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제 노랑 프리지아가 졸업식장, 입학식장의 선남ㆍ선녀들에게 달콤한 향기를 전해주는 시기도 다 지났다. 시간이 한참 지난 후에야 그들은 지난 세월을 되새기며 졸업, 입학 시즌의 추억을 이야기하겠지만 아마도 그때 전해 받은 프리지아의 달콤한 향기는 기억 속에 남아있지 않을 듯하다.
그러나 프리지아가 활짝 필 무렵이 되면 우리의 기억 속에 또렷이 남아 있는 한 사람이 있다. 밤낮 가리지 않고 오로지 국산 프리지아 품종개발에 혼신을 다한, 지금은 안타깝게 고인이 된 농촌진흥청 화훼과 조해룡 박사다.
지난해 이맘때 쯤 오직 실험실과 온실, 그리고 농가 현장만 왔다갔다 하던 조해룡 박사가 갑자기 병원으로 향했다. 거구를 자랑하며 늘 명랑한 모습으로 프리지아 온실을 넘나들며 주말도, 휴일도 없이 국산품종의 개발에 매달려 왔던 그이기에 농진청 식구들조차 의아해 하기도 했다. 그렇게 늘 한결같던 사람이, 또 비춰지는 밝은 모습에 건강한 줄로만 알았는데 모두를 착각에 빠뜨리고야 말았다. 그는 다시는 프리지아 온실로 돌아올 수 없게 된 것이다.
이제 그와 작별한지 꼭 1년이 된다. 연구실에도 시험온실에도 더 이상 그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지만 그가 개발한 프리지아 품종은 온실 가득히 향기를 내뿜고 있다. 아니 온 나라를 뒤덮고 있다. 나아가 바다 건너에도 명성을 떨치고 있다.
국산품종‘샤이니골드’는 몇 년 사이에 우리나라 프리지아 중 30% 가까이 점유를 하게 되어 농업인의 고민이던 해외 로열티 부담을 단숨에 덜어내고 오히려 희망으로 거듭나고 있다. ‘샤이니 골드’는 기존의 도입품종 ‘이본느’보다 재배온도가 2도 정도 낮아 겨울재배 중심인 프리지아 산업에서 농가의 경영비 절감에 큰 도움을 주고 있다. 또한 개화시기도 1주일 정도 빠른 조생종이고 볼륨감 있는 겹꽃이어서 여러 가지로 재배농가로부터 사랑을 받고 있다.
일본 수출도 빼놓을 순 없다. 지난해 80만개 정도가 수출됐고 올해에는 250만개 정도가 수출될 전망이다. 로열티 부담을 덜어준 것뿐만 아니라 농가 소득향상과 더불어 수출효자 품목으로 거듭나고 있는 셈이다.
앞으로의 전망은 더욱 밝다. ‘샤이니골드’의 재배확대 뿐만 아니라 국산 신품종 ‘골드리치’가 차세대 유망주로 떠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이 품종은‘샤이니골드’보다 더욱 진한 황색으로, 소비자들의 기호성이 더욱 우수하고 구근(알뿌리)의 증식속도가 훨씬 더 빠르다는 장점이 있다. 생산농가에서는 종묘(종구)를 보다 빨리 늘릴 수 있어 싼 값으로 생산하는 것이 가능해지게 된다.
또 하나 더 기대하는 것은 프리지아 품종의 다양성이다. 2003년 국내 첫 품종 ‘샤이니골드’을 개발한 이후 2011년까지 총 32품종을 선보였고, 그 중 23품종이 황색이 아닌 빨강, 자주, 백색, 보라 등 컬러풀한 다양한 아름다움을 선사하고 있다.
앞으로는 졸업, 입학 시즌이 아니더라도 프리지아는 새로운 시장을 개척해 나갈 것으로 굳게 믿는다. 국내 재배면적 50ha에, 생산액 56억원에 불과한 작은 작목인 프리지아. 그러나 경쟁력은 세계 제일을 자랑하며 더욱 강력한 국산품종으로 무장하고 진정한 강소농으로의 전환을 선도하고 있다.
얼마 전 프리지아 향기가 한창 무르익을 때 화훼과 구근류연구실원들은 프리지아를 한아름 안고 수원연하장으로 조해룡 박사의 영전을 다시 찾았다. 거기서 모두는 다짐을 했다.
“당신이 남긴 지워지지 않는 진한 향기가 이제 온 세상에 가득하고 또 당신이 마련한 토대위에 후배들이 열심히 결실을 쌓아 가리라”고….
프리지아처럼 은은한 그의 향기가 온 누리에 영원하길 바래본다.
■농촌진흥청 국립원예특작과학원 신학기 화훼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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