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글 / 2월 찬가
독자글 / 2월 찬가
  • 원예산업신문
  • 승인 2022.01.27 1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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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속의 숨어 있는 ‘봄’
움추리던 생명이 기지개 켜는 시기

새 해 첫 장의 달력을 넘기고 정신없이 1월 한 달을 보냈다. 여기저기 인사말을 보내고 신년계획을 세우고보니 2월이다. 2월은 봄으로 가기 위해 잠시 걸쳐가는 징검다리다. 짧게 머물고 서둘러 떠나는 아쉬움이 있다. 장독 깨진다는 늦추위와 함께 눈이 내렸다. 아직 잔설이 채 녹지 않은 남녘땅에 동백꽃, 산수화가 핀다고 한다. 흰 눈을 이고 핀 붉은 꽃망울엔 차가움이 한 주먹이고 노랗게 핀 산수화는 봄을 재촉한다. 어디선가 매화 꽃망울이 터지는 지 봄밤이 환하다. 

2월은 봄도 아니고 겨울도 아니다. 겨울 속에 숨은 봄인지도 모른다. 얼굴 표정은 냉정하고 마음은 따스한 자존심이 바늘끝 같은 여인이다. 사리 분별을 할 때는 이치에 어긋나는 법이 없다. 한숨을 쉬는 사람의 등을 토닥여 주고 흐르는 눈물을 닦아주는 여자 같은 2월은 돌아섰던 사람이 손을 내밀면 햇살 같은 미소를 보낸다. 2월은 또한 정중동靜中動의 달이다. 침묵하는 겉모습은 평화롭고 잠잠해도 내밀한 술렁거림은 누구도 막을 수 없다.

겨울의 끝과 봄의 시작이 맞물린 두 마음을 지닌 달이 2월이다. 떠나지 않겠다는 2월과 밀어내는 3월의 기 싸움이 치열하다. 머물고 싶다는 겨울의 심술과 서둘러 오는 봄 사이에 갈등이 밧줄처럼 질기다. 달리기 출발점에 선 봄이 호루라기 소리를 듣는 순간 두터운 겨울옷을 벗어 던진다. 그러자 2월이 반칙이라며 겨울의 뒷덜미를 잡아 앉힌다. 떠나지 않으려는 2월과 서둘러 오는 3월의 투쟁이 치열하다. 순순히 떠나지 않겠다는 2월은 밉고 향기를 날리며 다가오는 3월은 눈부시다.

2월은 1월의 냉엄한 추위 속에서 3월의 봄으로 향하는 길목 사이에 걸쳐진 징검다리다. 보냄과 맞이함이 교차되면서 건너간다. 2월은 아직도 아침저녁으로 춥다. 그렇다고는 해도 한 낮에는 햇살이 따사롭다. 아직 떠내 보내지 못한 어제와 새날에 대한 기대를 함께 거느리고 2월은 혼자서 간다. 인디언들은 2월을 홀로 걷는 달, 기러기가 돌아오는 달, 삼나무에 꽃바람 부는 달이라고 한다.

2월이 아직도 차가움을 걸치고 있다. 1월을 보낸 아쉬운 이별을 안고 있지만 얼음 풀린 강물에서 물고기 펄쩍 뛰는 봄으로 가는 희망의 길목이다. 봄 싹들의 태동이 꿈틀거리는 이른 아침이다. 짧은 징검다리인 2월에는 설날이 있고 입춘도 있고 정월대보름도 있고, 우수도 있다. 설렘과 기대를 잔뜩 안고 2월에는 미지에 대한 두려움까지 존재한다. 뿐만 아니라 천진난만함도 숨겨져 있다.

매몰차던 바람도 갈수록 순해진다. 문풍지의 떨림도 잦아드는 2월은 어정쩡한 달이다. 엉거주춤 와서는 슬그머니 가버린다. 본격적인 겨울도 아니고 그렇다고 봄이라고 부를 만큼 화사한 기운이 도는 것도 아니다. 한해의 시작을 알리는 1월, 겨울을 잠재우고 승전의 나팔 소리 울려 퍼지는 3월, 1월과 3월 사이에서 주눅이 든 모습으로 한구석에 웅크리고 있는 듯한 2월의 햇볕은 개미허리처럼 가늘고 여릿여릿하다. 그렇다고 얕보아서는 안 된다. 

부드러운 것이 결코 부러지지 않는다. 오히려 강하다. 철저하게 얼어붙은 겨울 흙 속으로 훈김을 불어넣을 뿐만 아니라 겨울잠에 취한 나무들을 흔들어 깨운다. 눈이 녹고 흙이 헐거워지면 움츠렸던 생명들이 기지개를 켠다. 덤불사이로 할미꽃이 어깨를 들썩이는 때도 2월이다. 부드럽고 힘센 것들은 눈에 띄지 않는다. 어둠 속에서 소리 없는 기운을 결집해 가면서 꿈과 설렘이 교차하는 간이역 같은 2월이 나는 좋다.

■ 글 = 정성수
 • 저서 : 시집 공든 탑. 동시집 첫꽃, 동화 폐암 걸린 호랑이 등 61권
 • 수상 : 세종문화상, 소월시문학대상, 윤동주문학상, 황금펜문학상, 아르코창작기금수혜 
 • 전주대학교 사범대학 겸임교수 역임
 • 현) 전주비전대학교운영교수, 향촌문학회장,
    한국현대시인협회이사, 명예문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