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득·피해보전 직불제의 문제와 발전 방향
먼저, 많은 사람들이 이 직불제를 농가소득 보장 혹은 복지정책이라고 오해하고 있다. 그런 오해 때문에 가격하락이 아니라 소득감소에 따라 지급하도록 바꾸어야 한다고도 하고, 생산비 상승을 반영하여야 한다고도 주장한다. 그 대표적인 것이 쌀 소득보전직불제와 FTA 피해보전직불제를 농가단위소득보전제도로 개편한다는 구상이다. 즉 과거 농정당국은 품목별 가격을 기준으로 하는 직불제를 폐지하고 농가별 총소득을 기준으로 감소분을 보전하는 농가단위소득보전직불제를 도입한다는 목표 아래 2005년 경부터 이 제도에 매달렸다. 최근 들어 결국 이 시도는 폐기되었지만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쌀직불제와 FTA 피해보전직불제가 소득보장 정책이라는 오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그 언저리를 맴돌고 있다.
그러나 각 농가의 실제 생산량과 판매가격, 실제 자재 투입량과 구입가격을 정확히 파악할 수 있는 인프라가 잘 정비되어 있지 않는 한 정부가 각 농가, 혹은 각 농가가 생산하는 특정 농축산물의 소득을 정확히 파악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정작 소득이 감소한 농가는 보전을 받지 못하고 소득이 증가한 농가가 도리어 보전을 받는 부조리와 불합리가 도처에 나타날 수밖에 없고, 그런 불합리한 제도는 지속가능하지 않다. 또 설사 각 농가, 혹은 각 농가가 생산하는 특정 농축산물의 소득을 알 수 있다하더라도 도시가구의 소득과 자산규모를 훨씬 뛰어넘는 농가가 많은데, 왜 자기보다 부자인 농가의 소득을 보장하기 위해 세금을 내야하는지, 그런 것이 어떻게 복지정책이 될 수 있는지 국민을 설득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쌀 소득보전직불제와 FTA 피해보전직불제는 소득보장이나 복지정책이 아니라, 쌀 수매제도 폐지와 FTA 이행으로 농가가 직면하게 되는 가격하락 위험을 흡수하는 것이 목적임을 명확히 인식해야 한다. 목적이 그러하므로 각 농가의 소득과 관계없이 시장가격 하락에 따라 지급액이 결정되고, 규모가 큰 농가가 많이 받는 것이 정당한 것이다. 이런 목적의 정책은, 이론적으로는 정책변화로 발생한 손실은 정부가 보전하여주는 것이 합당하다는 후생경제학의 ‘보상의 원리’에 따라 정당성이 있다. 또한 이런 위험관리제도가 있어야 농가가 적정한 수준의 투자와 생산 활동을 할 수 있게 된다는 경제학 이론에 따라 현실적 필요성이 인정된다.
농가에 대한 복지정책, 특히 저소득 농가나 고령농가에 대한 소득정책의 필요성을 주장하고, 쌀소득보전직불제와 FTA 피해보전직불제가 그런 목적의 제도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물론 농가에 대한 그런 복지정책이 꼭 필요하지만 그런 목적의 정책이라면 기초생활보장제, 기초노령연금제 등 모든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복지정책의 틀 속에서 해결되어야 한다. 농가와 농민을 위한 별도의 복지제도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그런 제도가 농가, 농민에게 불공정하게 적용되는 부분을 개선하는 것이 정당성이 있고 설득력이 있다. 가령 기초생활보장제의 인정소득추정에서 농가는 매우 불리한 방식을 적용받아 많은 저소득 농가가 지원 대상에서 제외되고 있고, 농가가 직면한 공간적 조건으로 의료 서비스에 접근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이런 불공정과 불리성을 해결하여 동등한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두 번째는, 가격하락을 보전하면 농산물이 수급 균형량 이상 생산되어 가격이 더욱 하락하는 역기능이 나타난다는 비판이 있다. 그러나 그것은 현행 제도가 특정 농산물 생산을 조건으로 직불금을 지급하게 되어있기 때문에 나타난 현상이다. 즉 현재는 당년에 생산한 면적 혹은 두수에 따라 직불금 지급액이 결정되므로 이 제도가 결국 생산보조금에 준하는 생산유인 효과를 갖는다는 것이다. 이제도가 생산 유인 효과를 갖지 않으려면 기준 년도에 해당 작물을 재배한 농지 혹은 사육되었던 해당 가축의 두수에 대해서는 당년 생산과 관계없이 지급하는 이른바 생산 비연계 방식으로 개편하여야 한다. 요컨대 이 제도가 과잉생산을 유발하는 역기능을 나타내는 것은 이 제도 본래의 문제 아니가 우리나라의 방식에 문제가 있기 때문에 나타난 현상이라는 것이다.
