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2기 국내 과수 산업 대표하는 관계자들의 목소리 들어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자국 우선주의와 보호무역주의를 앞세워 한국의 검역 절차를 지속적으로 문제 삼고 있는 가운데, 본지는 국내 과수 산업을 대표하는 관계자들의 목소리를 통해 업계가 처한 위기와 대응 전략을 들어봤다.
■ 서병진 한국사과연합회장(대구경북능금농협 조합장)
美, 사과 시장 개방 압박 … 근본적 대응 나서야
미국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출범과 더불어 한국 사과 시장 개방 요구가 더욱 거세지고 있다. 1993년 이래 지속돼 온 미국 측 압력이 최근 들어 더욱 구체화·심화되는 모양새다. 특히 미국 무역대표부(USTR)는 한국의 사과 수입 절차가 비관세 장벽이라고 지목하면서, 검역 규정(SPS)을 완화하거나 신속하게 처리할 것을 압박하고 있다.
미국산 사과의 국내 진입을 허용하라는 요구가 이제는 단순한 협상 카드가 아닌 현실적 위협으로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미국산 사과는 현재 농림축산검역본부가 수행하는 총 8단계의 수입위험분석 중에서 2단계를 통과한 상황이다. 미국의 정치적·경제적 압박 강도를 고려할 때, 남은 절차 진행 속도가 빨라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미국은 연간 400~500만 톤 규모의 사과를 생산하며 생산성·가격 경쟁력 측면에서 우리나라보다 압도적 우위에 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은 미국산 사과가 국내 유입 시 기존 국내 유통가격 대비 30% 저렴할 가능성을 제기했다. 생산비 구조와 규모의 경제 측면에서 열세인 국내 농가들이 큰 피해를 입을 것은 자명하다.
이제 우리는 세 가지 전략을 중심으로 근본적 대응에 나서야 한다.
첫째는 다축형 재배 방식 확대다. 다축형은 기존 방식 대비 햇빛 투과율이 높아 균일한 착색과 당도 향상이 가능하며, 생산성을 최대 3배까지 높일 수 있다. 더욱이 기계화가 용이해 노동력 부담을 줄이고 생산비 절감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둘째, 이상기후 대응을 위한 조·중생종 품종 확대다. 최근 고온과 열대야 현상으로 후지 품종의 착색 불량과 열과 현상 등 문제가 심각하다. 이에 쓰가루·시나노골드·아리수 등 기후 적응력이 뛰어난 조·중생종 품종으로 생산을 다변화해 리스크를 줄여야 한다. 다만 소비자 인식이 낮으므로 정부와 농가가 함께 적극적 마케팅과 홍보를 추진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생산비 절감을 위한 ‘꼭지 무절단 사과' 유통 확대가 필요하다. 기존에는 외형적 미관상 꼭지를 절단한 사과를 선호해왔지만, 꼭지를 절단하지 않은 상태로 유통하면 과중 감소율이 현저히 낮아져 저장성 향상 효과가 뚜렷하다.
이러한 제도의 정착을 위해서는 기존 외형 위주의 상품성 기준에서 탈피하는 소비자 인식 개선이 선행돼야 한다. 정부와 유통업계, 소비자들이 합심하여 자연 그대로의 사과를 즐기는 문화적 변화를 만들어내야 한다. 초기 유통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손실 등에 대해서는 정부 차원의 정책적 지원과 인프라 구축이 뒤따라야 한다.
지금이야말로 미봉책이 아닌 구조적 혁신을 이뤄내야 할 때다. 정부와 농가, 소비자가 함께 나설 때만이 한국 사과 산업은 미국의 압력과 수입 공세에도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
■ 박철선 한국과수농협연합회장(충북원예농협 조합장)
고품질·생산성 향상 등 과수산업 지속가능성 확보해야
최근 미국 정부가 국내 신선 과수 분야에 대한 검역(SPS) 조치를 ‘비관세 무역장벽’으로 지목하며 수입 개방 압박을 본격화하고 있다. 특히 미국산 사과·배에 대한 수입 절차 지연을 문제 삼아 우리 정부에 관련 조치를 신속히 개선할 것을 요구하고 있어 과수 농가들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물론 아직 즉각적인 수입 개방이 현실화된 상황은 아니다.
