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시대 원예산업 미래 30년을 진단한다
자조금제도 수급불안 해소는 물론 우리농업의 든든한 버팀목 될 것 ‘농산자조금 육성 및 운영에 관한 법률’ 제정안 마련 자조금단체 품목 대표조직 역할 기반 마련될 듯 지역 집중도 높은 품목중심 지역자조금제도 도입 예정
■농산자조금제도의 효율적 운영과 조기정착 - 농산자조금, 생산자 중심의 농업 미래를 열다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두레, 품앗이를 통해 주변 사람들과 함께 어려움을 극복해왔다. 일부는 같이 일하는 사람들끼리 돈을 모아 농기계를 수리하거나 배수로를 정비하는 등 농사를 위해 필요한 곳에 사용하기도 했다. 이것이 발전한 형태가 오늘날의 자조금 제도와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개별 농업인이 해결할 수 없는 여러 문제점을 극복하기 위해 거출금을 모아, 스스로 지켜야 할 규칙을 만들고 그 규칙에 동참하면서 해당 품목의 발전 방향을 주체적으로 결정하는 것이다.
# 현재 18개 의무자조금 조성
정부는 1992년 ‘농어촌발전특별조치법'에 의해 축산물‘임의자조금’제도를 시작으로 보다 높은 수준의 시장개방 대응과 품목 경쟁력 확보 등을 위해 2004년 축산(양돈), 2013년에는 원예농산물 ‘의무자조금’제도가 도입되기에 이르렀다.
자조금 제도 도입 이후 자조금 조성 품목은 점차 확대되었으며 제도적으로 지속적인 발전을 거듭해왔다. 2013년 ‘농수산자조금 조성 및 육성에 관한 법’제정을 통해 법적 기반을 공고히 했고, 2018년부터는 임의자조금 졸업제를 실시, 자조금의 핵심 기능인 ‘생산유통 자율조절(제21조의2)’조항 신설 등을 통해 의무자조금의 수급조절 역할을 강화했다.
2015년 인삼을 시작으로 2025년 현재까지 의무자조금 18개 품목, 임의자조금 12개 품목이 조성·운영 중이다. 전체 자조금 사업비는 310억원에 달하며, 의무자조금의 경우 해당 품목 농업인 등이 거출한 일정 금액에 국비를 최대 1:1까지 지원받고 있다. 자조금은 농산물 수급 조절, 품질 향상, 소비촉진, 수출 확대, 교육·홍보 등 품목 발전을 위해 다양한 영역에서 사용되고 있다. 자조금단체가 사업계획을 수립하고 사업을 추진하는 한편, 정부는 자조금단체의 사업계획을 검토하고 평가하며, 현장점검 등을 통해 자조금이 투명하게 운영되도록 관리하고 있다.
# 소비홍보 중심에서 수급조절 수행
자조금 사업의 부문별 사용 비중을 보면, 2023년 기준으로 소비홍보 27.9%, 수급안정 27.2%, 교육·정보제공 14%, 경쟁력 제고 7.1% 등으로 다양화되고 있다. 기존의 단순한 소비홍보 중심 구조에서 벗어나, 생산자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을 주는 수급조절 및 경쟁력 강화, 수출 기반 조성 등으로 사업이 확대된 것이다.
그 중에서도 자조금의 중요한 기능 중의 하나가 농수산자조금법 제21조의2(생산·유통자율조절)에 따른 해당 품목에 대한 수급조절 권한일 것이다. 수급 상황에 따라 출하 정지 명령을 내리고, 위반자에게 과태료를 부과할 수 있는 권한이 있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단체의 특성에 따라 경작 신고 또는 출하신고를 의무화 하기도 하고, 수급상황에 따라 시장 출하 규격을 설정할 수 있으며, 수출 등 단일유통조직을 지정하여 창구를 단일화 할 수도 있게 된 것이다. 이는 자조금단체가 소비홍보 사업 중심에서 생산자를 위한 수급안정 및 품목 경쟁력 육성 등 다양한 기능을 수행하면서 생산자를 대표하는 조직으로 탈바꿈하는 계기가 되었다.
마늘과 양파의 경우 주산지 중심으로 농업인 교육과 경작 신고를 현장에 정착시켜 수급 조절의 토대를 마련하고 있다. 경작신고 의무화를 통해, 선제적 수급조절 기반을 마련하였고, 매년 경작신고와 함께 재배면적 조사와 실측을 통해 주산지 농협, 지자체에 정확한 생산 통계를 제공함으로써 정부가 수급 정책의 방향을 잡는데 도움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수급조절을 위한 가능한 방안을 모색하여 실천하기도 한다. 과잉생산이 예측되었을 때는‘한뿌리 뽑기 운동’을, 과소 생산이 예상되는 곳은 예비묘를 공급하거나 추가 정식하는 방식이다. 농업인이 스스로 결정하고 재배면적을 관리함으로써 수급 관리에 참여하는 대표 정책이 되었다. 정부가 인위적으로 재배면적을 일괄 조정하는 방식이 아니라 생산자 스스로 정한 규율을 통해 생산 면적을 조정 관리한다는 의미로 자조금의 기능과 역할이 무엇인지 보여주고 있는 대표적인 사례일 것이다.
