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형 제스프리 도입 제안
재배·유통, 과학적·구조적 스마트화 필요
(사)한국원예학회(회장 전창후)는 지난 20일 서울 서초구 aT센터 4층 창조룸1에서 ‘기후변화 대응, 원예작물 수급안정을 위한 방안 모색’을 핵심 주제로 ‘제19회 원예산업정책토론회’를 성황리에 개최했다. 이에 본지는 토론회 주요 발표 및 토론 내용을 요약했다.
# 탄소중립·적응대책으로 생산·공급 안정 총력

▲김방연 농림축산식품부 농촌탄소중립정책과 서기관 ‘농업분야 온실가스 감축 및 기후위기 적응 대책’ = 기후변화로 인한 농업 분야의 피해가 점점 심화되면서 실제 생산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 대응하기 위해 정부는 범부처 차원에서 기후변화 대응 정책을 수립하고 추진하고 있다. 2023년 탄소중립 기본계획을 마련해 저탄소 농업구조 전환을 추진하고 있으며, 논물 관리 등 농업 분야 감축 정책과 저메탄 사료 개발 등 축산 분야 감축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또한, 에너지 효율화를 높이고 재생에너지 확대를 통해 농업 분야의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또한 기후위기 적응 강화 대책을 수립해 농업 기상 정보의 고도화, 기후재난 대응, 재해 대응 생산 기반 강화, 기후 적응형 기술과 품종 개발, 기후위기 대응 기반 구축을 추진하고 있다. 특히, 이상기상으로 인해 생산량이 크게 감소한 과수의 생산 안정을 위해 별도의 대책을 마련해 현장에서 대응하고 있으며, 기후변화에 구조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중장기적인 원예농산물 수급 안정 대책도 수립해 추진하고 있다.
향후 정부는 농업 분야의 기후 주요 리스크를 분석하고 대응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 제4차 기후위기 적응 강화 대책을 마련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이상기상과 기후변화 관련 정보를 제공하는 시스템을 고도화해 시군 담당자와 농업인이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도록 지원할 방침이다. 또한, 기후변화에 적응할 수 있도록 품종 개발을 지속적으로 추진하고 스마트농업을 확산하며, 현장에서 생육 관리를 전담하는 체계를 구축할 예정이다. 아울러 안정적인 생산과 공급을 위해 생산 기반 시설을 정비하고, 방재 시설을 확충하며, 취약 원예농산물의 신규 재배 적지를 확보하는 한편, 상시 비축 시스템도 구축할 계획이다.
# ‘신품종 재배·비축기지 광역화’ 등 14대 수급 안정 전략 추진

▲문인철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 수급이사 ‘기후변화 대응 원예농산물 수급안정 방안’ = 기후변화로 인한 농산물 생육 문제와 국제 식량안보 위기 증대로 기존의 비축사업만으로는 안정적인 농산물 수급 관리가 어려워진 상황에서, aT는 이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고자 기후변화에 따른 안정적 농산물 수급 관리 대책을 추진하고 있다. 2024년 기후변화 대응 수급 TF를 발족했으며, 같은 해 원예농산물 수급 안정 방안을 논의하기 위한 국회 공청회를 개최했다. 또한, 2025년 1월에는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전담 정규 조직을 신설했다. 이를 바탕으로 안정적인 생산 지원, 비축 역량 제고, 식량 무기화 대응 및 통계농업 혁신의 네 가지 분야에서 총 14개의 전략 과제를 발굴해 추진하고 있다.
우선, 고랭지 배추 재배 면적 감소에 대응해 2025년에는 6개 준고랭지 지역에서 ‘하라듀’ 등 신품종을 포함한 여름배추 시범재배를 12ha 규모로 추진할 계획이다. 이를 통해 생산된 배추 300톤은 정부 수매로 수급 조절에 활용되며, 이 중 50톤은 김치 제조 실증에 사용될 예정이다.
또한, 민관 협력 모델을 바탕으로 과수 신품종 육성을 추진하고 있으며, 2025년에는 사과를 대상으로 한 신품종 생산 및 유통 지원 사업을 시범적으로 추진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통합마케팅 조직을 운영하고, 생산된 과수는 온라인 도매시장 연계 판매 및 직거래 장터를 통한 홍보를 지원할 예정이다.
기후변화에 대응한 비축 역량 제고를 위해 기존의 노후화된 권역별 비축기지를 광역화하는 사업도 추진 중이다. 현재 전국 6개소에서 운영되고 있는 비축기지를 2025년부터 권역별 3개소로 재편하는 작업을 시작하며, 2027년까지 강원권 최초로 ‘채소류 특화’ 강릉 비축기지를 완공할 계획이다.
