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하지만 작동하지 않은 화훼 표준규격
2025-05-21 나동하
화훼산업의 유통 질서를 정립하기 위해 마련된 국가 표준규격은 분명히 존재한다. 그러나 유통 현장에서 이 기준이 실제로 적용되는 경우는 드물다.
무엇보다 기준 자체가 현장의 현실과 괴리가 있다. 현행 표준은 품종별 특성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 채 단일 기준으로 묶여 있다.
줄기 길이, 꽃 크기, 개화 속도 등이 품종마다 다른데도 동일한 규격을 적용하니, 생산자는 현실적으로 맞추기 어렵고 결국 자체 기준이나 지역 관행을 따르게 된다.
기준 항목의 모호성도 문제다. 색상 선명도, 줄기의 곧음 등은 대부분 주관적으로 판단해야 하는 요소다. 정량화가 어려운 만큼 평가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수밖에 없고, 이는 유통 기준으로서의 신뢰도에 의문을 남긴다.
제도를 법적으로 강제하기도 쉽지 않다.
생산자 반발과 현장 혼선 우려로 정부 역시 뚜렷한 대응을 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규격은 고시돼 있지만, 이를 따르지 않아도 별다른 제재가 없는 상태다.
지금 필요한 것은 ‘존재하는 기준’이 아니라 ‘작동하는 기준’이다.
정부는 생산자, 유통 현장, 업계, 학계 등 다양한 주체의 의견을 폭넓게 수렴해 현실에 맞는 규격을 다시 설계해야 한다.
단순히 기준을 정하는 데 그치지 않고, 현장에서 이를 이행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실행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 시급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