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0년 넘게 농사를 지었지만... 배 농사 이건 할수록 더 어렵네” 작년 12월 만났던 배 재배 농가의 말이다. 최근 언론에선 비싼 과일값을 거론하지만 정작 배 농가는 팔 배가 없어 시름이 깊다. 작년 전국적으로 고온 피해가 많아서 심각한 농가는 수확 과실의 70%가 넘게 피해를 봤고, 일부 지역에서는 깍지벌레와 검은별무늬병 병해충 피해도 컸다. 해마다 반복되는 이들 피해에 효과적으로 대응하려면 적기에 약제 방제를 하는 것과 더불어 전정작업, 열매 달기, 비료 주기, 물주기 등 모든 재배 기술을 조화롭게 적용해야 한다. 좋은 재배 기술은 병 발생을 아예 차단하거나 약제 방제 효과를 극적으로 향상시킬 수 있다. 무엇보다 가장 경제적인 병해충 관리 기술이라는 장점을 가진다.
우선, 겨울철이 되면 사과와 배나무 재배에 위협적인 화상병 증상을 아주 쉽게 확인할 수 있다. 낙엽 후 외부증상을 보아 잎이 떨어지지 않은 나무라면 화상병을 의심해 볼 수 있다. 가까운 농업기술센터에 문의해 정확한 진단을 받고, 의심되는 나무는 관계자의 권고를 받아 빠른 격리 조치를 하도록 한다.
겨울철 전정작업은 나무의 골격을 건전하게 세우고 안정적으로 열매달기를 할 수 있는 중요한 작업이다. 실제 전정작업을 하면서 말라 죽어가는 그루터기를 정리하거나 겹무늬병, 줄기마름병 등 병든 부분을 도려내는 작업을 병행한다. 이렇게 하는 것은 새로운 가지에 지속적인 감염을 줄이고, 장마철과 같이 적기방제가 어려운 환경에서 효과적인 병 예방 대책이 된다. 또한 주경배나무이, 깍지벌레류, 복숭아순나방 등 문제 해충이 확산하는 것을 예방할 수 있다. 특히 곁가지 간격을 일정하게 배치하는 유인작업은 이후 생육기 햇가지 발생이 과도하지 않도록 만든다. 그 결과 살포한 약제가 병원균과 해충에 잘 부착하게 돼 병해충 방제 효과를 높이게 된다. 또한 열매달기를 너무 많게 하면 수확 후 저장양분이 적어서 줄기마름병에 취약하게 된다. 이와 반대로 열매달기를 적게 하면 햇가지 자람을 자극하고 저장양분이 적어 꽃눈 고사와 줄기마름병이 발생하게 된다.
이른 봄과 여름철에 순정리와 햇가지 유인작업은 과실 품질을 높일 뿐만 아니라, 약제 부착력을 높여 병해충 방제 효과를 높일 수 있다. 장마철 물이 고이지 않도록 물빼기를 잘하고 가뭄에는 물주기를 해서 양분공급과 뿌리 자람을 좋게 해 주면 흰날개무늬병과 줄기마름병 피해를 크게 줄여준다.
겨울철에 거친껍질을 벗겨내고, 수확 후 잔재물로 과실봉지, 끈, 썩은 과실 등을 잘 처리하는 것은 흰가루병, 겹무늬병, 주경배나무이, 복숭아순나방, 깍지벌레, 밑빠진벌레 등의 초기밀도를 줄여주는 효과가 있다. 또한 약제살포 효과를 탁월하게 높일 수 있다.
나무의 생육단계에 따라 재배 기술을 실제 현장에서 조화롭게 적용하기란 참 어렵다. 더구나 잦은 강우, 계속되는 가뭄, 생육 초기 저온, 생육기 고온, 태풍으로 인한 낙과 등과 같은 이상기상이라면 더 어려운 상황에 처하게 된다. 그럴지라도 정상적 나무자람과 고품질 과실 생산을 위한 재배관리를 해야만 하는 게 배 농사이다. ‘진자리 마른자리 갈아 뉘시며 손발이 다 닿도록 고생하시네’. 초등학교 시절 어버이날에 불렀던 ‘어머니의 마음’의 한 구절이다.
배나무와 30여 년을 함께 한 농가로선 ‘어머니의 마음’을 배나무에 전하고 있으리라 생각한다. 작년 과실 피해로 인한 시름의 깊이만큼 올해는 한창 웃을 수 있길 바란다. 할 수 있는 만큼 곧바로 실천하면서 말이다.
■송장훈<농진청 원예원 원예특작환경과 농업연구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