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당귀에는 약초를 캐러 산에 들어간 남편을 기다리다 못해 개가한 여인에 대한 전설이 있다. 여인이 개가를 하자마자 남편은 돌아와 약초를 남기고 떠난다. 여인은 남편이 가버린 후 생리가 불순해지는 등 병이 나지만 남기고간 약초를 달여 먹고 회복한다. 이후 많은 여성들이 부인병이 생기면 이 약초를 먹고 병을 이겨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그래서 이 약초의 이름엔 ‘당귀(當歸)’ 즉 ‘마땅히 돌아온다’는 뜻이 담겨 있다.
그런데 요즘 건강을 중시하는 웰빙시대를 맞아 당귀의 활용이 다양한 용도로 확대되고 있다. 이제는 약재뿐만이 아니라 쌈채소, 건강식품(추출물), 막걸리, 비누 등에 이르기까지 그 쓰임새가 커진 것이다. 당귀의 독특한 향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쌈으로 먹기도 하고 가을에 수확한 뿌리로 술을 담가 먹기도 한다. 강원도 진부의 한 양조회사에서는 당귀 막걸리를 생산해 인기리에 판매하고 있기도 하다. 또한 피부미용효과도 알려져 대중목욕탕에 이용되기도 하고 일반인들에게는 좌욕용으로도 팔리고 있다. 비누나 화장품 원료로 사용된 지는 이미 오래됐고 최근에는 천궁과 함께 음용 가능한 당귀 엑기스 형태로 개발되어 인기를 누리고 있다. 이만하면 가히 당귀 전성시대라 할 만하다.
당귀가 이렇게 각광을 받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단지 오래된 전설 때문일까. 아니면 한방제품에 대한 호기심 때문일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기야 하겠지만 아마도 고대로부터 내려오던 당귀의 다양한 효능이 현대과학에 의해 계속해서 새롭게 조명되는 까닭이 아닐까한다. <동의보감>에 따르면 당귀는 ‘성질이 따뜻하며 독이 없고, 맛이 달고 약간 매워 심장기능을 보강하고 혈액 생성을 촉진한다’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외에도 발암억제, 심근경색 억제, 치매예방 및 치료에도 효과가 있는 것으로 계속해서 밝혀지고 있다.
그러나 모든 당귀가 다 똑같은 효과가 있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당귀는 실제로 종류가 여러 가지라 저마다 효능에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당귀의 종류는 참당귀, 중국당귀, 일당귀, 개당귀(지리강활, 독초) 등 많이 알려진 종류만 4종이나 된다. 그중에서 각국의 약전에 명시된 참당귀, 중국당귀, 일당귀는 모두 한약재로 쓰이고 있으나 실제로는 많이 다르다.
우선 참당귀와 중국당귀, 일당귀는 모두 산형과 당귀속 식물이지만 종(種)이 다르고 뿌리에 함유되어있는 주요 성분에도 차이가 있다. 중국당귀의 주요성분은 카바크롤(carvacrol), 리구스틸리드(ligustilide) 등이지만 국산 참당귀는 데쿠르신(decursin), 데쿠르신안젤레이트(decursin-angelate) 등으로 알려져 있다. 데쿠르신은 독성물질이라고 알려진 베타 아미로이드가 생성되는 것을 막아주고 감소시켜 뇌세포를 보호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데쿠르신안젤레이트는 혈관신생반응을 일으키는 기능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당귀의 좋은 효능과 소비에 힘입어 최근 농업인들에게도 국산약초 당귀의 선호도가 높아지고 있다. 귀농 희망자들 사이에서는 물론 고랭지에서 무, 배추, 감자, 옥수수를 심던 농가에서도 관심을 보이고 있어 앞으로 재배가 확대될 전망이다. 당귀는 원래 서늘한 기후를 좋아해 해발 500∼700m의 준고랭지에서 잘 자라기 때문에 주로 강원도와 경상북도 등 산간지역에서 많이 재배되고 있다. 연간 생산량은 2,200톤 정도이며 약 1,500여 농가가 재배하고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
농촌진흥청에서도 이러한 생산 및 소비확대 추세를 뒷받침하기 위해 다양한 노력들을 하고 있다. 품질 좋은 당귀를 생산하기 위해 그동안 만추당귀, 안풍, 진일 등 품종을 개발해서 보급해 왔으며, 원활한 당귀종자 보급을 위해 경북농업기술원 고랭지 약초시험장과 강원도 평창농업기술텐터 등과 협력하여 보급체계 구축에도 힘쓰고 있다. 뿐만 아니라 소비자들에게도 안전한 먹거리를 제공하기 위해 농약 등 유해물질로부터 안전한 친환경 재배방식인 GAP 기술을 농가에 보급하기 위해 박차를 가하고 있다.
현재로선 우리 약초 참당귀의 인기가 높고 소비가 확대되는 추세이지만 품질관리를 게을리 하면 얼마가지 않아 중국 등 경쟁국에 자리를 내줄 수도 있다. 국민들에게 안전하고 품질 좋은 식·의약품을 생산하고 보급하는 일의 성공여부는 정부와 기업 그리고 농민이 긴밀한 협력관계를 유지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도 엄격한 품질관리 의지를 가지고 소비자의 신뢰를 구축하는 것이 가장 중요할 것이다.
■농진청 원예원 약용작물과 농업연구사 김용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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