳에는 석회가루를 좀 더 많이 뿌리고, 산성도가 낮은 곳에는 석회가루를 좀 적게 뿌릴 수 있다. 또, 산성도가 높은 곳에는 클로버 씨앗을 적게 뿌려 작물간의 경쟁을 방지하고, 산성도가 낮은 곳에는 클로버 씨앗을 좀 많이 뿌려 생산량을 늘릴 수 있다. 이런 개념이 바로 정밀농업(precision agriculture)이다. 

이처럼 정밀농업은 작물 재배와 생산과정에서, 위치별 특성에 맞는 처방을 통해 농자재의 투입을 최소화하면서 환경을 보호하는 개념으로 시작되었다. 정밀농업의 개념은 그렇게 시작되었지만, 드 넓은 포장에서 어느 위치의 토양에 산성도가 높거나 낮은지를 정확히 알 수 있는 방법이 없어 관련 기술이 더 이상 발전하지는 못했다. 

냉전시대 때 미국 국방성은 군용으로 위성을 이용한 지구측위시스템을 개발하기 위해 노력한 결과,  드디어 1970년대에 NAVSTAR GPS(NAVigation Satellite Timing And Ranging Global Position System)을 개발하여 군사적인 목적으로만 사용하기 시작하였다. 1983년, 미국 뉴욕에서 출발하여 알래스카를 경유해 서울로 향하던 대한항공 여객기가 소련 영공을 침범해 공군기의 공격을 받아 추락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당시에 비행기에서 사용하던 관성항법장치의 오차 누적이 소련 영공을 침범한 원인으로 지목되었고, 이를 해결하고자 군용으로만 쓰던 GPS를 민간에 개방하게 된다. 이때만 하더라도, GPS를 완전히 개방한 것은 아니었다. 사용을 제한하고자 의도적으로 오차를 발생시키는 SA(Selective Availability, 선택적 사용성)를 적용해서 100m 정도의 오차가 나오도록 했었다. 그후 2000년이 되어서야 SA가 해제되면서 민간에서 사용하는 정밀한 위치 정보 제공이 가능해졌다. 이때부터 존디어 등 농업용 기계에 GPS를 장착하여 드 넓은 포장 내에서 토성이 다른 위치를 정확하게 확인하는 것이 가능하게 되었다.

우리나라는 1998년에 농촌진흥청 농업기계화연구소(현 국립농업과학원 농업공학부)에서 정밀농업세미나를 개최하면서 정밀농업에 대한 연구가 시작되었다. 당시에는 기계화가 더딘 밭 보다는, 기계화율이 높은 논을 대상으로 연구가 이루어졌다. 논 내 위치별로 토성이 다르다는 가정 아래 벼의 생육상황이 다름을 밝혀내는 연구가 주를 이루었다. 우리나라 논은 1ha 단위(가로 100m, 세로 100m)로 경지정리가 되어 있는데, 경지정리 과정에서 절토와 성토를 거치면서 논 내 위치별 토성의 차이가 거의 없었다. 또, 논에서는 주로 벼를 재배하는데, 늘 물을 채우고 있어, 위치별로 비료를 달리 처방해도 그 특성이 희석되곤 했다. 안타깝게도, 우리나라와 같이 1ha 단위의 논에서는 정밀농업의 필요성이 낮을 수밖에 없어서 정밀농업의 연구가 크게 진전되지는 못했다.

■성제훈<농촌진흥청 디지털농업추진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