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 있는 주제 화원 조성 … 화훼 이용 활성화

조선 세종 시대는 신생국인 조선이 성리학을 중심으로 국가 기반이 정착되면서 문화적으로 한창 번성하던 때였다. 그 중심에 셋째 아들 안평대군이 있었다. 그는 자신의 저택에서 여러 문사와 함께 문화와 예술을 폭넓게 교류한 인물이다. 아쉽게도 정치적 소용돌이 속에서 둘째 형인 세조에게 죽임을 당하며 시문이나 서화는 모두 사라졌지만, 그의 예술 활동이나 학문 소양은 한 시대의 문화를 일으키는데 크게 기여하였고 후대에도 큰 영향을 주었다.
‘비해당 48영’이란 안평대군이 자신 저택의 아름다운 풍경 48가지를 선정해 먼저 노래하고 여러 문사에게 청한 시를 말한다. 정작 자신의 시는 남아 있지 않지만, 당대 최고의 문사인 최항, 신숙주, 성삼문, 김수온, 서거정의 시가 남아 있고, 심지어 그를 죽인 세조의 친손자인 성종마저도 그를 기리면서 시를 남긴 바 있다. 전체 48가지 풍경 중 38가지는 관상용 꽃식물에 대한 것으로, 한문학자와 전통 조경학자들은 이 시를 당시 화훼문화를 엿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로 여겨 활발히 연구해 왔다. 시 제목은 꽃식물별로 그에 알맞은 정취를 표현한 경우가 있었는데, 가령 梅窓素月(매창소월)은 ‘매화 피어난 창가의 밝은 달 매화’, 向日葵花(향일규화)는 ‘충신을 상징하는 해를 향하는 닥풀(규화, 葵花)’, 窓外芭蕉(창외파초)는 ‘여름철 시원한 빗소리의 정취를 느끼게 해주는 창 밖의 파초’ 등이다.
국립원예특작과학원에서는 지난해부터 화훼문화사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고전 속 전통 화원 꽃식물 전시를 추진하고 있다. 올해는 4월 말부터 5월 중순까지 조선 전기 문화의 아이콘인 안평대군 저택 내 ‘귀공자의 비밀의 화원’이란 부제로 한국도로공사 전주수목원에서 전시를 개최한다.
전시에서는 그간 고전 번역 과정에서 비슷한 꽃 종류지만 차이를 뚜렷하게 구별할 수 없었던 철쭉류 ‘일본철쭉’과 ‘영산홍’, 배롱나무류 ‘자미’와 ‘백일홍’, 장미류 ‘장미’와 ‘사계화’ 등의 차이를 실물과 함께 소개한다. 특히, 일본철쭉은 세종 23년(1441) 일본에서 진상하였다는 기록이 있는 식물이다. 일본철쭉에 대한 최초의 문헌은 안평대군의 이종사촌으로 화훼에 조예가 깊었던 강희안의 양화소록이다. 그 시기에 일본철쭉과 함께 유사종인 영산홍도 같이 도입되어 안평대군 화원에 같이 있었기 때문에 별도의 시 제목으로 취급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배롱나무의 도입에 대한 정확한 기록은 없지만 고려시대의 문헌상 꽃으로 재배한 기록이 없는 것을 보면 고려말 도입 당시 꽃이 자주빛을 띠는 배롱나무 원종과 함께 붉은빛을 띠는 변종도 백일홍이라는 별칭으로 같이 도입, 조선 초기에는 별도의 이름으로 불리며 재배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장미류인 장미와 사계화는 고려 중기 이규보의 동국이상국집에서도 구별하여 등장하는 것을 보면 적어도 고려 중기부터 연중 한 번만 피는 일계성 장미뿐만 아니라 온도만 맞으면 연중 꽃을 피우는 사계성 장미가 도입되었을 것이기 때문에 조선 초기에는 당연히 별도의 이름으로 취급되었을 것이다.
국립원예특작과학원에서는 화훼문화사의 연구 결과를 홍보함으로써 고전 속 꽃 기르기가 ‘마음 기르기’라는 인문 정신의 확산을 통한 화훼 이용 문화가 생활 속에 정착되도록 할 계획이다. 또한, 화훼문화사를 활용한 스토리있는 주제화원 조성으로 관광자원으로서 화훼의 이용 활성화를 도모하고자 한다.
■서정남<농진청 원예원 화훼과 농업연구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