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심속 농업활동 통한 인생 공부
도심속 농업활동 통한 인생 공부
  • 원예산업신문
  • 승인 2012.12.17 16:1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덥다, 덥다’ 노래를 부르며 투덜거리던 시절이 엊그제 같은데, 인간의 변덕스러움과 간사함이 몸을 움츠리게 하고, ‘덥다’를 내뱉었던 같은 입으로 ‘춥다’를 외치고 있다. 하지만 내가 웅크리고 있는 사이 배추를 묶고, 수확하고, 무를 뽑는 농부는 땀을 뻘뻘 흘리며 한해살이를 정리한다. 그 농부는 도시에 살고 있는 내 이웃, 도시농부이다.
봄바람을 타고 살랑 살랑 불어와 도시 농부들의 마음을 설레게 한 도시에서의 농사일이 한여름의 굵은 땀방울을 물과 거름 삶아 가을의 풍성한 수확을 맞이하고, 이제 또 다른 한해를 위한 겨울나기를 준비하고 있다.
‘농사는 농촌에서 짓는 거지!’, ‘농사는 농부가 짓는 거잖아!’, ‘농사를 그렇게 지으면 안돼!’
자투리 땅, 상자, 화분, 자루, 페트병, 스티로폼 박스, 종이화분에 가끔은 차도녀이고 싶고 가끔은 농부이고 싶은 나! 내가 농사를 지었다. ‘자투리 땅에 오밀조밀 10가지나 심었지.’, ‘모양은 이래도 달아~’, ‘좀 잘아도 맛있어.’, ‘벌레는 먹었지만 유기농이야~’
우리는 말도 안 될 것 같은 땅에서 나만의 방법으로 마트나 시장에서는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희소가치가 있는 것들을 도시 농사로부터 얻어낸다. 생선을 담았던 스티로폼 박스 하나에 촘촘히 심어놓은 상추를 보며 흐뭇해하고, 몇 장 안 되는 상추를 나누어 먹으면서 희열을 느낀다. 몇 장 안 되는 상추에 몇 뭉치의 상추를 사서 보태고 온 동네 삼겹살 파티를 벌인다. 틈틈이 말려 만든 허브차를 준비하고 몇 송이의 꽃을 잘라 작은 유리병에 꽂았더니 근사한 카페가 부럽지 않다. 안전하고 믿을 수 있는 먹을거리의 자가 생산 및 소비라는 도시농업의 기능은 도시농업의 대표성과 상징성을 띠고 있지만 그것을 넘어선 무언가가 우리에게 만족감을 제공하고 도시농업을 갈망하게 하는 것이 아닐까? 도시에서는 그 땅과 방법, 사람에 대한 어떤 정답도 없다.
움직이지 않는, 죽어있는 것처럼 보이는, 혹 죽었을지도 모르는 작은 씨앗은 4월의 따스한 온도와 내가 정성껏 제공한 물을 마시며 싹을 틔운다. 내가 하루하루 성장하고 발전하려 온 힘을 쏟는 것처럼 싹을 틔운 식물들도 매일 매일 나와 함께 성장한다. 어느 날 맺힌 꽃망울과 활짝 핀 향기롭고, 아름답고, 앙증맞은 꽃은 2, 30대 나의 가장 아름다웠고 화려했던 그 어느 날을 떠올리게 한다. 몽글몽글 달리기 시작하여 붉게 푸르게 속을 채워가는 열매들은 가정과 직장에서 역할을 해내고 있는 대견한 나, 성숙된 나를 바라보고 있는 것 같아 흐뭇하다. 열매를 다 따먹고…. 더 이상 열매를 맺을 기력이 남지 않은 식물을 보면서, 깜박 깜박하는 기억력과 예전 같지 않다고 느끼는 체력을 감지한 나는 “너도 나랑 같이 늙어가는 구나”하고 혼잣말을 내뱉는다. 바짝 말라 죽은 식물을 정리해서 지렁이 상자에 넣어주면서 며칠이 지나면 깨끗이 분해되어 또 다시 다른 식물의 거름이 되어 줄 너의 운명이…. 언젠가 흙으로 돌아갈 나의 운명과 닮아있구나 라고 느낀다. 그렇게 인생 공부가 시작되었다.
■농진청 원예원  도시농업연구팀 이상미 박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