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권(아산원예농협 조합장) - 대미배 수출 단독검역 도입 … 현장 우려 높아가
구본권(아산원예농협 조합장) - 대미배 수출 단독검역 도입 … 현장 우려 높아가
  • 권성환
  • 승인 2025.03.25 1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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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규 수출단지 확대, 베트남 사례 전철 밟을 수도

“이번 검역 방식의 변화는 단순한 제도 보완처럼 보일 수 있지만, 수출 현장에서는 수십 년간 어렵게 쌓아온 미국 시장의 신뢰 기반이 흔들릴 수 있다는 위기감이 큽니다.”

구본권 아산원예농협 조합장은 최근 농림축산검역본부가 공포한 ‘한국산 생과실 미국 수출검역요령’ 개정안과 관련해 이같이 말했다. 이번 개정안은 기존 한·미 합동검역 체제에 더해, 한국 검역관이 단독으로 검역을 수행할 수 있도록 하고, 신규 대미 수출단지 지정도 가능하게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미국과의 장기 검역 협상 끝에 2023년 7월 개정된 이후, 현장의 요구를 반영해 2025년 2월까지 유예됐다가 이번에 최종 확정·공포된 것이다.

농림축산검역본부는 미국 검역관이 한국 현지로 출장하지 못하는 상황에 대비해 한국 검역관의 단독검역 방식을 추가적으로 마련한 것일 뿐이라며, 기존 한·미 합동검역 시스템은 계속 유지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현장 분위기는 행정적 설명과는 사뭇 다르다. 제도 운영 과정에서 합동검역이 축소되고 단독검역이 확대될 가능성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구 조합장은 “그동안 미국 검역관이 국내 13개 수출단지에 상주하며, 한국 검역관과 함께 샘플링과 수출물량 점검 등 전 과정을 공동 수행해왔다”며 “현장에서 미국 검역관의 승인을 받은 뒤 즉시 검역증명서를 발급받고 선적까지 마무리됐기 때문에, 미국 현지에서 추가 검역 없이 곧바로 유통이 가능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단독검역 체제가 시행되면 이러한 절차가 미국 현지에서 다시 반복되면서, 예기치 못한 리스크가 늘어날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구 조합장은 “한국에서 검역을 완료하더라도 미국 현지에서 재검역이 진행되고, 이 과정에서 문제가 발견되면 해당 물량이 전량 폐기될 수 있다”며 “통관 지연으로 인한 선박 정박료, 현지 폐기 비용, 심지어 국내 반송 운임까지 더해지면, 농가 입장에서는 사실상 도박에 가까운 수출을 감수해야 하는 상황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번 개정안에 포함된 ‘대미수출단지 신규 지정’ 조항에 대해서도 경계심을 나타냈다. 현재 13개 지정 수출단지조차도 실제 수출 비율은 절반 수준에 불과할 만큼 엄격한 품질 기준을 요구받고 있는 상황이다. 

구 조합장은 “지정 단지에서 생산된 배 중 합격품의 50% 정도만 수출될 정도로 선별 기준이 까다롭고 철저하다”며 “그런데도 관리 여건이 검증되지 않은 신규 단지까지 수출이 가능해진다면, 전체적인 품질 저하와 함께 수출 확대라는 본래 목표 달성이 오히려 어려워질 수 있다”고 진단했다.

구 조합장은 과거 베트남 시장에서의 실패 사례를 언급하며 경고의 목소리를 높였다. “2018년 한국산 배가 8,900톤까지 베트남에 수출되며 급성장했지만, 명확한 단지 관리 없이 무분별하게 수출이 이뤄지면서 저품위과가 늘었고, 소비자 신뢰가 무너져 현재는 수출량이 3천 톤 이하로 급감했다”며 “미국 시장도 같은 전철을 밟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다”고 말했다.

구 조합장은 정부가 추진한 제도 개정의 취지를 이해하면서도, 현장의 우려를 단순한 기우로 간과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구 조합장은 “정부와 검역본부는 단독검역을 예외적 보완책으로 설명하지만, 현장에서는 제도의 방향성이 분명히 다르게 느껴진다”며 “단독검역이 제도화되면 비용 효율성과 행정 편의성을 이유로 합동검역은 점차 줄어들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이어 “정부는 현장의 목소리를 충분히 수렴해, 제도 운영 방향을 신중히 점검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한편, 구본권 조합장은 수출물류비 직접지원 폐지에 따른 현장 피해와 경쟁력 저하 문제도 강하게 지적했다. 그는 “수출물류비 직접지원이 사라지면서 수출농산물 생산단체들이 가장 먼저 체감하는 게 가격 경쟁력 약화”라며 “지난 수년간 정부에 대책 마련을 수차례 요청했지만, 뚜렷한 해법 없이 실효성 없는 간접지원 체계로만 전환된 것이 현실”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그동안 수출업체들은 물류비 보조 덕분에 가격을 맞춰 수출해 왔지만, 이제는 원가만으로는 경쟁이 어렵고 바이어들도 외면할 수밖에 없다”며 “간접지원 방식은 실효성이 떨어지고, 농가나 수출업체 입장에선 당장의 부담이 너무 큰 상황”이라고 호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