그러나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이후 무역 압박이 전방위로 전개되고 있는 만큼, 국내 과수 산업도 중장기적 대응 전략을 마련할 시점이다. 우리는 이제 ‘버틸 수 있을 때 대비해야 한다’는 현실 인식 위에 서 있다.
현재 국내 과수산업은 생산비 상승과 기후변화, 소비 둔화 등 구조적인 어려움에 직면해 있다. 여기에 값싼 미국산 과일이 대거 들어올 경우, 단순 가격 경쟁만으로는 생존이 어렵다. 이에 우리 과수 산업은 ‘고품질’과 ‘생산성 향상’ 중심의 구조 전환이 절실하다. 대표적인 예가 다축형 재배 방식이다. 다축형은 수형을 낮게 유지하면서도 채광률을 높이고, 관리 노동을 줄이면서 단위면적당 수확량을 극대화할 수 있어 생산성과 품질을 동시에 높이는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다.
또한 기후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신품종 개발 및 도입 확대도 시급하다. 기존 품종만으로는 고온·이상기후에 대한 적응력이 떨어지는 만큼, 소비자 선택 폭을 넓히고 재배 리스크를 분산시킬 수 있는 품종 다변화가 필요하다.
예를 들어 ‘시나노골드’나 ‘아리수’와 같이 조생종이나 고온 적응성이 우수한 품종은 향후 중요한 전략 자산이 될 수 있다.
정부도 지난해 고품질 과일 공급 확대를 위한 중장기 종합대책을 발표한 바 있다. 이제는 이러한 계획들이 현장에 뿌리내릴 수 있도록 행정적·재정적 지원이 함께 병행돼야 한다. 고밀식 재배 전환을 위한 시설 기반, 품종 갱신을 위한 연구개발, 생산비 절감을 위한 스마트팜 보급 등이 속도감 있게 추진돼야 한다.
미국의 압박은 분명한 현실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시장 개방에 대한 두려움이 아니라, 경쟁력 강화를 위한 준비다. 국내 과수 산업은 고품질, 안전성, 신뢰성에서 이미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그 강점을 더욱 발전시키고, 기술과 품종, 유통 전반에 걸쳐 한 단계 도약해야 할 때다. 위기가 아닌 기회로 삼아야 한다.
■ 이동희 한국배연합회장(나주배원예농협 조합장)
미국산 배 개방 압박 … 경쟁력 갖춘 구조 전환 필요
최근 미국 과수 업계가 한국 시장에 대한 배 수출 접근권을 요구하고 있으며, 미국 무역대표부(USTR)를 통한 압박 가능성도 거론되고 있다. 미국산 배는 현재 수입위험분석 단계에 머물러 있으나, 국내에 존재하지 않는 병해충(흑반병) 검출 이력과 화상병 발생국이라는 점에서 검역의 엄정성과 방역적 판단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다.
그러나 핵심은 외부 변수보다 내부 구조다. 국내 배 산업은 현재 생산기반, 재배 구조, 유통 시스템, 정책 연계 전반에서 구조적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고령화, 인건비 상승, 이상기후, 일손 부족 등 농업 일반이 안고 있는 문제 외에도, 소비 트렌드 변화와 생산-판매 간 미스매칭은 배 산업 고유의 리스크를 가중시키고 있다.
특히, 소비 구조 변화에 따른 유통 방식 재편이 시급하다. 국내 과일 소비는 1~2인 가구 증가, 식생활 간편화, 과일 간식화 경향 속에서 소형과·편의형 상품에 대한 수요가 뚜렷해지고 있다. 시장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소과 중심 유통 구조로의 전환이 필요하며, 이를 가능하게 할 신품종 도입 및 품종 갱신 전략이 병행돼야 한다.
