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가루 자급, 껍데기만 남았다

2025-04-22     권성환

“국산 꽃가루 자급률 90%” 

정부가 내세운 목표는 수입에 의존하던 과수 꽃가루를 국내에서 안정적으로 확보하겠다는 현실적 필요에서 출발했다.

과수 인공수분에 필수적인 꽃가루를 국내에서 확보하겠다는 방향성은 타당했고, ‘꽃가루 채취단지 조성사업’은 그 구심점이었다.

하지만 10년이 지난 지금, 사업은 이름만 남긴 채 사실상 기능을 상실하고 있다. 

운영 주체의 부담이 가중되는 구조 속에 신규 신청은 끊겼고, 이미 조성된 단지마저 하나둘 문을 닫고 있다. 

현재 조성된 채취단지는 전국 8개 도, 14개 시·군에 걸쳐 있지만, 총 면적은 고작 30.3ha에 불과하다. 그마저도 운영 중단이나 기능 상실 상태에 놓인 곳이 적지 않다.

예산 흐름만 봐도 사업의 현주소를 짐작할 수 있다. 2013년 10억8,700만 원이던 예산은 해마다 줄어 2023년에는 7,300만 원까지 감소했고, 지난해와 올해는 신청이 저조해 예산이 편성되지 않았다.

꽃가루 채취단지 사업은 단지 몇 해 농사지어 수확하는 단기 성과형 사업이 아니다. 성목까지 8~10년이 걸리는 장기 계획과 지속적인 관리가 전제돼야 한다. 

따라서 이 사업은 단순히 조성비를 지원하는 것으로 끝나서는 안 된다. 운영·관리까지 함께 책임질 수 있는 제도 설계가 수반되지 않으면, 국산 꽃가루 자급이라는 정책 목표는 언제든 무너질 수 있다.

지금 필요한 것은 전면적인 구조 재설계다. 애초에 참여할 주체가 없고, 기존 운영자도 떠나는 상황이라면 단지 면적이 몇 ha인지는 의미가 없다. 국산 자급이 필요한 시기라면, 국산 자급이 가능한 구조부터 만들어야 한다. 정책은 사업 계획서에만 존재해서는 안 된다. 현장을 견디게 하는 실질이 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