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근영<경남과학기술대학교 조경학과 교수>
허근영<경남과학기술대학교 조경학과 교수>
  • 원예산업신문
  • 승인 2014.12.01 1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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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庭園), 농업의 새로운 희망

 
영국 런던 정원답사 중 저녁식사 자리에서 만난 어느 덴마크 양봉가와의 대화로 이야기를 시작하고 싶다. 그는 꿀이 담긴 벌집과 치즈를 직접 가지고 와서 “치즈와 함께 먹으면 꿀과 벌집을 함께 삼킬 수 있다”고 웃으며, 런던은 교외지역보다 오히려 꽃이 많아서 벌꿀생산의 적지라고 하였다. 아마도 이것이 정원 속 도시농업이 아닌가 싶다. 런던은 삶 속에 꽃향기가 넘치는 도시였다.
2013년 순천만 국제정원박람회를 계기로 정원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이를 반영하여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에서는 정원에 대한 개념 및 정책추진을 위한 법률적 기반을 마련하고 있다.
아마도 이와 같은 노력은 농업선진국들과의 FTA로 상심한 농민들에게 새로운 희망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 그런데 이와 관련하여 최근 많은 우려의 목소리들이 화훼 농가를 중심으로 터져 나오는 것은 무심히 간과할 일이 아닌 듯하다. 최근 산림청의 수목원법 일부개정 추진에 대하여 점차 강하게 증가는 항의들은 수목원법 일부개정 자체가 근본적으로 많은 문제를 내포하고 있음을 방증한다.
산림청이 정원의 주체가 된다면 산림보존 방식으로 유희적인 도시원예활동을 제한하게 되고, 그 결과로 도시민의 원예적 예술, 유희, 지식의 즐거움을 제한하게 되며, 종국에는 원예산업을 제한할 수 있다. 영국과 호주의 정원방문자 연구는 대부분의 정원방문 목적은 환경보존보다는 원예, 즉 꽃의 아름다움 감상이라고 언급하고 있다.
정원의 주체는 원예, 즉 농업이라고 할 수 있다. 미국의 3대 수목원 중 하나인 ‘달라스 수목원 및 식물원’이 시의회에 제출한 브리핑 자료를 살펴보면, 그 주요업무는 원예로 구현되는 예술, 유희, 지식의 증진과 교육 및 연구의 제공으로 규정하고 있으며, 첫 번째 과업은 원예적 관리와 전시의 최고 아름다움 구현이고, 한편으로 원예적 즐거움을 나누는 공공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것이라고 언급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제 정원의 주체가 원예, 즉 농업을 전제로 할 때, 어떻게 정원이 농업, 즉 FTA로 상심한 농민의 새로운 희망이 될 수 있을지 의문을 가지게 될 것이다. 개발도상국을 벗어나서 선진국 문턱에 다다른 우리에게 정원이 어떤 이유에서 농업의 새로운 희망이 될 수 있을까? 1997년 처음 시작한 고양국제꽃박람회와 2013년 순천만 국제정원박람회는 무슨 차이를 가지는가?
이제는 새로운 패러다임 속에서 생산에만 집중할 것을 요구하기 보다는 새로운 삶의 방향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 이미 영국, 호주, 뉴질랜드 등의 선진국에서는 정원산업을 통하여 도시와 농촌 모두에게 경제적 만족뿐만 아니라 문화적 만족을 제공하고 있다. 사실상, 농촌은 이미 심각한 수준으로 고령화되었으며 FTA로 인하여 경제적 생산성은 더욱 열악해지고 있다. 고령화된 농민들에게 고품질의 농산물을 요구하는 것은 더 많은 노동력을 강요하는 것이며, ‘고품질, 고소득이 행복’이라는 사고는 끝이 없는 탐욕적 물질주의(materialism)일 뿐이다.
국제적으로 정원방문객은 연간 2억5천만 명으로 추정되는데, 영국은 최근 5,000개의 정원이 공개되고 있으며, 1999년 동안 대략 1천6백만 명의 방문자들이 영국정원을 방문하여 그 해 관광산업에서 가장 높은 성장을 나타냈고, 정원 식물과 자재 시장은 1969년에 이미 1억 파운드, 즉 한화로 1,700억 원 정도였다고 한다. 결국 정원은 단순한 화훼 시장의 확대뿐만 아니라 선진농업을 통한 창조적 문화시장의 창출이며, 이것은 지역축제와 같은 정원관광의 활성화로 지역 농산물인 과수, 채소 시장까지 확대시킬 것이다. 이것은 농업생명공학과는 다른 측면의 농업의 문화적 첨단산업이라고 할 수 있다.
정원은 선진국형 농업이다. 그런데, 농민의 새로운 희망인 정원 산업이 산림청의 수목원법 일부개정으로 오히려 농민의 손에서 빼앗길 위험에 놓인 것 같다. 정원의 주체는 첫째는 화훼 농민이며 과수와 채소 농민 역시 그 주체이다. FTA로 많은 희생을 감수하고 있는 농민들에게 산림청은 또 다른 희생을 강요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문이다. 정원은 농민들에게 마지막 희망일 수도 있다.
최근 일련의 사태들은 아마도 정원을 생각하며 대규모 건설공사를 연상하기 때문인 듯하다. 과거 1970년대부터 추진되어왔던 국토개발을 위한 전문건설기술인 중심의 도시개발은 이미 그 임무를 다하였다고 본다. 이제 개발도상국의 광역적 도시개발로 인한 경제성장은 더 이상 기대하기 어렵다. 공정무역, 사회적 기업 등과 같은 사회현상을 이해하며 도시와 농촌이 공동체적 발전을 추구하는 도시재생, 도시농업, 도시정원을 위하여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원예, 조경, 도시계획 전문위원회를 구성하여 농업, 즉 농민을 위한 정원산업을 지원하길 바란다. 그 시작은 정원법의 올바른 주체가 원예 농업인과 2013년에 입법화되어 시행되고 있는 도시농업법임을 확정함으로써 혼란과 다툼을 종결짓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