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에는 등산 가방을 짊어지고 한 손에는 여행 가방을 밀며 기차에서 내렸다. 난생 처음 혼자 떠나보는 기차여행이었다. 역에서 나와 버스터미널로 걸어갔다. 생각보다 조용한 시골마을이었다. 버스에서 내리는 사람은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대부분이었고 젊은 사람은 보기 드물었다. 역 근처 버스터미널에는 온면국수를 내건 가게가 있었다. 꽤 손님이 많아 언젠가 가보기를 다짐했다. 이제 갓 고등학교에서 졸업한 나는 이곳 충청북도 영동에서 4년을 홀로 보내야 한다. 마을 버스는 도시만큼 자주 다니지 않는 것 같았고, 3층 이상 높이의 건물은 볼 수 없었다. 아직 쌀쌀한 날씨만큼 도로 주변 가로수들도 가지가 앙상했다. 학교 버스를 타고 10여분을 달려가면 곧 기숙사가 보인다. 버스에서 내려 기숙사를 가는 도중에 ‘6시 내고향’에서나 볼법한 야외정자가 있고 그 옆으로 족히 100년은 돼 보이는 나무 한 그루가 서있었다. 신입생들만을 모아둔 106동 기숙사에 도착했다. 7인 1실이라는 말도 안 되는 기숙사방침이었지만 이 생활에도 곧 적응했다. 마음 맞는 친구도 사귀었다. 그렇게 영동에서의 생활을 시작했다.
“우리 읍내 나가서 필요한 것 좀 사자.” 친구 한명이 오랜만에 쇼핑을 하자고 한다. 그동안 필요했던 생활용품도 사고 사치스럽게 맛있는 것도 먹기로 했다. 문득, 처음 영동에 온 날 보았던 역 근처 온면국수집이 생각났다. 여대생 세 명은 간만의 포식을 하고 배를 퉁퉁 치며 국수집을 나섰다. 문을 열고 나오는데 황금덩어리가 온 사방에 주렁주렁 달려있는 것이 아닌가. 눈을 비비고 다시 봤다. 황금덩어리가 틀림없었다. 가로수에 황금덩어리가 주렁주렁 달려있다고 말하면 믿겠는가. 큰 도로 양쪽의 인도로 끝없이 가로수가 심어져있고 황금물결도 끝없이 펼쳐졌다. 우리는 황금 양탄자가 깔린 그 길을 걸어갔다. 가끔 머리위로 뚝뚝 황금이 떨어지기도 했다. 친구 한명 머리 위로 황금하나가 ‘똑’하고 떨어졌다. “나한테 감 떨어졌다.” 친구는 씩씩대며 머리를 박박 문질러댔고 우리는 깔깔거리며 웃었다. 이곳은 가로수로 감나무를 심은 ‘감’마을이었다. 기숙사 주변을 걷고 있으니 단독주택 옥상에서 너도나도 곶감을 말리고 있었다. 곶감을 말리는 과정은 난생 처음 봤다. 실제 감을 깎아서, 실제 바람에 말리다니. 영동곶감을 집에서 먹어만 봤지 이런 과정과 풍경이 담겨있는 줄은 몰랐다. 친구 한명이 나를 불러 세웠다. 우리는 야외정자에 쭈그려 앉았다. 자세히 보니 정자 옆 나무도 감나무였다. 감이 어찌나 주렁주렁 열렸는지 손만 뻗으면 수십 개의 감은 쉽게 딸 수 있을 것 같았다. 우리는 무언의 신호를 주고받았다. 뒤돌아서면 배고프던 여대생 세 명은 오랜만의 비타민 섭취에 들떴다.