일부에서는 여기서 제안하는 생산 비연계 방식을 고정직불과 혼돈하고 있는데, 고정직불이 아니라 미국의 소득보전직불제인 가격변동대응직불제도(CCP) 방식을 따르자는 것이다. 미국은 이미 1970년대에 정부가 기준가격을 정하고 시장가격이 이보다 낮으면 그 차액을 보전하여 주는 제도를 부족분지불제도라는 이름으로 도입하고, 현재의 우리나라 쌀소득보전직불 또는 FTA 피해보전직불과 같이 당년 생산규모에 비례하여 지급하는 방식으로 운용하였으나 과잉생산문제에 봉착하였다. 그 결과 1985년부터 당년 생산과 관계없이 기준연도 생산규모에 따라 지급하는 방향으로 개편하였고, 그것이 현재의 CCP제도이다. WTO에서도 이런 생산 비연계 방식을 장려하고 있고 현재 진행 중인 도하개발아젠다(DDA)협상에서도 이런 방식의 직불제도를 이른바 신블루박스(new blue box)라는 개념으로 감축대상국내보조(AMS)와 별도로 보조금 한도를 설정한다는 데에 대체적 합의가 이루어진 상태이다. 요컨대 우리가 시행하고 있거나 하려는 직불제도는 선진국에서 이미 수십년간 실행하며 개선하여 온 것이므로 그들의 경험을 꼼꼼히 살펴보면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 금방 알 수 있다.
셋째로 발동가격과 보전률을 둘러싸고 논란이 많은데, 그것도 이 제도의 목적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데서 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제도의 목적이 가격하락 위험을 흡수하여 주는 데 있으므로 발동가격은 수매제 폐지 혹은 FTA 발효 직전의 평년가격으로 하고, 보전률은 85% 수준으로 하는 것이 타당하고 국제적 관행에도 맞는다. 현재 FTA 피해보전직불제는 FTA 발효 직전 평년가격의 90%를 발동기준가격으로 하고 있으나 품목에 따라서는 가격이 10% 하락하면 소득은 20-30%나 감소하여 가격위험을 흡수하여 준다는 의미를 상실하게 될 우려가 있으므로 평년가격을 그대로 발동가격으로 하는 것이 목적에 맞는다.
더 나아가 비록 직전 평년가격을 발동기준가격으로 하더라도 물가상승률이 높을수록 당초 목적인 가격위험 흡수의 실효성이 급격히 떨어지는 문제가 있다. 쌀의 경우 2005년 이후 소득보전직불금을 합친 명목 농가수취액은 목표수준인 80kg 당 17만 83원보다 0.8% 낮은데 그쳤으나 물가상승율이 높아 2012년 실질 수취액은 19%나 적었다. 따라서 물가상승률이 연간 2-3%를 넘는 경우에는 그 초과분만큼 발동가격을 인상하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그렇게 하더라도 실제 재정소요가 크게 증가할 가능성은 높지 않고, 어느 정도의 증가는 경쟁력 향상과 유통개선이란 이름 아래 쏟아 붓는 수백가지 보조금을 정비하면 충당할 수 있을 것이다.
넷째, 발동가격을 인상하면 WTO의 감축대상국내보조 총액(AMS) 한도를 초과할 우려가 있다는 주장이 있지만 미국의 CCP방식으로 개편하면 이른바 ‘품목불특정 최소허용보조(de mini mis)’가 되어 그런 우려는 사라진다. 미국은 실제로 WTO에 보조금 감축 이행실적 보고시에 CCP를 품목불특정최소허용보조로 규정하고 감축대상국내보조 총액에 포함시키지 않고 있다. WTO 규정에 따르면 어떤 보조금이 가격과 연동되어 지급되면 감축대상보조(AMS)가 되지만, 그 지급이 특정 품목의 생산을 요구하지 않는 경우에는 품목불특정 보조금이 된다. 그리고 그 지급 총액이 농업 총생산액의 10%이내이면 품목불특정최소허용보조가 되어 감축대상보조 총액(AMS) 계산에 포함되지 않는다. 따라서 농업총생산액을 40조원으로 간주하면 약 4조원까지는 소득·피해보전직불금을 지급할 수 있으므로 WTO의 보조금 한도는 실질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끝으로 FTA 피해보전직불제의 경우 가격 하락 중 수입증가에 의한 부분(수입기여도)에 대해서만 보전하도록 하고 있는데, 이 기여도를 산출하는 방식에 관한 문제이다. 가격하락 중 수입기여도는 국내외산 농산물의 수요·공급함수를 통해 산출하는 방법, 국내산 농산물의 가격함수를 계측하여 산출하는 방법, 수입의 공급량 증가 기여율에 의해 결정하는 방법 등 세 가지가 있다.
그런데 수요·공급함수 방식과 가격함수 방식은 계산과정이 매우 복잡하고 사용하는 함수식과 자료에 따라 각기 다른 값이 산출 될 수밖에 없으므로 이해 당사자들의 이해를 얻기가 매우 어려울 것으로 생각된다. 이에 비해 수입의 공급량 증가 기여율 방식은 공인된 수입량 자료와 국내산 생산 통계를 이용하여 ‘수입 증가량 ÷ (수입증가량 + 국내생산량 증가량)’에 의해 누구나 손쉽게 구할 수 있다. 일부 전문가는 이 방식의 가정이 지나치게 엄격하다고 비판하지만 다른 두 가지 방법에서 도출된 기여도에는 불가피하게 상당한 편의(bias)와 오차가 축적되어 있으므로 어느 방법으로 추정한 기여도가 ‘진정한 기여도'에 더 근접하는지는 단언할 수 없다. 따라서 수입의 공급량 증가 기여율 방식이 현실적이고 더 바람직하다고 생각된다.
■이정환<GS&J인스티튜트 이사장>
저작권자 © 원예산업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