아울러, 농산물의 품질 유지와 저장 기간 연장을 위해 농진청 소속 기관인 농업과학원 및 원예특작과학원과 연계해 2025년부터 봄배추를 대상으로 CA 저장 및 MA 포장, 살균기 등 신기술 도입 실증을 추진할 예정이다. 이를 통해 저장 기술을 검증하고 실증 결과를 반영해 저장 환경을 지속적으로 개선할 계획이다.
연도별 재배면적, 생산량, 소비량 등을 고려해 정부 비축 농산물의 적기 및 적정 비축량을 산출하는 체계를 구축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 2025년부터 단계별 연구 용역을 진행하며, 2027년까지 통계농업 기반의 선제적 수급 관리 시스템을 고도화할 예정이다.
# ‘한국형 제스프리’ 도입으로 안정 생산·소득 증대 추진

▲박정관 농촌진흥청 국립원예특작과학원 원예작물부장 ‘과수 신품종 전문생산단지 조성 및 안정적 생산 기반 마련’ = 원예작물의 수급 불안정 문제는 과수의 가치사슬 전반에서 발생하고 있다.
과수의 안정적인 생산과 지속 가능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농가 소득 증진을 중심으로 한 뉴질랜드 제스프리 시스템 도입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뉴질랜드는 키위 산업의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민간 주도의 농업법인이자 주식회사인 제스프리를 설립하고 생산과 유통을 분리하는 구조를 도입했다. 농가는 품질이 우수한 키위 생산에 집중하고, 생산 이후 과정은 전문 유통, 마케팅, 수출 조직이 전담하는 체계를 구축해 성공적인 사례로 평가되고 있다.
우리나라의 생산 여건을 고려할 때, 뉴질랜드 사례를 참고해 한국형 제스프리 시스템을 도입하고 과수별 특성에 맞는 운영 방안을 추진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한국과수농협연합회를 중심으로 가칭 과수신품종생산유통사업단을 설립하고, 품목별 사업단을 하부 조직으로 구성하는 방안을 검토할 수 있다. 사과의 경우 한국사과연합회가 전담해 시범 운영을 거친 후 단계적으로 배, 포도, 복숭아 등으로 확대해 나가는 방식이 적절할 것으로 보인다.
정부 차원의 지원도 필요하다. 농림축산식품부는 과수신품종생산유통사업단과 사과사업단 운영에 필요한 예산을 지원하고, 관리 및 감독 역할을 수행한다. 농촌진흥청과 농수산식품유통공사는 품종 육성 및 보급, 기술 지원, 수출 및 온·오프라인 유통 지원 등의 역할을 맡는다.
민관 협력을 통해 농업인의 소득 증대, 안정 생산, 경쟁력 강화를 핵심 목표로 추진하는 구조로 설계된다. 특히 스마트 과수원 특화단지는 2025년 4개소 96헥타르로 시작해 2034년까지 100개소 2,000헥타르로 확대될 예정이다. 신품종 수매 가격은 기존 일반 품종 대비 10% 이상 높게 책정해 인센티브를 제공할 계획이다.
선별, 저장, 가공 단계에서는 농촌진흥청이 품종별 품질 규격과 등급을 설정하고, 농협과 농수산식품유통공사가 APC 운영 및 관리를 맡으며, 농수산식품유통공사가 수급 관리를 위한 비축을 담당하게 된다. 뉴질랜드 제스프리 사례를 참고해 일정 기준 이상의 생산과 수매 원칙을 적용하는 방안이 고려되고 있다.
향후, 유관 기관과의 협의 및 의견 수렴을 거쳐 2025년 상반기까지 과수신품종생산유통사업단과 사과사업단 운영 계획을 수립할 예정이다. 이후, 한국과수농협연합회 주관으로 조직 출범을 검토해 2025년 하반기 중 실행 방안을 마련할 계획이다.
◆ 종합토론
기후위기 대응과 농업 지속가능성·실질적 지원이 관건
농작물재해보험 수요 중심 품목 확대 필요

# 국가 탄소중립과 농업의 지속가능성을 함께 실현해야 해
▲김종화 강원대학교 교수 = 전 세계적 기후변화로 인해 농업은 이상기상, 자연재해 등으로 생산과 수급이 불안정해지고 있다. 특히 작년 사과 등 주요 품목의 냉해 피해로 가격이 폭등했고, 소비자물가 상승에 대응하기 위해 정부가 1,500억 원의 가격안정자금을 긴급 투입했다. 또한 기후변화로 사과·인삼·수박·복숭아 등의 재배적지가 북상하면서 주산지 변화가 불가피해지고 있다.
