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 역사와 전통의 대구경북능금농협
100년 역사와 전통의 대구경북능금농협
  • 원예산업신문
  • 승인 2017.12.04 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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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7년 설립 협동조합 효시 … 2017년 현재 국내 최대 사과전문 품목농협 역할 다해

▲ 조합원 및 출자금 현황
# 1917년 경상북도 과물동업조합의 설립

대구경북능금농협은 1917년 조선중요 물산동업조합령에 의거, 경상북도 과물동업조합으로 설립으로 시작됐다. 1905년경 일제시대부터 사과, 능금의 경제적 지배를 시작한 대구지역은 1907년에 권업모범장 대구지장이 설치됨으로써 본격적인 능금 주산지로 발전할 수 있는 면모를 갖추었다. 영리적 과수원 경영을 시작한 초기의 능금생산자들은 당시에는 자연 기후에만 의존하는 원시적 경영을 했다.
특히 대구를 위시한 경북 인근 지역으로 과수재배는 점차 활성화되면서 재배 지역이 점차 확장돼 나가자, 새로운 재배기술의 도입 및 개량, 판로확장의 필요성이 그 어느지역보다 더욱 크게 요구됐다.
이에, 대구지역의 능금생산농가들은 1912년 6월 15일 대구과수재배조합을 설립했고, 초대 조합장은 가원항이었다. 이후 이 조합은 1914년 8월에 그 명칭을 대구과수조합으로 바꾸었는데 바로 이 조합이 앞서 발족한 왜관과수조합과 더불어 이후 새롭게 출범했던 경상북도 과물동업조합의 전신이었다.
경상북도 과물동업조합의 창립은 면충피해반의 활동이 결실을 거둔 경상북도 원예연구회의 산파역으로 가능한 것이었다. 당시 통합조합 설립을 위한 근본적인 배경은 경북능금이 재배면적의 확대와 생산증가로 인해 점차 경북지역의 중요 물산의 하나로 부상해감에 따라 그 생산기술을 개량, 증식하면서 반출 과물의 품위를 통일하고 그에 기반을 둔 판매확장이 그 어느 때보다 적극적으로 요구됐기 때문이다.

# 1925년 경북 지 원예 창간

광역 단위 주요관할 지역으로 13,000여명 조합원으로 구성된 대구경북능금농협은 현재까지 경북능금지, 원예산업언론지 등을 통해 조합원들에게 최신 재배기술 보급 및 최신정보를 제공하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조합은 1925년 경북능금의 연구지 경북지원예를 새로이 창간, 본격적인 생산지도를 실시했다. 당시 조합은 지역 조합원들을 위해 능금품평회와 여러 차례의 강습회 및 초청강연회를 제공했다.
특히 경북 지역을 위한 농약 살포력을 최초로 편찬한 조합은 장려구란 이름으로 새로운 능금 협업단지를 집단적으로 설치함으로써 보다 효율적인 지도사업을 위한 기반을 마련했다.

# 1951년 한국전쟁과 조합의 재건기

1951년 능금조합은 한국전쟁으로 정간했던 경북능금지를 대구능금으로 개칭해 속간하는 한편, 전쟁으로 많은 능금 과수원들이 피해를 입어 주산지의 능금 증식율이 감소했기 때문에 이 시기에는 기존의 주산지가 아닌 의성, 군위 등 대구 북부지역으로 재배면적 확장조짐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조합 재건기에 있어 가장 중요한 사건은 1957년 9월에 이르러 경북능금협동조합이 발족해 1917년부터 무려 40여년간 지속돼오던 동업조합 체계를 협동조합 체계로 개편한 것이다. 이러한 조합 재건기의 노력을 통해 1950년대의 경북능금은 가장 유명한 능금주산지로 명성을 유지할 수 있었다.

# 1965년 부사(후지)품종 도입과 조합의 발전기

1960년대의 경우 능금조합의 발전기로 경북능금을 둘러싼 환경이 안정화되어가기 시작한 이 시기는 상대적으로 호시절을 구가했다.
1960년 5.16 이후 조합의 지소체계도 현재와 같은 임명제로 바뀌는 등 조합전반의 체계가 정립되는 시기였다.
게다가 능금나무의 수명을 30~40년으로 볼 때, 1930년대의 발전기를 거치면서 대량 식재된 유목들이 모두 성목이 되어 있으므로 생산성도 매우 높았던 시기였다. 비록 타 시도에서 능금재배가 시작단계로 접어들었지만 여전히 경북능금의 위치에 대해 위협적이지는 않았다.

