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변화에 맞서는 배추 육종의 여정
기후변화에 맞서는 배추 육종의 여정
  • 원예산업신문
  • 승인 2023.09.27 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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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 변화에 강한 배추 품종 연구과제
기온·작형 따른 다양한 품종 개발돼야

최근 외국 출장을 갔다 놀라운 경험을 했다. 동양인이 흔치 않은 지역 슈퍼마켓에 떡하니 김치와 김치 양념이 매대에서 팔리고 있던 것이다. 우리나라 ‘김치’가 북미, 유럽 등에 진출한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직접 실감한 순간은 처음이었다. 농식품수출정보에 따르면 김치는 기존 수출국인 일본과 대만 외에도 미국, 유럽, 호주 등에서 수출 증가세가 지속되고 있다. 그럼 이렇게 수출되는 김치는 어떤 배추로 만든 것일까? 머릿속에 물음표 하나가 자리 잡았다. 

김치 맛을 좌우하는 여러 가지 요인 중 가장 중요한 것은 배추이다. 하지만 기후변화로 인해 배추 재배는 해마다 힘겨운 도전을 반복하고 있다. 이 때문에 환경 변화에 강한 배추 품종을 개발하는 것은 육종의 새로운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그럼 어떤 배추가 환경 변화에 강한 배추라고 할 수 있을까? 일단 고온과 건조한 환경에 잘 견디는 성질을 지닌 배추를 꼽을 수 있다. 지구온난화로 해마다 온도가 올라가고 있는 요즘, 봄·여름·가을·작형 할 것 없이 배추 생육기에 한 번 이상은 고온건조한 기후에 맞닥뜨리게 된다. 그러므로 모종이 어릴 때이든, 결구기(속이 차는 시기) 때든 고온건조한 상황에 잘 버티는 힘이 매우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냉해나 저온에 강한 배추 품종 개발도 중요하다. 이상 기후는 단순히 여름철 온도만 올리는 것이 아니기에 갑작스러운 추위에도 대비해야 한다. 우리나라 배추처럼 사계절 주년 생산을 하는 경우 기본적으로 기온이나 재배 유형(작형)에 따라 다양한 배추 품종이 개발돼야 선택 폭을 넓힐 수 있다. 또, 습기(내습성)나 재해 견딤성(내재해성)을 갖춘 배추 개발도 필요하다.

배추는 어찌 보면 ‘공주’ 같은 존재로 육종이 돼 온 것 같다. 전체적으로 잘 생겨야 하며 크기는 망에 적당히 들어찰 정도로는 커야 하고 속도 꽉 차야 하며 심 속 색도 예뻐야 한다. 잎은 김치로 만들었을 때 맛있도록 당분과 조직감이 좋아야 한다. 이러한 형질들은 더 맛있는 배추들을 더 효율적으로 유통하기 위해, 또 김치로 잘 가공되기 위한 중요한 육종목표들이다. 하지만 가까운 미래에는 위에서 열거한 ‘좋은’ 형질들보다는 일단 잘 살아남고 잘 버티는 능력이 가장 중요해질지도 모른다. 양상추처럼 빨리 속이 차는 미니 배추가 대세가 될 수도 있고 김장의 중심지가 각 가정에서 산업으로 넘어가게 되면 공장 자동화 시스템에 적합한 배추가 선택될 수도 있다. 탄소 절감 문제나 비료 수급 등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양분을 최소한으로 쓰면서도 잘 자라는 배추가 선호될 수도 있고, 먼 훗날엔 아예 노지가 아닌 식물공장 같은 공간에서 자라기 적합한 모양새로 바뀔 수도 있다. 양질의 유전체 데이터와 표현체 데이터들은 더 정밀한 데이터 기반의 육종이 가능하도록 만들 것이다. 

현재 가정에서 시판 김치를 구매하는 비중은 매년 조금씩 늘고 있으며 김치를 직접 담그는 비율은 지속적으로 줄고 있다. 그러나 김치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전 세계에 많아지는 만큼, 배추는 앞으로도 많은 사랑을 받을 것이다. 우장춘 박사님 이래로 배추 육종은 이제껏 다양한 위기 상황을 극복해낸 역사가 있다.

앞으로도 후배 육종가들은 계속 끊임없는 노력을 통해 기후 변화에 강한 배추 품종 개발을 시도할 것이다. 앞으로 탄생할 새로운 배추 품종들이 매우 기대된다.

■김진희<농진청 원예원 채소과 농업연구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