정부가 온실가스 감축과 기후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탄소중립‧녹색성장 국가 기본계획’을 수립하고, 제3차 국가 기후위기 적응 강화대책을 통해 농업기상정보 고도화, 생산기반 적응력 강화, 품종 개발, 인프라 스마트화 등을 추진하는 것은 매우 바람직하다. 농업은 전체 온실가스 배출의 3.1%에 불과하지만 저탄소 생산과 유통을 위한 기술·제도 개발이 필요하다.
아울러 새 재배적지와 품종을 연구하고 지자체와 농업인이 참여하는 거버넌스로 지역농업을 재편해야 하며, 논·산림 같은 그린카본과 갯벌·습지 등 블루카본이 지닌 탄소 흡수·저장 기능을 농업정책에 활용해 국가 탄소중립과 농업의 지속가능성을 함께 실현해야 한다.
# 저탄소 농산물인증제도 예산 확대 시급
▲장호열 원예산업신문 전무 = 우리나라는 농경지 중심의 비에너지 온실가스 배출만 주로 조사하고 있어 정확한 배출량 조사가 이뤄지질 않고 있다. 에너지분야 배출량 조사를 통한 원예분야 온실가스 감축노력도 시급하다.
저탄소 농산물 인증제도는 올해부터 네 가지 기준을 적용하지만 예산 부족으로 많은 농가들이 참여하지 못하는 실정이므로 예산 확대가 요구된다. 지금까지 저탄소농업은 기술개발과 보급에만 집중돼 왔고 이를 활용하는 지원제도는 부족하다. 이에 대한 대책도 긴요하다.
기상재해를 줄이기 위한 농업기상재해 조기경보시스템도 일부 지역에만 제공되고 있어 전국 단위 확대가 필수적이며, 기후변화 대응을 위해 아열대 과수 품종개발과 병해충 방제기술, 탄소배출 완화 재배 기준 마련도 중요하다.
올해 농작물 재해보험 대상을 녹두와 생강, 참깨 등으로 확대한다고 하지만 수요가 많은 품목으로 확대하는 방안과 함께 아열대 작물에 대한 검토도 필요하다. 자연재해성 병해충인 사과탄저병과 가을배추 무름병 등에 대한 하반기 시범도입도 대상 품목과 적용 범위를 넓혀야 할 것으로 보인다.
# 피해 속출 … 적극 지원 시급
▲이건호 경기도배연구연합회 부회장 = 2024년 기후변화로 인해 봄철 냉해 피해와 수확기 고온에 따른 일소·열과로 낙과 피해가 발생해 농가에 큰 손실이 있었다. 기후변화로 인한 피해에 대한 대응 매뉴얼이 없어 농가에서는 사후에야 문제를 인지하는 어려움을 겪고 있으므로, 연구기관의 선제적 예측 및 대응 연구가 필요하다.
또한 책임 기관에서는 이를 농가의 욕심에서 비롯된 생리장애로 치부하지 말고 자연재해라는 관점에서 적극적으로 대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현재 사과·배 농가는 화상병, 봄냉해, 일소, 태풍 등 다양한 자연재해로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재해보험도 보험료가 높고 보장 범위가 좁아 실효성이 떨어진다. 예를 들어 일소 피해 보장은 나무 전체 수확 후 6% 이상일 때만 가능하고 저장 상태에서 발생하는 일소과나 열과 낙과는 생리장애로 간주돼 보상이 어렵다. 이에 농가에서는 저렴하고 폭넓은 보장을 요구하고 있으며, 면세유지원과 냉해방지제 등 각종 지원 확대의 필요성도 제기되고 있다.
아울러 농업 인력난과 고령화로 인한 폐원이 늘어나는 상황에서 후계농이나 귀농을 위한 지원 체계를 강화해야 하며, 기후변화에 맞선 농업의 최전선에서 안정적인 과일 생산이 가능하도록 적극적인 연구와 정책적 지원이 시급하다.
# 혁신으로 농산물 비축 안정화 박차
▲심진현 충북원예농협 보은거점APC 센터장 = 충북원예농협 보은거점APC에는 농촌진흥청과의 협업으로 약 30평 규모의 한국형 CA저장고 두 동이 설치돼 부사 품종을 11월부터 6월까지 저장한 뒤 나머지 기간에는 여름배추를 CA저장함으로써 저장고 운용 효율성과 비축물량의 안정적 확보를 동시에 꾀하고 있다.