# 1977년 제1회 능금잔치(대구시민축제) 개최와 조합의 조정기

1970년대에 들어서면서 조합은 시민들과 함께 하는 축제를 마련하는 한편, 당시 제주도 감귤소비의 확대와 충북과 경남 등지의 신품종으로 무장한 새로운 능금단지가 우리나라 능금생산의 1번지였던 경북 능금생산에 대해 위협적인 존재로 부상했다.
품종도 종래의 홍옥이나 국광에서 후지 등의 신품종으로 품종개체가 크게 진전됨으로써 도내의 생산판도도 크게 바뀌었다.
아울러 1978년 조합은 대구시 중구 태평로 1가1번지에서 동구 신천4동 329-7번지로 본 조합 청사를 이전했다.
보다 이전인 1975년 12월 조합은 경산군 진량면에 18,204㎡규모의 자체 묘포장을 개설해 묘목을 생산하기 시작했다.

# 1992년 군위 주스가공공장 준공식 개최와 조합의 전환기

16대 조합장으로 취임한 손규삼 조합장은 대내외 사과 산업 환경에 능동적으로 대응하고 사과가격 안정을 위해 1992년 전면적으로 군위 주스가공공장을 설립했다.
1990년대 들어 경북능금산업은 여러 면에서 일대 전환을 맞이했다. 그동안 지속적으로 추진했던 주산지이동과 품종대체가 마무리 단계에 이르렀고, 생산기반도 안정화되어갔다. 그러나 WTO체제하에서의 농산물시장의 전면적인 개방이 경북능금산업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면서 현실로 다가왔다.
이에, 1992년 11월 11일 경북 군위군 의흥면 원산리의 주스가공공장 준공을 통해 경영구조개선에 박차를 가했다.
주스가공공장에 대한 당시 총투자규모는 428억원에 달했고, 연간 22,500톤의 능금주스를 생산할 수 있는 주스공장(7,306㎡)을 가지게 됐다.

# 2010년대 새로운 100년의 출발기

조합은 지난 2014년 예수금 5천억원을 달성했다. 특히 지난 2007년 영주 거점산지 유통센터, 2009년 문경 거점산지 유통센터 운영을 통해 2012년 전국 산지유통 최우수 조직으로 선정됐다.
전국 사과 최대 조합으로 달려온 대구경북능금농협은 우리나라 능금산업의 역사와 같이 하고 있으면서, 조합원을 위한 조합이라는 슬로건 아래 대구·경북, 대한민국을 넘어 세계를 향한 사과전문 조합으로 성장하고 있다.

/류창기 기자

■100주년 기념사 -  손규삼 조합장
농가소득 향상에 기여하는 판매농협 구현

대의원 및 조합원 여러분!
우리조합은 지난 1917년 설립 이래 100년의 세월동안 우리나라 과수산업을 지탱하는 든든한 뿌리 역할을 해왔습니다.  
대구·경북사과 또한 생산면적 및 생산량이 한 때 전국대비 70%를 상회하였으나 사과재배 지역이 전국으로 확대됨에 따라 현재 64%정도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우리 조합은 1917년 10월 22일 대구, 달성, 경산, 청도, 칠곡, 김천 등에서 사과재배를 하는 농업인 142명(면적 280ha)이 자발적으로 뜻을 모아 경상북도 과물동업조합으로 설립돼, 오늘 100년의 역사를 만들었습니다.
우리농협이 오늘에 이르는 동안 6.25동란, 돌발 병해충 발생, 능금 파동기 등 숱한 시련과 고난이  있었지만 이 모든 난제를 슬기롭게 극복하고 오늘날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농협으로 성장하였습니다. 현재 우리 조합은, 조합원 13,000여명, 11개 지점, 21개 경제사업장, 9개 사업소, 2개 공판장, 11개 농산물유통센터, 골판지 가공공장, 음료가공공장, 육묘장 등의 조직을 운영하고 있으며 전년말 기준 경제사업 3,290억, 예수금 5,430억, 대출금 4,405억원, 가공사업  910억원의 사업실적을 이룩하였습니다. 오늘 우리조합의 이러한 성장은 선배 조합원님들의 피땀 어린 희생과 용기, 그리고 이 자리에 함께 하신 조합원님과, 임직원 여러분, 경상북도를 비롯한 유관기관 관계자분들이 한 마음 한 뜻으로 노력하여 주신 결과라고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조합은 그동안 생산, 유통, 가공, 수출에 이르기까지 다방면으로 끊임없이 성장해 왔습니다. 아울러 조합은 체계화된 농가교육, 11개 농산물유통센터를 통해 농가소득향상에 기여하는 판매농협을 구현할 것입니다.
갈수록 증가하는 수입과실로 인한 사과소비의 감소, 국내 사과 재배면적의 증가로 인한 생산 과잉 등 여러 가지 난제가 우리 앞에 놓여 있습니다.
사과산업이 이 같은 난관을 극복하고 지속적인 성장을 이룩하기 위해서는 우리농협을 비롯한 관련기관이
비장한 각오와 강인한 의지로 대처해 나가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