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러나 이러한 소비촉진활동에 필연적으로 수반되는 것이 비용이며, 이 비용을 농수산물의 소비촉진활동을 통해서 이익을 직접적으로 얻게 되는 농어가들이 공동으로 부담하여 조성한다면, 그 공동 조성액이 바로 자조금이다. 즉, 특정 산업의 이해 당사자들이 특정 사업목표를 설정하고 사업수행에 필요한 자금을 그 사업수행을 통해 혜택을 받는 자들이 공동으로 부담하여 조성하고 운용하는 특정의 목적기금이 소위 자조금(check-off funds, self-help funds)이다.
이러한 자조금은 일반적인 조세(taxes, duties)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조세는 국가가 재정을 확보하기 위해서 국민에게 납세를 의무화하는 비자율적인 비용인 반면에 자조금은 특정 산업의 구성원들이 그들 산업을 스스로 보호하고 발전을 꾀하기 위해서 민주적인 방식에 의해 자발적으로 부과·부담하여 조성하는 자율적인 자금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자조금은 특정 산업에 속하는 단체의 한 구성원 또는 일부의 힘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그 산업전체의 문제를 공동으로 해결하기 위해 공동으로 조성하여 운용하는 공동의 자발·자율적(voluntary and autonomous)인 자금이다. 따라서 농수산물의 자조금은 특정 농수산물을 생산하는 농어가들이 개별적으로나 그들 일부의 힘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사업 즉, 농수산물의 소비홍보, 새로운 원예농산물의 개발과 보급, 소비자 교육과 조사·연구 등을 포함한 원예농산물의 소비촉진활동사업 등을 위해 제한적으로 사용되는 농가들의 자구적 자금인 것이다.
이러한 자조금을 조성하는 방법은 두 가지로 나누어 생각할 수 있다. 그 하나는 관련산업 구성원의 결의와 동의를 바탕으로 민주적 절차에 따라 납부제도를 법제화하여 모든 구성원이 의무적으로 납부토록 하는 의무자조금제도(mandatory check-off system)이고, 다른 하나는 의무납부의 규정이 없이 구성원들이 자발적으로 납부하여 조성하는 임의자조금제도(voluntary check-off system)이다.
우리나라 농수산물에서는 2000년에 파프리카와 참다래를 시작으로 농수산물의 임의자조금이 실시되기 시작한 이래 2012년에는 채소류와 과채류, 화훼류를 포함한 25개의 원예품목과 5개의 수산물에서 임의자조금이 실시되고 있다. 양적으로는 엄청난 성장을 해온 것이다.
여기서 원예농산물을 국한시켜 살펴보면 2012년 현재 농가조성금과 정부지원금(보조금)을 합하여 25개 원예품목에서 운영된 자금은 총 159억원에 불과하여 의무자조금을 실시하고 있는 한우와 양돈, 낙농을 포함한 3개 축산물의 같은 해 운영자금 536억원의 3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이같이 원예자조금의 조성규모가 낮은 것은 근본적으로는 생산규모가 적기 때문이지만 25개 품목을 고려하여 각 품목별로 살펴볼 때는 원천적으로 농가들의 자조금사업에 대한 참여도가 너무 낮기 때문이다. 농가의 참여가 낮은 것은 농가의 자조금사업에 대한 이해와 공감대가 아직도 크게 부족하고 자조금의 거출 길목이 분명치 않다는 대부분의 원예농산물이 가지고 있는 불투명한 유통경로의 특징, 자조금사업을 추진하는 원예농산물의 생산자 단체와 지도자들의 리더십 부족 등에 기인된 것으로 생각된다.
임의자조금제도는 자기가 생산·판매하는 원예농산물에 대한 소비촉진의 타당성을 인정하고 납부를 희망하는 농가들이 스스로 자진하여 자조금을 주관하는 단체에 일정액(자조금)을 납부·송금하여, 그 자진 납부한 금액을 해당 원예농산물의 소비촉진사업에 운용하는 자구적 제도이다. 따라서 임의자조금제도는 해당 원예농산물산업의 발전에 관심이 큰 농가를 중심으로 자발적으로 모금하여 해당 원예농산물의 소비촉진에 참여함으로서 단체의 자의성이 보장될 뿐 아니라 자조금사업에 참여를 꺼리거나 반대하는 농가들의 불만을 원천적으로 차단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지만, 자조금을 납부하지 않는 과다한 무임편승자(free rider)로 인해 자조금의 조성이 가능한 금액을 예측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자조금의 사업계획을 합리적으로 수립·시행할 수 없으며, 극히 소액의 조성액으로는 자조금사업의 본래 목적인 해당 원예 농산물의 계획적이고 효율적인 소비촉진프로그램의 추진이 불가능하여 참여 농가의 기대에 부응하기가 어렵고 자칫 초기에 참여한 농가도 해를 거듭할수록 이탈할 가능성이 크다.
