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연지·생장점 등 유전적 특성 그대로 유지

최근 두바이에서는 1년 치 강우량이 12시간 만에 내리고, 브라질에서는 체감온도가 62℃에 달하는 등 세계 곳곳에서 이상 기후 징후와 전에 없던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농업은 이러한 위험에 더 취약할 수밖에 없고 작은 변화만으로도 생육 환경에 큰 영향을 받는다. 이는 곧 농업의 안정성이 무너지고 많은 유전자원이 소실 위기에 놓일 수 있음을 의미한다. 실제로 작년 우리나라는 이례적인 장마로 인해 사과 가격이 폭등했다. 또한, 과수원에서는 언제부터인가 꾸준히 봄철 저온 피해를 걱정하고 있다. 특히 과수는 실내 재배가 어렵고 종자 보존이 어려워 각종 병해충과 극단적인 기후 조건의 피해를 더 우려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이러한 문제를 대비하고 해결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 첫째, 농업 유전자원의 중요성을 이해하고 이를 보존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유전자원은 다양한 환경 변화에 적응할 수 있는 농작물 품종을 개발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우리나라를 포함한 대부분의 선진국은 이러한 유전자원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나고야의정서 등 관련 협약을 확대하고 있다.
둘째로는 실질적인 기술이다. 당장 대규모의 급작스러운 피해가 발생한다면, 우리에게는 그때 필요한 노아의 방주가 존재할까. 과수에서는 초저온 동결보존 기술이 바로 그런 존재가 될 것이다. 초저온 동결보존은 유전자원을 장기간 안정적으로 보존할 수 있는 기술로, 과수의 휴면지·생장점 등 조직을 극저온 상태에서 저장하여 유전적 특성을 그대로 유지할 수 있다. 이를 통해 다양한 품종을 보호하고, 필요할 때 언제든지 활용할 수 있게 된다.
국립원예특작과학원 과수기초기반과에서는 이 초저온 동결보존 기술을 적용하여 사과 유전자원의 장기저장 이행을 하고 해마다 꾸준히 확대해가고 있다. 사과는 추위에 잘 견디기에 휴면지를 이용한 초저온 동결보존 기술 적용이 가능하다. 겨울철 휴면상태의 가지를 잘라 수분을 약 30%까지 건조한 후 여러 차례의 저온처리 과정을 거쳐 영하 150℃에서 영구 보존하면 된다.
올해부터는 국립농업과학원 유전자원센터와 협업하여 포도 유전자원을 대상으로 국내에서 활용 가능한 초저온 동결보존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포도는 추위에 견디는 성질이 약해 휴면지를 이용한 기술 적용이 어려워, 생장점을 이용한 ‘작은 방울 유리화법’을 연구하고 있다. 기내에서 조직배양한 약 2mm의 생장점을 탈수하고 보존용액에 방울 모양으로 가둔 뒤 영하 196℃의 액체질소에 급속 냉동시키는 기술이다. 이를 위해서는 다양한 종류의 용액과 적정 농도, 침지 시간 등 기본 프로토콜 확립이 요구되고, 빠르고 정교한 조직배양기술이 필요하다.
다양한 기술을 접목하여 최근에는 포도 ‘캠벨얼리’를 대상으로 약 50%의 재생률을 확인한 바 있다. 그러나 수많은 특성의 유전자원을 보존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자원을 대상으로 재현성이 보장된 기술이 꾸준히 연구돼야 할 것이다.
과수 초저온 동결보존 기술은 단순히 유전자원을 보존하는 것을 넘어, 미래의 농업을 대비하는 중요한 전략이다. 기후변화가 지속되고 있는 지금, 우리는 이러한 혁신적인 기술을 통해 유전자원을 보호하고, 농업의 지속 가능성을 확보해야 한다. 이는 우리의 식량 안보와 직결되며, 전 세계의 식량 안보를 지키는 데에도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다. 나아가 미래의 불확실성 속에서 농업의 안전망을 구축하는 데 보탬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
■윤병현<농진청 원예원 과수기초기반과 농업연구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