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변화와 디지털 농업, 그리고 감귤
기후변화와 디지털 농업, 그리고 감귤
  • 원예산업신문
  • 승인 2020.12.07 13:0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기후변화 농업에 미칠 영향 간과할 수 없는 현실
육종·재배·유통 등 하나의 플랫폼으로 체계화

“농사는 하늘이 짓는다”는 말은 땀 흘린 농민으로 하여금 허탈함을 느끼게 하는 말이기도 하면서, 때로는 연구자의 핑계가 되기도 한다. 올 해만 해도 이례적으로 길었던 장마와 연이은 태풍은 안타까운 흔적을 남겼다. 터지고 떨어진 감귤을 바라보는 농민에게 하늘을 핑계 삼은 위로는 허탈함만 더할 변명이 될 듯하다.

‘40년 만의 가뭄’, ‘100년 만의 폭염’과 같은 기상이변이 이제는 익숙한 소식이 되었듯이, 기후변화가 농업에 미칠 영향은 간과할 수 없는 현실이 되었으며, 이를 예측하기 위한 노력들이 계속되고 있다. 제주도의 생명산업으로 불리는 감귤만 놓고 보더라도, 10년 전에 이미 2040년대에는 재배지가 36배나 확대될 것이라는 예상이 있었고, 최근 예측 결과에서는 이번 세기말 강원도에서도 재배가 가능할 것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조생온주의 싹 나는 시기가 예년보다 열흘가량 앞당겨졌다거나 경기도 평택에서 황금향이 재배되고 있다는 기사들을 보면 감귤은 기후변화로 인한 산업 전반의 움직임을 다른 작목보다 더 일찍, 더 빠른 속도로 겪고 있는 듯하다. 가히 하늘이 농사를 짓고 있다 할 만하다.

하지만, 하늘만 바라보고 있기에는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여간 자존심 상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농업 전반에 걸쳐 최선의 환경을 만들어주기 위한 노력을 ‘디지털농업’이라고 한다. 육종부터 시작해 재배, 저장, 유통에 이르는 일련의 과정과 각 과정에 관여하는 환경 요인까지 하나의 플랫폼으로 체계화하는 것으로 농업기술의 정점으로 여겨진 스마트팜을 넘어 분야 간 가림막을 없애는 네트워크가 강조된 개념이다. 얼마 전 ‘디지털농업기술 연구추진단’ 킥오프 회의가 열렸다. 감귤은 사과, 배, 복숭아 등과는 달리 시설재배와 노지재배가 병행되고 있고, 연중 생산을 목표로 할 정도로 재배환경과 품종에 따라 생육기간이 복잡하게 얽혀 있어 디지털농업이 가능할까 싶었지만 발언하시는 한분 한분이 결연함을 넘어 비장해 보이기까지 해 의심을 거두고 의지를 갖게 했다. 감귤연구소에서는 디지털 육종, 디지털 시설농업, 노지 디지털 농업, 빅데이터 기반 플랫폼 구축의 구성된 전 분야에 참여했다. 감귤에 대한 다양한 연구가 진행되어 왔음을 의미할 수도 있지만 감귤이야말로 다른 분야의 도움이 절실하다는 방증일지도 모른다.

감귤연구소에서는 모델링 기반의 병해충 예찰, 생육 예측, 무인방제시스템 개발과 같이 디지털농업을 위한 여러 연구들을 수행하고 있다. 인공지능 기반 드론이나 자율주행 로봇 등을 활용한 병해충 무인방제 시연회는 비가 오는 와중에도 우산을 받쳐 들고 열렸을 정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갈 길이 바빠 보인다. 앞에서 언급했듯, 감귤은 기후변화를 가장 일찍, 가장 빠른 속도로 겪어내고 있고, 제주도에 집중되었던 재배지가 우리나라 전역으로 확대될 만큼 큰 변화가 예상된다. 시설재배와 노지재배가 함께 진행되고, 1년 내내 과실이 생산될 정도로 생육기간이 복잡하게 얽혀 있다. 신규 연구사로 생육 예측 결과들을 발표하고 예상과 다른 결과가 나올까 불안해하던 시간들이 어쩌면 감귤이 겪고 있는 치열함을 몰라 부릴 수 있었던 여유는 아니었는지 돌아보게 된다.

8, 9월에만 세 번의 태풍이 지나가고, ‘비가 와도 걱정 안와도 걱정...기후변화에 제주감귤 병든다’는 기사 제목이 아직까지 머릿속에 남아있다. 결연한 각오로 시작한 디지털농업이 현장에서 ‘비가 와도 좋고 안와도 좋고’라는 말을 들을 수 있기를, 그리고 그 중심에 감귤이 있기를 기대해 본다.

■박요섭<농진청 원예원 감귤연구소 농업연구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