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 과실의 뛰어난 소화효소 작용을 빗댄 말이다. 지금도 민간에서는 고기를 먹고 체했을 때 생배를 먹으면 낫는다는 속설이 있는데, 실제로 배에는 인벨타제, 옥시다제 같은 소화효소들이 풍부하여 육류의 소화를 돕는다. 음식점에 가면 고기를 숙성시킬 때 배즙이나 생배를 사용하는 것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는데, 배에 있는 효소들이 고기를 연하게 하여 식감을 좋게 하고 소화를 돕기 때문이다.
배에서 볼 수 있는 독특한 특징으로 석세포(石細胞, stone cell)를 꼽을 수 있다. 석세포는 후막세포의 일종으로 세포벽 성분인 리그닌과 펜토산 성분이 어우러져 형성된 것인데, 배를 먹다보면 까끌까끌하게 걸리는 작은 알갱이의 정체가 석세포이다.
석세포는 식이섬유의 일종으로 식이섬유가 보이는 일반적인 효능을 기대할 수 있다. 음식을 먹을 때 씹는 횟수를 증가시켜 타액분비를 촉진시키며, 위액의 점도를 증가시켜 위에 머무르는 시간을 연장하여 소화 촉진 및 공복감을 없애주는 등 다이어트에 효과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 또한 장에서 대변 용적을 증대시켜 배변횟수를 많게 함으로서 배변에 효과적이고, 발암성 물질이 대장에 머무르는 시간을 단축하여 대장암에 도움이 될 수 있다.
최근 연구결과를 통해 배의 항돌연변이 및 항암효과가 주목받고 있다. 고온에서 음식물을 굽거나 튀길 때에는 다환족 방향성 탄화수소류(polycyclic aromatic hydrocarbons, PAHs)가 발생하기 쉽다. PAHs에는 독성을 지닌 물질이 많은데 나프탈렌, 안트라센이 여기에 속하며, 벤조피렌의 경우 담배연기에도 존재하는 발암물질이다. 숙명여대 독성학연구실 연구팀이 국내 6개 도시를 중심으로 PAHs의 대사산물인 원하이드록시파이렌(1-Hydroxypyrene, 1-OHP)의 소변 내 농도를 분석하여 조사한 결과, 하루 4분의 1개(약 200g)에서 2분의 1개(약 400g)의 배를 먹은 집단에서 PAHs의 배출효과가 높아지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외에도 세포배양 실험에서 배즙이 세포의 돌연변이율을 감소시킨다는 결과를 얻었고, 동물실험에서는 생배나 배즙 처리에 의해 생체내 악성종양 수가 감소하는 등 배의 항돌연변이 및 항암효과가 속속들이 밝혀지고 있다. 이러한 결과를 토대로 유추해볼 때, 한국산 배가 PAHs의 장 내 흡수를 막거나 대사 전에 신속하게 배출하는 효능을 가지고 있어 건강 유지 및 암 발생 억제에 효과적임을 알 수 있다. 따라서 맛있을 뿐 아니라 건강에도 좋은 우리 배는 꾸준히 먹으면 약이 되는 식품이라 판단된다.
매서웠던 태풍과 장마를 지나 이제 완연한 가을로 접어들고 있다. 추석 명절을 앞두고 산과 들에는 오곡과 과실이 알차게 여물어 우리 식탁을 풍성하게 할 준비를 하고 있다.
가을은 배가 익는 계절이다. 가을배는 며느리에게도 주지 않는다고 할 만큼 맛이 좋다. 정말 맛있는 배를 원한다면 배 이름(품종명)을 알고 구입해야 한다.
9월 중하순에 출하되는 배 품종으로는 황금배, 화산, 만풍배가 있다. 이들 품종은 아직 시장에서 쉽게 구하기 힘든 품종이지만 맛을 비롯한 품질이 뛰어나 소비자들의 입소문을 타고 점차 입지를 넓혀가고 있다. 배를 차례상에서만 찾을 것이 아니라 건강한 삶의 동반자이자 생활에서 즐겨먹는 과실로서 식탁에서 더 자주 볼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한다.
■농진청 배시험장 농업연구사 원경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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