현재 추진되고 있는 국내 원예 생산물의 임의자조금제도하에서도 각 품목별로 조성된 자조금이 극히 적고 조성액의 정확한 예측도 불가능하기 때문에 조성한 자조금의 사용에 있어도 대분의 품목단체에서 이벤트성 홍보행사나 지역별 회원조합원의 교육, 행사지원 등에 치중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또한 대부분의 품목별 자조금단체가 극히 영세하여 조직관리가 미흡하고 그나마 정부의 대응자금에 의존하는 경향이 없지 않다. 한마디로 대부분의 원예자조금은 아직도 걸음마단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의무자조금제도는 특정 원예농산물을 생산·판매하는 농가들의 공감대를 얻어 농가가 해당 품목의 원예농산물에 대한 판매액의 일정 소액을 의무적으로 납부토록 하여 해당 원예농산물의 소비촉진을 포함한 시장확대에 활용하는 자구적 제도이다. 따라서 원예농산물의 의무자조금제도는 해당 품목을 생산·판매하는 모든 농가가 자조금을 납부하여 해당 원예농산물의 소비·촉진에 스스로 참여함으로서 해당 원예농산물의 산업발전에 대한 농가의 자긍심과 응집력을 제고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자조금의 일괄적 징수가 가능하고, 자금의 조달과 운용액을 사전에 예측할 수 있음으로서 계획적이고 합리적인 소비촉진 프로그램의 수립·시행이 가능하고, 해당 원예농산물의 소비촉진사업에 모든 농가가 직접 참여함으로서 해당 원예농산물의 수급안정을 비롯한 정부의 정책에 적극적인 참여와 역할을 유도할 수 있는 원천이 될 수 있다. 의무자조금의 이 같은 장점 때문에 이미 오래전부터 자조금제도를 도입하고 있는 미국과 유럽 등 많은 농업선진국들은 대부분의 농수축산물에서 의무자조금제도를 도입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주요 축산물에서 의무지조금제도를 성공적으로 실시하고 있다. 축산단체들은 농가들의 의무자조금사업에 대한 동의 절차를 거쳐 2004년부터 최초로 양돈분야에서 의무자조금제도를 도입하기 시작하여 이어 한우와 낙농분야에서 의무자조금을 성공적으로 도입·정착시키고 있는바, 2012년 한 해동안에 정부보조금을 포함하여 3개 축종이 운용한 자조금은 한우의 경우 270억원 그리고 양돈과 낙농이 각각 186억원과 80억원에 달한다.
이에 정부는 2012년 2월에 원예농산물을 포함한 여타 농수산물에서도 의무자조금을 실시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되는 “농수산 자조금의 조성 및 운용에 관한 법률”를 제정·공포했다. 이어 2013년 2월에 동법 시행령과 시행규칙이 제정·공포됨으로서 명실 공히 원예농산물에서도 품목별로 의무자조금을 실시할 수 있는 법적 기반을 완성된 것이다.
미국과 유럽을 비롯한 농업강국들과의 FTA가 속속 시행되고 있으며, 여타 국들과의 FTA체결협정이 지속됨으로서 국내 원예농산물이 수입 원예농산물에 의해 강한 도전을 받고 있다. 이제 원예 농산물에서도 더 이상 의무자조금제도의 도입을 주저할 여유가 없다. 의무자조금사업의 성공을 위해서는 1차적으로 해당 품목을 생산하는 농가들의 상호 이해와 공감을 바탕으로 적극적인 참여가 전제되는 것이다.
농가의 참여부족은 1차적으로 해당 품목을 생산하는 농가의 이해와 공감대가 부족한 데에서 기인된다. 어디까지나 자조금의 부담자는 농가이다. 따라서 농가의 자조금에 대한 이해와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는 한, 의무자조금제도는 절대로 성공할 수 없다. 무엇보다도 농가 스스로가 원예산물을 생산·판매할 때, 자조금을 자발적으로 납부하겠다는 의지와 더불어 실제로 자진해서 납부하는 자세가 요구된다. 해당 산업의 지도자들은 자조금사업의 취지와 본질 등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다고 할지라도, 아직도 대다수 농가들은 자조금사업에 대한 이해와 공감대가 부족하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자조금사업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는 지도자와 전문가들이 주축이 돼 자조금사업의 필요성에 대해서 농가들을 적극적으로 설득시키고 이해시키는 절차가 필요하다.
■박종수<충남대학교 농업생명과학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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