무조건적인 신품종 육성에 앞서 기존 품종에 대한 새로운 시각이 필요한데, 홍로 품종은 아리수와 비교했을 때 과수가 크고 동녹 등 생리장애가 상대적으로 적으나 지나친 착색 위주의 재배환경 때문에 과숙으로 인한 맛과 식감 저하와 탄저병 문제가 빈번하므로 착색률 50% 이상의 홍로를 8월 중순부터 적극 유통시켜 품질 개선과 재배환경 변화를 유도해야 한다.
정부 비축을 위해 민간창고 임대 의존도를 줄이는 데 공감하면서도 비축창고 신설에 따른 비용 문제가 있어 각 권역 거점산지유통센터의 공실률을 파악해 기존 저장고나 창고를 활용할 필요가 있으며, CA·MA와 같은 신기술 도입 역시 비용 부담과 전문 인력 부족 문제를 동시에 해결해야만 안정적 운용이 가능하다.
도매시장의 적정 가격 구간 설정에 따른 비축물량 산출도 중요하지만, 실제 농가의 영농환경과 소득을 함께 고려해 신중한 수급관리체계를 확립해야 한다.
# 표준화와 통합으로 신뢰 확보
▲김종기 (사)한국농식품유통품질관리협회 회장 = 농산물 가격 상승으로 국민 부담이 커지고 있으며, 기후변화로 생산 불확실성 증가, 수확량 감소, 유통비용 상승이 주요 원인이다.‘과수신품종생산유통사업단’은 기존 한국과수농협연합회와 역할이 중복될 우려가 있다. 신품종 개발은 10년 이상 소요되며, ‘홍로’, ‘황금배’ 외 보급 실적이 저조하다. ‘후지’ 사과 대체 신품종 여부도 검토해야 한다. 샤인머스켓·블루베리 사례처럼 품종 확산 시 품질 저하 문제가 발생할 수 있어 전국 생산자 조직의 브랜드 통합과 품질 표준화가 필요하다.
2023년 농림식품부의 유통구조 개선 방안에는 도매시장 공공성 강화, 온라인 도매시장 활성화, 산지유통 규모화 등이 포함됐다. 유통비용 절감을 위해 스마트APC 100개소를 보급 중이나, 물량 부족과 품질관리 비용 증가 문제가 있다. 소비지 요구가 다양해 APC 운영 부담이 커지고 있어, ‘제스프리’처럼 품질인증제를 도입해 신뢰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
# 구조 전문화, 기술 개선 필요해
▲백정민 ㈜에코플랜츠 대표이사 = 과수 가치사슬은 투입, 재배·생산, 선별·저장·가공, 유통·마케팅, 소비·수출 단계별로 문제가 발생한다. 투입 단계에서는 신품종 보급이 어렵고, 재배 단계에서는 농가 고령화와 경영비 상승으로 소득이 감소한다. 유통 측면에서는 농협 중심 체계가 농가 소득 증대와 공급 안정에 한계가 있어, ZESPRI와 유사한 방식으로 유통·마케팅을 전문 조직이 맡도록 제안한다.
기후변화가 심화되면서 생산성과 품질이 저하될 수 있으므로, 기후 적응형 품종 개발과 스마트팜·비가림시설 같은 재배 기술 개선이 중요해진다. 예컨대 냉해·고온 피해를 줄이는 자재를 개발·보급하고, 지역 과수 조합의 방제력에 기후변화 대응 기술을 포함해야 한다. 그러나 국내 농업 구조와 신품종 도입에 따른 비용 부담, 이해관계자 간 협업 문제 등도 해결해야 할 과제로 지목된다.
장기적으로 품종 개발과 농가 인식 개선, 온·오프라인 유통 강화와 수출 확대 전략이 병행돼야 한다. 한국형 ‘제스프리’ 시스템 도입은 유망해 보이지만, 국내 상황에 맞춘 세부 계획과 지속적인 지원 정책이 뒷받침돼야 할 것이다.
이번 제19회 원예산업정책토론회에서는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원예산업의 지속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정책적, 기술적, 경제적 측면에서 다각적인 노력이 필요하다는 점이 강조됐다. 참석자들은 정부와 민간 부문이 협력해 현실적인 해결책을 마련하고, 농업인들이 기후변화에 적절히 대응할 수 있도록 실질적인 지원이 이뤄져야 한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