어둑해진 밤 편의점 봉지를 두어 개 가방에 챙겨 넣고 정자주변을 어슬렁거렸다. 다행히 지나가는 사람은 없었다. 한명은 감을 따고, 한명은 감을 넣고, 한명은 망을 본다. 그리고는 뛴다. 계획은 간단했다. 셋 중에 가장 거침없던 친구가 감나무로 향했다. 숨을 죽이고 봉지만 들여다보고 있었다. “야, 나 정말 따?” “응.” “괜찮을까?” 그렇게 손을 뻗었다 내렸다가를 30분쯤 반복했을 때, 마을 주민 한 분이 지나가셨다. 우리는 너나 먼저 할 것 없이 기숙사로 냅다 달렸다. 그렇게 비타민 섭취의 꿈은 보기 좋게 끝이 나는 듯 했다. 며칠 뒤 두 번째 도전에 나섰다. 이번엔 좀 더 용기를 내 보기로 했다. 이전 보다 감이 더 주렁주렁 열리고 색도 빨갛게 익었다. 셋이 정자 주변을 어슬렁거리고 있다가 친구 한명이 결심한 듯 주먹을 움켜쥐었다. 재빠르게 감나무 앞으로 가 감 하나를 땄다. 우리 셋은 서로 얼굴을 마주보며 활짝 웃었다. 그리고는 또 다시 기숙사로 냅다 뛰어갔다. 드디어 감을 손에 넣었다는 뿌듯함과 죄책감의 감정이 뒤섞였다. 그렇지만 우리 셋은 너무 즐거웠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방안에 앉아 감 하나를 가운데 놓고 배가 찢어져라 웃었다. 우리는 황금이라도 얻은 것처럼 행복했다. 감 하나로 방안이 환해짐과 동시에 우리는 그 속이 궁금해졌다. 크기는 두 주먹을 꼭 쥐어 합한 크기와 같고 아래쪽은 뾰족해 커다란 팽이 같았다. 꼭지를 따고 껍질을 까 한 입씩 베어 무는데 이게 웬일. 빨갛게 익은 겉과 달리 그 속은 떫다 못해 쓴 것이 아닌가. 아직 감 먹을 때가 안 된 것이다. 우리는 그 감을 베란다로 가져갔고 감이 익을 때를 기다렸다.
학교가 마치고 기숙사로 돌아올 때면 늘 그 감나무를 쳐다봤다. ‘언제쯤 다 익을까?’ 감나무 보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그러다 점점 감나무에 대한 관심이 사라질 때쯤 감나무 소식을 듣게 되었다. 이제 감나무가 익어 저절로 떨어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우리는 방 한편에 모아놓은 편의점 봉지를 하나씩 손에 쥐고 감나무 앞으로 걸어갔다. 소문대로 바닥에 감이 떨어져있었다. 세 번째 도전. 더 이상 물러났다가는 감을 맛보지 못할 수도 있었다. 우리는 가장 낮은 가지에 달린 감들을 빠르게 땄다. 워낙 주렁주렁 매달려 있어 한 가지에서 딴 감이 봉지를 가득 채웠다. 우리 셋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기숙사를 향해 달렸다. 역시 얼굴에는 미소를 한 가득 품고 달리는 내내 깔깔거렸다. 감속에 정말 황금이라도 담겨있는 것일까?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그 당시의 즐거움을. 감의 꿀맛 같은 당도를 기대하며 한 입 베어 물었는데 꿀맛은커녕 고무를 씹는 것 같았다. 우리가 딴 맨 아래 가지의 감은 아직 익지 않은 것이다. 봉지를 묶어 그 채로 베란다로 가져갔다. 그리고선 잊었다. 엠티를 다녀오고 조별과제와 각종 시험에 시달리며 대학생활이 지나갔다.
기숙사 대청소날이었다. 방학이 시작하기 전 기숙사 대청소를 하는 날이었다. 방 청소를 하고 있는데 베란다에서 누군가의 고함이 들려왔다. “이거 뭐야?” 달려가 보니 우리가 몇 주 전 놔둔 감 봉지였다. 까맣게 잊고 있었다. 봉지를 조심스럽게 열어 보니 제법 감이 말랑말랑해졌다. 빛깔도 투명한 색을 띄고 있었다. ‘아, 이제는 먹을 수 있나보다.’ 봉지에서 감을 덜어내 보니 감은 총 5개. 톡 치면 툭 으스러질 것 같이 연약한 느낌이었다. 천천히 껍질을 까서 한 입 베어 무는데, 과즙이 주르륵 흘러내려 청소로 말끔해진 방바닥이 더러워졌다. 그래도 좋았다. 너무 맛있어서 게 눈 감추듯 먹어버렸다. 정자 옆 감나무에 가보니 이제는 앙상한 나뭇가지만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에게 감은 어땠느냐고 또 맛있었느냐고 묻는듯했다.
책상 옆 핸드폰을 들어 메시지를 보냈다. “얘들아, 우리 대학교 1학년 때 감나무에서 감 따다먹었던 것 기억나?” 곧이어 답장이 왔다. “어우야, 어디 가서 그런 소리마라. 그땐 왜 그랬는지 먹어도, 먹어도 배가 고팠어.” 또 다른 친구에게 답장이 왔다. “그래도 그 때 먹은 감은 정말 맛있었어. 어딜 가서 먹어도 그 맛이 안 난다니까?” 내 얼굴에는 미소가 번진다. 그리고 친구들의 얼굴에서도 미소가 번져있겠지. 이제는 졸업을 하고 각자 다른 지역에서 일을 하고 있지만 언젠가 우리를 다시 만나게 할 것은 그때 그 감나무 이야기가 아닐까.
황금을 가진 자들의 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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