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는 아직도 재가 식지 않았다
정부가 미국산 사과를 대미 통상 협상 카드로 검토하고 있다는 보도가 나오자, 농민들의 반발이 들불처럼 번지고 있다. 전국 단위 조합과 단체들이 잇따라 공식 반대 입장을 밝히며, 정부의 수입 논의 철회를 요구하고 나섰다.
애초에 정부가 견지해온 수입 절차는 이유가 분명했다.
국내에 존재하지 않는 병해충의 유입을 막고, 자국 농업을 보호하기 위한 최소한의 방어선이었다. 그런데 이제 그 장치마저 협상의 지렛대로 바뀌는 순간, 농업계는 더는 믿을 곳이 없어진다.
지금 현장은 재난의 연속이다. 경북 일대 사과 농가는 지난봄 대형 산불로 인해 복구도 채 마치지 못한 상황이다. 여기에 냉해, 여름철 폭염, 병해충 피해까지 겹치면서, 농가는 올해도 ‘버텨보겠다’는 각오 하나로 과원을 지키고 있다. 그런 농민들에게 사과 수입 논의는 실질적인 위협이자, 정서적 좌절이다.
수입 문제가 제기될 때마다 등장하는 명분은 물가 안정과 소비자 선택권이다. 실제로 일부 소비자들은 ‘국산은 비싸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 ‘비싸다’는 말 속에는 누구도 말해주지 않는 맥락이 있다. 방제 비용, 인건비, 가을 수확 전까지 쏟아붓는 농민의 시간과 땀이 모두 들어 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따라 관세는 이미 대부분 철폐됐고, 품질 경쟁력도 미국산이 뒤지지 않는다는 조사 결과까지 있다. 부사 품종 관세도 2031년이면 철폐된다. 즉, 이제 남은 장벽은 검역이다. 그런데 이 마지막 장벽이 협상 카드로 오르내리는 순간, 농민들은 ‘우리를 흥정하고 있다’고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최근 한국농업경제학회 에서는 사과 시장이 전면 개방될 경우, 국내 가격이 최대 65%까지 하락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는 단순한 가격 문제가 아니라, 생계의 붕괴를 의미한다. 실제로 수입이 현실화되면 사과 재배를 포기하고 타 작목으로 전환하려는 농가가 속출할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그 이후다. 대체작물의 수급 불균형, 가격 폭락, 기술 부족, 경영 불안이 이어지면서 농업 전반이 연쇄적으로 흔들릴 수 있다.
사과는 단순한 품목이 아니라, 지역 경제와 농촌의 주요 생계 기반이 되어온 작목이란 걸 간과해선 안 된다.
사과는 지금도 재 속에서 자라고 있다.
산불로 그을린 과수원에서 땀 흘리며 농사 짓고 있는 농민에게 지금 국가가 보내야 할 메시지는 분명하다.
농민의 노력이 제도적 외면으로 무너지지 않도록, 이제는 정책이 응답할 차례다. 필요한 것은 수입 논의가 아니라, 농업을 국가의 기반으로 존중하는 태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