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근 <부천원예농협 조합장>
이종근 <부천원예농협 조합장>
  • 원예산업신문
  • 승인 2012.09.24 1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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둥글고 넉넉한 추석 왔으면 좋겠다

 
농촌에서 나고 자란 내게 명절의 의미는 각별하다. 명절이면 대가족이 한자리에 모이니 어린 시절엔 함께 놀 동무가 많아서 무조건 좋았다. 평소엔 용납되지 않던 늦은 밤까지의 놀이가 허용되는 날이기도 했다. 조금 자라서는 평소에 자주 만나지 못했던 친척들의 얼굴을 보고, 살아가는 얘기를 들을 수 있어서 좋았다. 어떻게 사는지 안부를 묻고 어찌하는 게 좋을지 의견을 구하는 자리가 바로 명절이었다. 너의 할머니가 어떤 분이었고, 나의 아버지와 어떤 추억이 있었는지 자연스럽게 이야기되는 날이기도 했다. 심지어 젊은 시절에는 저 멀리 남쪽 끝이나 강원도 오지까지 명절 쇠러 떠나는 친구가 마냥 부럽기도 했다. 왠지 명절을 더 그럴 듯하게, 재밌게 보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추석이 다가오니 명절이 싫다, 괴롭다 하는 사람들을 주변에서 종종 본다. 물론 나도 예전처럼 명절이 재미있지 않다. 그래도 그런 말을 들으면 나는 좋은 추억이라도 갖고 있는데, 요즘 젊은 친구들은 그것마저도 없는 것 같아 슬그머니 안타까워 진다. 그리고 씁쓸하다. 우리 모두 예전처럼 즐거운 명절을 보낼 수는 없는 걸까?
명절을 이렇게 ‘의무방어전’처럼 혹은 데면데면하게 맞이하게 된 것이 어느 한 개인, 한 집안의 문제겠는가? 나는 추석을 앞두고 문득 이런 생각을 해 본다. 별별 토론, 토의가 많지만 우리 이쯤에서 한 번 ‘호호 깔깔 명절을 보내는 비법’ 뭐, 이런 제목의 발표나 토론, 사례공개의 장을 열어보면 어떨까 하는…
가족들만의 명절이 아니어도 좋을 것 같다. 요즘은 1인가구나 비혼자가 많으니 혈연을 넘어선 ‘명절 프로젝트’를 만들어 보는 것도 시대상황에 맞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함께 즐기며 사회적으로도 의미 있는 ‘사건’을 경험해 보는 명절도 좋겠다.
이런 생각까지 해 보게 된 것은 삶은 결국 그렇게 사소한 즐거움이 모여 이루어진다는 생각을 최근에 부쩍 자주하게 됐기 때문이다. 사소한 즐거움이 큰 행복으로 이어지고 사소한 불통이 크나 큰 불행으로 이어지는 경우를 우리는 살아가면서 흔하게 접하지 않는가.
사회적으로 흉흉한 사건이 많은 요즘이다. 사람들은 더 꽁꽁 문을 잠그게 됐고, 이웃간엔 모른 척 하는 게 상책이라는 서글픈 얘기가 나돈다. 입에 담기에도 민망한 사건들이 쉴 새 없이 터지니 그런 얘기하는 사람들을 어떻게 탓하겠는가.
그럼에도 아침, 저녁 출퇴근을 위해 변함없이 직장으로, 집으로 가는 차들의 행렬을 보거나 티 없이 맑게 웃으며 등하교 하는 아이들, 저녁장 보는 주부들을 보면 세상은 그래도 상식을 가진, 마음 착한 사람들에 의해 일정한 규칙을 갖고 돌아간다는 사실을 새삼 실감하며 안도하게 된다.  
아직 우리 주변엔 추석 보름달처럼 둥글고 넉넉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더 많다. 그리고 사람의 관계는 상대적인 경우가 많기에 서로의 노력여하에 따라 전혀 다르게 변할 수 있다.
우리의 명절이 이제 이런 역할을 했으면 좋겠다. 조상에 대해 감사하고, 힘들게 명맥을 이어가는 농업에 대해 생각해 보고, 이웃과 어울려 살아가는 소통 방식에 대해 고민하고, 지구가 좀 더 편안히 숨 쉴 수 있는 방안에 대해 고민해 보는 그런 역할 말이다.
시대가 변한만큼 명절의 모습이 변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어쨌거나 괴로운 명절은 아니어야 하지 않겠는가. 복잡하고 바쁘고 불안정한 시대를 위로할 수 있는 명절은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 다 같이 고민해 볼 문제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