또다른 사례로는 사과는 지난해 사과 생산량이 급감하자 비정형과의 지원사업을 통해 사과 유통을 늘렸으며, 사과 무병묘 유통 활성화를 추진하여 고품질의 사과 생산에 기여했다. 배 또한 지난해 개화기 냉해 피해, 폭염으로 인한 열과 피해로 생산량 감소를 겪은 경험을 바탕으로 올해는 개화기 저온피해 경감 약제를 할인 공급, 열과 피해 농산물에 대한 가공지원 사업을 본격 추진하고 있다.
# 자조금단체 5년 단위 중장기 계획 수립
대부분의 자조금단체는 해당 품목 산업 발전을 위해 5년 단위 중장기 발전계획을 수립하고 있다. 스스로 설정한 과제를 이행하고 정부는 이를 평가하여 결과에 따라 보조금을 차등 지원하고 있다. 이는 자조금단체가 해당 품목의 생산과 유통 현황을 진단하고 발전 방향을 고민하는 계기가 되었다. 자조금 사업은 더 이상 1년짜리 단발성 사업이 아닌 중장기적인 관점에서 품목 산업을 견인하는 역할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렇듯 짧은 시기 동안 자조금단체는 외형적인 성장을 거두고 있다. 이러한 자조금의 성장과 성과에도 불구하고 현장에서는 여러 한계점과 개선 과제가 분명하게 나타나고 있다. 자조금에 대한 인식 부족, 자조금 미납자의 무임승차 문제 등이 점차 부각되기 시작했다. 현장에서 농업인이 느끼는 제도의 한계점과 현행법의 미비점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이는 해외 농업 분야 선진국에서 100년에 걸쳐 만들어온 자조금 제도를 우리나라는 불과 30년 만에 조기에 정착시키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있지만, 선진국에서 장기간 걸쳐 겪었던 효과와 시행착오를 우리는 압축적으로 경험하고 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문제점이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먼저, 의무거출금에 대한 농업인들의 인식 부족에 대해 이야기 하고싶다. 자조금은 전체 농업인을 대상으로 사업을 운영하는 구조임에도 불구하고, 거출 대상인 농업인의 참여율이 낮고, 법적으로 거출금에 대한 징수 권한이 제한적이다. 이는 자조금 사업의 효과를 현장에서는 체감하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직접적인 혜택이 없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농업인의 자조금 납부 및 참여율이 낮아 거출금이 적게 모이게 되고 이로 인해 제한된 사업비로 자조금 활동을 추진하다보니 자조금의 효과가 현장에 골고루 미치지 못하는 악순환이 일어나는 구조이다.
# 공공성 강화 위한 법적 지위향상 필요
자조금 납부에 소극적인 이유 중 하나로 자조금 단체의 법적 지위가‘민법상 비영리단체’라는 점을 들 수 있다. 이는 자조금단체의 법적 정당성을 약화시키는 요소다. 정부는 자조금단체에게 수급 관리라는 공공의 역할과 공적 의무를 부여하고 있지만, 이를 이행하는 조직이‘비영리 사단법인’이라면 분명한 한계점이 있다. 현장에서는 비영리단체가 모든 농업인을 대상으로 자조금을 거출하고, 경작신고를 의무화 하는 것에 거부감을 표하고 있으며 이는 자조금단체의 활동을 위축시키는 결과를 초래한다. 단체의 대표성과 공공성을 강화하기 위해서라도 법적 지위를 바꿀 필요가 있다.
그리고, 자조금단체의 조직력과 인적 자원도 부족하다. 자조금단체별로 평균 3.1명의 인력이 많게는 10만명 적게는 1천명의 농업인에 대해 거출금을 부과하고 있다. 거출금 수납·민원대응에 업무가 집중되고 있다보니, 수급정책과 다양한 사업추진에 힘을 쏟지 못하고 전문성 확보도 어려운 실정이다. 자조금단체의 전문인력 인력 확충도 또 하나의 과제이다.
정부는 이러한 문제 인식을 바탕으로 오랫동안 농산 자조금법 제정을 고민해왔다. 자조금의 조성을 넘어서 자조금단체의 성장과 품목 대표조직으로서의 기능을 강화하기 위해 ‘농산자조금 육성 및 운용에 관한 법률’제정안을 마련하였고, 연내 통과를 목표로 준비하고 있다.
