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도의 기호도가 바뀌고 있다
포도의 기호도가 바뀌고 있다
  • 원예산업신문
  • 승인 2020.05.11 1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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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벨얼리·MBA 등 감소세 … 유럽계 샤인머스켓 폭발적 증가
유럽종 지속 증가 수송성·저장성 ↑ 수출 기여

최근 위축되고 있는 포도산업을 살리기 위해 유럽계 포도가 깜짝(?) 구원투수로 등장하고 있는 가운데, 이런 현상이 잠깐이 아닌 지속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크다.

지난 1세기 동안 우리나라의 포도 산업은 환경 적응성이 뛰어나고 비교적 재배하기가 쉬운, 그러나 품질은 약간 아쉬운 품종, 예를 들면 ’캠벨얼리‘, ’세리단’, ‘슈튜벤’, ‘MBA’ 같은 포도 품종들이 지탱해 왔다. 이들 품종은 ‘재배는 용이하나 품질이 약간 떨어지는’ 미국종 포도와 ‘품질은 우수하나 재배가 까다로운’ 유럽종 포도를 교배하여 개발된 교잡종 품종이다. 미국종 포도의 특성을 더 많이 갖고 있어, 포도재배가 어려운 우리나라 기후풍토에 잘 적응하며 오랜 세월 우리나라 포도 시장을 책임져 왔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눈을 감고 포도를 연상하였을 때 머릿속에 떠올리는 포도에 대한 이미지도 이들 포도 품종이다.

1960년대 후반 혜성처럼 나타난 ‘거봉’이라는 교잡종 포도도 우리나라 포도산업을 고급화시키는데 일조한 일등 공신이다. 우리는 이 같은 포도 품종들로 인해 어려웠던 시절의 귀한 과일인 포도를 즐길 수 있었다. 그러나 세상은 바뀌고 있다.

앞서 언급한 품종들의 일부는 포도재배 면적 통계에도 잡히지 않을 정도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으며, 일부는 우리나라 포도산업에서 차지하는 위치가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포도에 대한 소비자의 기호도가 바뀌고 있음을 보여준다.

국가 간의 무역량과 종류가 폭발적으로 증가하여 다른 나라의 다양한 농산물을 경험하게 되었고, 소득증가에 따른 외국문물의 직접 경험으로 우리가 알지 못했던 처음 보는 포도도 맛보고 있다. 그중에는 녹색, 붉은색 포도처럼 반전이 있는 품종이 있다. 기성세대라면 얼마 전까지도 녹색 포도를 생각할 때, 이육사 시인의 ‘청포도’ 시를 연상하며 입안에 신물이 잔뜩 고이는 경험을 했을 것이다.

그러나 현재 침체된 포도산업을 소생시키기 위해 등장한 ‘샤인머스켓’이라는 유럽계 포도는 ‘녹색 포도는 곧 신 포도’라는 함수 관계를 불식시키고 있다. 또한 남반구에 위치한 나라에서 많이 수입되는 빨간색 유럽계 포도도 ‘빨간 포도는 덜 익은 포도’라는 인식을 깨뜨리고 있다. 이 품종들의 특징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껍질째 먹는 씨 없는 포도’이다. 이 특징은 전 세계적으로 나타나는 포도라는 과일에 대한 소비자의 기호도 변화를 보여준다.

껍질을 벗기고 씨를 뱉어야 하는 불편함 때문에 ‘캠벨얼리’와 ‘MBA’ 등과 같은 품종의 소비는 감소하는 반면, 외국산 포도의 수입이 증가하고 ‘샤인머스켓’의 재배면적이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이러한 포도에 대한 기호도는 쉽게 바뀌지 않을 것으로 예상한다. 포도에 대한 소비 패턴은 이용의 편리함, 신맛을 싫어하는 이들의 기호도를 따라갈 것이다.

또한, 각 가정의 포도구입 결정권자인 주부들은 자녀의 포도 소비 기호를 반영한 포도 소비 형태를 지속할 것으로 보인다. 생산에 있어서는 오랜 기간 함께 하였던 ‘캠벨얼리’, ‘MBA’ 등 우리나라 포도 ‘고전 품종’들의 생산이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즉, 지금의 소비 패턴 변화를 주도하고 있는 ‘샤인머스켓’, ‘홍주씨들리스’ 품종과 같은 유럽계 포도 품종들의 생산이 지속적으로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여기에, 수출확대를 위해 수송성과 저장성이 우수한 유럽계 포도 품종들에 대한 생산자의 관심도 높아질 것이다. 변화하는 소비자 기호도를 생각할 때 지속 가능한 형태의 생산·소비 구조를 미리 염두에 둬야 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노정호<농진청 원예원 기술지원과 농업연구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