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추 산지폐기, 달리 해법은 없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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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추 가격이 10kg이 1천6백원에 육박했던 게 불과 며칠 전이다. 정부에서 배추 산지폐기를 하겠다고 했지만 막상 농가들이 배추 산지폐기를 주저하자 도매시장에 배추가 물밀듯 반입되면서 가격이 갑자기 폭락했다. 아무리 보통품질의 배추라고 하더라도 10kg이 1천6백원대로 도매시장에서 거래된다면 너무 심한 것 아닐까. 또 그 시세로 배추를 판다면 도대체 농가들에게 돌아가는 조수익은 얼마가 된다는 소리일가. 배추 가격이 바닥을 친 발단은 이렇다. 정부는 지난달 초 배추 10만톤을 시장에서 격리하기로 했고, 그 소식이 전해진 뒤 배추가격은 다소 안정세를 찾아가는 듯했다. 그러나 농가들이 주저하며 배추 산지폐기를 미뤄오자 도매시장에 반입 배추물량은 폭주했고, 배추가격은 형편없는 바닥시세를 쳤다.충격을 받은 농가들은 급하게 여기저기서 산지폐기를 서둘러 하기 시작했고, 그제야 배추가격은 차츰 안정세를 찾아나갔다. 풍년의 축복은 이렇게 양면의 칼날처럼 또 다른 희생을 요구하고 있었다. 어째서 풍년이 농가들에게는 고통이어야 하는 것일까 알 수 없는 현상이었다. 이런 현상은 배추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농산물 전체품목에 해당되고 있다. 정부는 언제나 똑같은 말을 되풀이했다. 이럴 때는 산지폐기밖에 달리 방법이 없다고. 하긴 기후가 좋아 든 풍년을 누가 책임지겠는가. 올해 배추물량이 증가한 것은 너무 좋았던 기후조건 덕분이다. 하늘에 감사제라도 지내야 할 풍년이었지만, 농가는 제살을 깎는 고통으로 감사제를 대신했다. 자유주의 시장경제 시스템의 맹점이었다. 앞으로 우리는 더욱 더 세련되고 수위가 높아진 자유주의 시장경제체제 속에서 살아남아야 한다. 농사꾼들도 마찬가지다.모두 살기 위해서 식량을 땅에 파묻겠다는데 누가 뭐라고 비난할 수 있겠는가. 없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가난의 쳇바퀴를 벗어나지 못했던 나라에서, 밑바닥을 다 보이는 밥그릇에 남은 밥풀 한 알이라도 싹싹 긁어먹어야 비로소 마음이 차분해지고 마는 정서를 간직하고 있는 이 나라 사람들은, 농사를 대대손손 지어오며 살아온 선조들의 유전자를 몸속에 간직하고 있다.아직까지는 하자 없는 식량을 땅속에 파묻는 일을 가볍게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은 정서다. 옛날 노인들에게는 ‘천벌을 받을 일’이다.분명 산지폐기 외에도 다른 방법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당장은 그 방법을 찾는데 투자비용과 시간, 노력이 들어가야 하겠지만, 더 나은 우리나라 농업의 발전을 위해서는 산지폐기 말고 다른 방법을 찾아내야만 한다. 그게 옳은 길이다. 경제적인 논리로도 어차피 버리고 말 것을 생산하는 일은 ‘낭비’ 그 자체다. 앞으로는 정부가 너무 쉽게 산지폐기를 말하지 않기를 바람해본다.■최현주<취재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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