생산비 불안 요소도 중점적으로 다뤄야 할 과제다. 대표적으로 수입 꽃가루에 대한 의존도 증가는 개화기 생산 안정성을 떨어뜨리고, 농가의 비용 부담을 가중시키고 있다. 이에 따라 국산 꽃가루의 생산·공급 체계를 정비하고, 수요 맞춤형 품질 기준, 적기 공급 체계, 유통망 개선을 아우르는 종합 관리 시스템이 필요하다. 이는 단순한 ‘국산화’ 차원이 아니라, 품질 관리와 재배 안정성 확보를 위한 핵심 인프라 구축으로 접근해야 한다.
또한, 기후 리스크에 대응하는 보험제도의 개선도 시급하다. 기존의 재해보험은 정형화된 피해 유형에 기반하고 있어, 최근 국지성 집중호우, 이례적 고온, 생육 불균형 등 복합 기상 요인으로 발생하는 피해를 충분히 보장하지 못하고 있다. 기후변화의 동적 리스크를 반영할 수 있는 지표 기반 보험 상품 개발과 함께, 가입 장벽을 낮추고 현장 수용성을 높이는 제도 개선이 병행돼야 한다.
결국 배 산업이 견고하게 유지되기 위해서는, 품질 기반의 생산체계, 소비자와 맞닿은 유통 전략, 기술-정책-산업이 함께 작동하는 시스템이 전제돼야 한다. 외부 압력에 반응하는 대응 수준을 넘어, 산업 내부의 논리와 체계를 바탕으로 스스로 경쟁력을 갖춘 구조 전환이 필요하다.
■ 김창균 울산원예농협 조합장
출하불안·품종 편중 … 배 산업의 미래는 다양화
미국 과수 업계의 수출 허용 요구와 이에 따른 미국 정부의 압박 가능성 속에서, 국내 배 산업이 중대한 갈림길에 놓였다.
단순히 수입 허용 여부를 넘어, 산업 전반의 내구성과 대응력을 점검하고, 생산 기반을 다시 다져야 할 시점이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이런 상황에서 우리 산업이 어떻게 버틸 것인가 하는 점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수입을 둘러싼 대응만이 아니라, 산업 자체의 생산력과 경쟁력을 높이는 방향으로의 전환이다.
현재 국내 배 산업은 고령화, 인력 부족, 기후 변화, 생산비 상승 등 구조적인 위기에 놓여 있다. 소비 둔화와 유통 불안까지 더해져 생산 기반은 점점 약화되고 있다. 단기 가격 상승이 일시적 안정으로 보일 수 있지만, 실제 농가 소득은 정체되고 있으며, 장기적으로는 재배 면적 감소가 산업의 지속 가능성을 위협하고 있다.
과거의 문제였던 신고 품종에 대한 과도한 편중, 조기 출하, 생장조절제 과다 사용 등은 소비자의 신뢰를 떨어뜨리는 계기가 됐다. 특히 신고 품종이 전체 배 재배의 대부분을 차지하면서, 특정 병해충 발생 시 산업 전체가 일시에 피해를 입을 수 있는 구조적 취약성도 함께 커지고 있다. 한 품종에 생산이 집중되면, 생리장해나 병해가 발생할 경우 수확 불균형과 품질 저하가 광범위하게 나타나고, 이는 곧 출하 물량의 급격한 편차와 시장 가격의 불안정성으로 이어진다.출하 조절이 어려워지고, 저장성 문제도 겹치며 소비자의 신뢰 회복이 더딜 수밖에 없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농가의 재배 인식 개선과 적기 수확 중심의 지도, 품종 다변화 전략이 병행돼야 한다. 소비자에게 ‘맛있는 배’를 제공하는 것이 시장을 지키는 가장 현실적인 전략이다.
정부의 역할 역시 중요하다. 병해충 방제 체계 고도화, 시설 현대화, 생산비 절감 기술 확대, 품종 갱신 등 산업 기반을 튼튼히 하기 위한 정책적 지원이 현장에서 체감돼야 한다.
지금의 상황은 위기이자 기회다. 외부 변수에 휘둘리지 않기 위해서는 내부 역량을 키우는 것이 우선이다. 국내 배 산업은 소비자의 신뢰 위에 서 있어야 하며, 생산 기반의 안정과 품질 중심의 경쟁력이 그 출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