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시대 원예산업 미래 30년을 진단한다
화훼산업, 지금이 구조 전환의 골든타임 디지털 기반 직거래 플랫폼 확산 탄소배출 저감형 재배기술 개발 및 보급 품목별 표준 기준 정립, 공동브랜드 품질 인증
▣ 본지와 함께한 원예산업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 - 화훼산업
한국 화훼산업이 중대한 구조적 전환기를 맞고 있다. 2000년대 중반까지 높은 성장 가능성을 바탕으로 수출 유망 산업으로 주목받았던 화훼산업은, 2010년을 전후해 세계 경제의 침체, 유가 상승, 내수 소비 위축 등 복합적인 외부 요인이 작용하며 본격적인 위기 국면에 진입했다. 특히 절화 부문은 생산 기반의 약화와 더불어 수입산 절화의 시장 점유율 확대에 직면하면서 점차 경쟁력을 상실하고 있다.
현재 국내 절화 소비는 연간 국화 3억 송이, 장미 1억 송이를 상회할 정도로 여전히 일정 수준의 수요가 유지되고 있다. 그러나 생산비 상승과 비효율적인 유통 구조로 인해 국산 절화의 가격 경쟁력은 급격히 저하되었으며, 이로 인해 외국산 절화 수입이 점차 확대되고 있는 실정이다. 수입산 절화는 낮은 가격과 대량 공급을 무기로 소비자의 선택을 받고 있지만, 이는 결과적으로 국내 생산 기반을 더욱 취약하게 만드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절화는 전체 화훼산업의 60% 이상을 차지하는 핵심 품목으로, 이 부문의 침체는 산업 전반에 구조적인 타격을 초래하고 있다.
이러한 구조적 어려움에 더해, 최근에는 국민 생활방식의 변화 또한 산업의 방향에 영향을 주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정서적 안정과 삶의 만족도를 중시하는 경향이 강화되면서, 일상 속 꽃 소비가 점차 확산되고 있다. 소형 꽃다발, 정기 구독 서비스, 반려식물 개념 등은 새로운 소비 수요를 창출하는 긍정적인 변화로 평가된다. 그러나 이러한 소비 변화에 생산 및 유통 구조가 적시에 대응하지 못할 경우, 이와 같은 기회 역시 산업 재도약의 동력으로 연결되기 어렵다.
따라서 향후 화훼산업의 지속 가능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정책적·산업적 과제에 대한 종합적인 접근이 시급하다. 우선, 유통 구조의 혁신이 핵심 과제로 부상하고 있다. 현재의 복잡하고 비효율적인 유통 체계는 생산자와 소비자 모두에게 부담을 가중시키고 있으며, 가격 형성의 투명성 역시 확보되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화훼자조금 제도를 확대하여 생산자의 유통 자율성을 제고하고, 디지털 기반의 직거래 플랫폼 확산을 통해 유통단계를 간소화할 필요가 있다. 또한 수입 절화에 대한 검역을 강화하고, 경매장 상장을 통한 유통이력 관리 체계를 구축함으로써 불공정 거래와 탈세를 방지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 마련도 요구된다.
생산 측면에서는 스마트 기술과 친환경 생산기술의 도입이 절실하다. 고령화된 농촌 인력구조를 보완하고 생산성을 향상시키기 위해 스마트팜 기술의 현장 적용을 적극 지원해야 하며, 국산 절화를 중심으로 한 생산이력 기반의 탄소배출 저감형 재배 기술 개발 및 보급이 요구된다. 이는 국제적 환경 규범 대응뿐 아니라 지속가능한 고품질 생산 체계 구축을 위한 핵심 전략이 될 수 있다. 동시에 품목별로 표준화된 품질 기준을 정립하고, 이를 기반으로 고품질 국산 절화에 대한 시장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 생산자 스스로 품질 향상을 위한 자조적 노력을 강화하고, 공동브랜드와 품질인증을 연계한 체계적인 품질 관리 모델을 확산하는 것이 중요하다.
소비 기반의 다변화 역시 화훼산업의 미래를 좌우할 핵심 요소다. 변화한 소비 트렌드를 안정적인 수요로 전환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정책적 뒷받침이 필요하다. 소비 품목의 다양화 및 국산화, 다채로운 유통 채널을 통한 소형·맞춤형 상품 개발, 일상 속 꽃 소비 문화 확산을 위한 사회적 가치 캠페인 등이 추진되어야 한다. 아울러 정원산업, 치유농업, 도시녹화와 같은 인접 분야와의 융합을 통해 산업의 외연을 확장하고, 젊은 세대와 도시 소비자층을 대상으로 한 디지털 콘텐츠 및 체험 기반의 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함으로써 미래 소비자층을 확보할 수 있다.
이러한 전략들이 실효를 거두기 위해서는 다부처 간 유기적 협력과 중장기 산업 전략의 정립이 전제되어야 한다. 화훼산업육성종합계획은 생산 중심의 틀에서 벗어나 소비·문화 중심의 산업 생태계로의 대전환을 지향해야 하며, 농림축산식품부는 기존의 재배통계 중심에서 벗어나 소비통계 기반의 정책 수립 체계로의 전환이 필요하다. 아울러 환경부, 문화체육관광부, 중소벤처기업부 등 관계 부처가 공동으로 참여하는 통합적 정책 설계가 요구된다. 청년 인력 유입을 위한 창업 지원 확대, 생산기술 R&D 강화, 데이터 기반 수급 관리 체계 정비 등 구체적이고 실행력 있는 정책이 병행되어야 할 시점이다.
화훼는 단순한 농산물이 아니라, 국민의 정서를 풍요롭게 하고 도시 공간을 아름답게 채우며, 삶의 질을 제고하는 문화적 자산이다. 산업으로서의 경제적 가치는 물론이고, 도시 환경, 복지, 문화 등 다양한 공공적 가치와도 직결되어 있다. 한국 화훼산업은 지금, 그 존립과 미래를 결정짓는 중대한 기로에 서 있다. 이제는 구조 전환의 필요성을 인정하고, 지속 가능한 미래를 위한 체계적이고 전방위적인 대응에 나서야 할 때다. 이 위기를 기회로 전환할 수 있는 시간은 그리 길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