제정 법률안의 핵심 내용은 아래와 같다.
# 자조금법상 특수법인 전환
첫째. 자조금단체의 법적 지위를 민법상의 비영리법인이 아닌 자조금법상의 특수법인으로 전환한다. 이를 통해, 자조금단체는 품목을 대표하는 공적 단체이자 해당품목의 거출금 부과와 수급관리 주체로서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현재 농식품부의 사업만 수행하고 있지만 앞으로는 지방자치단체와 공공기관의 사업을 위탁받아 수행할 근거를 가지게 된다. 이를 통해 자조금단체가 명실공히 품목 대표조직으로서 역할을 하는 기반이 마련된 것이다.
둘째. 그동안 모호했던 회원의 범위가 명확해진다. 현행법에서는‘농수산업자’의 범위와 해석에 있어서 꾸준히 논란이 되어왔다. 이러한 논란을 해소하고자 농업인 등을 당연회원으로 가공·유통업체 등을 특별회원으로 구분한다. 회원의 범위를 분명하게 구분함으로써 품목의 특성을 고려하여 회원의 범위를 자율적으로 설정할 수 있게 되었다. 자조금 거출의 어려움을 일부 해소할 것으로 기대한다.
셋째. 무임승차는 원천 차단된다. 자조금의 역할과 영향이 확대되면서 자조금 미납자의 무임승차를 원천적으로 차단하자는 목소리가 커져갔다. 자조금 미납자에 대한 페널티로 정부 지원사업만 배제해왔던 부분을 지자체 사업까지 배제할 수 있도록 제도를 마련하였다. 이로써 모든 정부·지자체 정책 사업은 자조금 납부자 위주로 지원될 것이다.
넷째. 지역자조금 제도를 새롭게 도입한다. 현재 자조금은 1품목 1단체의 원칙과 전국 참여 기준으로 설립하고 있다. 무, 배추는 국민 식생활에 꼭 필요하면서 수급관리가 필요한 품목이지만 지역별로 수확하는 시기가 달라 전국 자조금으로 성장하기 어려운 품목이다. 이에, 작형을 구분하고 지역 집중도가 높은 품목을 중심으로 ‘지역자조금’제도를 도입할 예정이다. 특정 지역에 대한 수급관리를 실시하고 점차 여러 지역으로 확대하게 된다면 결국 작형에 따라 연중 관리가 되는 것이다. 강원여름배추, 전남가을·겨울배추, 제주월동무, 전남겨울대파 등이 대표적인 사례가 될 것이다. 해당 지자체에서 지역자조금을 육성함으로써 해당 품목을 재배하는 관내 농업인의 50% 이상이 참여하는 중요한 수급 정책이 될 것이다.
# 자조금단체 역할과 영향력 확대
자조금단체는 또 하나의 전환점을 맞이하고 있다. 수급 관리에 있어서 자조금단체의 역할과 영향력 확대를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미 국민생활에 큰 영향을 미치며 수급관리가 필요한 마늘·양파 품목의 경우 자조금단체의 지역 대의원들이 주산지 지자체와 함께 경작신고를 실시하고 해당 지역 내 생육상황을 점검하며 관내 농업인 대상 교육 담당하는 등 많은 역할을 해오고 있다. 정부 수급 정책의 관련 의사결정을 도출하는 과정에서 자조금단체가 참여하면서 농업인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정부는 자조금단체를 통해 농업인의 의견을 반영하는 정책을 만들고 있다. 앞으로는 이러한 자조금단체의 기능과 활동을 확대하고 마늘·양파 뿐만 아니라 다른 품목에도 적용할 예정이다.
정부의 수급 정책방향도 변화의 시점에 놓여 있다. 그동안 기존 수급 정책은 정부 주도의 과잉생산 상황을 전제로 한 면적조절 등 사후 정책 중심이었다. 이러한 사후적 대책은 항상 많은 예산과 갈등을 초래했다. 그러나 고령화된 농촌 인력구조와 예측할 수 없는 이상기후는 과잉생산 뿐만 아니라, 공급 부족의 상황에 대해서도 면밀한 수급 정책을 요구하고 있다. 안정적 생산과 수급관리에 대한 생산자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지고, 자조금단체의 역할이 더욱 커지게 될 것이다. 정부도 자조금단체가 제 기능을 할 수 있도록 법적·재정적 지원을 강화해 나갈 것이다. 급변하는 농업 환경 변화 속에서 자조금단체는 정부와의 끊임없는 소통을 통해 농업인의 의견을 대변하고, 정부 수급 정책에 참여함으로써 든든한 협력자로 그 역할이 확대될 것이다. 오늘날 수급 불안의 위기 속에서 두레와 품앗이를 통해 어려움을 극복했던 옛 선조의 지혜처럼 자조금제도가 우리 농업의 든든한 버팀목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