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입농산물 봇물속 우리의 대책은?
종자부터 수확후관리까지 … 기후변화 대응 절실
농업 전문가들은 FTA를 극복하는 가장 근원적인 전략은 품질고급화라고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고품질 농산물은 수요가 창출되고 높은 가격으로 판매되기 때문에 이익이 될 수 있다는 것. 이병일 한국블루베리협회 회장은 “FTA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우리나라 농산물이 중국농산물보다 우수하다는 믿음이 필요하다"며 “중국과 FTA를 체결해도 우려할 상황은 아니며 우리농산물 홍보와 고품질 생산이 해답"이라고 전했다. 김천중 현대영농조합법인 대표는 고품질 농산물을 높은 가격으로 판매하는 시대를 대비해야 한다고 전했다.
# 최적재배·냉해관리 기후기술 긴요
전문가들은 품질고급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기술 개발이 시급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른 봄의 냉해피해와 더불어 잦은 비, 일조 부족, 병해충 때문에 생장이 불량하고 생산량이 감소될 뿐만 아니라 품질이 떨어지고 있다. 특히 과수는 노지에서 재배되는 영년생 작물로 당년피해가 2~3년 후까지 영향을 미치므로 피해 규모가 크다. 최근 개최된 (사)한국복숭아생산자협의회에서 권오협 충주농협 조합장은 “자체 조사한 결과 복숭아를 재배하는 조합원 중 20%는 30%가 넘는 냉해피해를 입었다"며 “올해 영하 20도 이하로 내려간 날이 4일 이상이 되면서 발생했다"고 밝혔다. 냉해에 약한 포도 역시 주산지인 김천지역에서 생육이 지연되고 과수가 고사하는 피해가 발생했다. 나주와 울산, 전북 지역 배에서도 냉해피해가 나타났다.
기록적인 한파로 겨울 대표 작목인 양파 농가의 피해도 확산되고 있다. 이번 겨울은 영하 10℃를 전후한 저온이 작년 12월 10일부터 일찍 시작됐고 빈번했다. 양파 등의 겨울 작목이 한파의 영향을 받으면 성장기에 발육이 저조해 병충해에 대한 저항이 낮아지며 해빙기인 2월 이후 병충해가 활동을 하면 양파 관리에 비상이 생긴다.
무·배추는 더욱 심각하다. 생육 기간이 짧아 기후변화에 매우 취약한 특성을 가지고 있다. 특히 김장 배추는 생육기간이 약 100일로 짧은 기간 동안 키우고 많은 수분을 필요로 한다. 단기간에 재배해야 하는 특성 때문에 파종, 수확시기가 짧다. 심지어 하루 차이에 의해서도 배추농사를 망칠 수 있다.
정부는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정책과 기술 개발 등 대책을 마련하고 있지만 원예를 비롯한 농업인은 그 혜택을 얻지 못하고 있다. 기후변화에 대응한 농업 분야의 연구개발은 부족했으며 농림축산식품부는 2014년부터 7년 동안 기후변화 적응체계 구축을 위한 R&D 사업을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안전 및 최적재배·한계지대의 설정, 기상재해 위험정보 실시간 제공 등 재해경감을 위한 재배시스템이 중요하다고 전하고 있다. 또한 지대별·지역별 특성에 맞는 재배작형, 고온과 저온(냉해)에서도 고품질을 유지하고 새로운 병해충에 저항성이 있으며 한반도 온난화에 대비한 적합 품종개발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아울러 기후변화 정보를 바탕으로 한 생육관리 기술, 아열대·열대 채소 적응시험 및 재배기술 개발 등이 시급하게 이뤄져야 한다고 밝혔다.
# 낮은 종자자급률 국가 R&D 지원 시급
낮은 종자 자급률은 품질을 저하시키고 생산비를 높이는 중요 원인이 되고 있다. 특히 생산비의 상당부분이 종자비로 소요돼 경쟁력이 약화되고 있다. 무엇보다 가장 우려되는 것은 원예산업의 근간이 약화되고 해외 종속성이 가중된다는 점이다.
종자산업은 최첨단 기술이 집약된 고부가가치 산업이지만 1997년 외환위기 당시 4대 토종 종자 기업이 다국적기업에 넘어가 국내시장의 80%를 다국적 기업이 지배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에 따르며 양파의 경우 직접생산비(2011년 기준)에서 종묘비가 차지하는 비중은 15%로 인건비를 제외하면 가장 높은 수준이다. 1997년 이후 수입산 양파 종자(주로 일본산)은 국내 양파 재배면적의 70~80%를 차지하고 있으며 수입산 종자는 국산보다 77% 높다. 또한 작년 말 표본저장업체 조사결과 수입산 종자 사용량이 82%로 드러나 수입의존도가 높다.
# 종자기업 영세성 탈피해야
김춘진 의원(민주통합당, 전북 고창·부안)은 지난 국정감사에서 “2011년 주요작물의 종자자급률 현황자료를 분석한 결과 과실 종자자급률은 15.2%밖에 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며 “사과 15.5%, 배 9.4%, 포도 1%, 참다래 12.5%, 복숭아 32%로 나타났다"고 전했다. 우리나라 농업인이 외국에 지불한 한해 로열티 추정액은 2008년 124억, 2009년 150억, 2010년 153억, 2011년 172억으로 조사됐다. 종자로열티는 농업인이 지급하는 실질적인 로열티 지급액은 확인이 불가능한 상태로, 국내 전체 재배면적에 외국품종의 재배면적으로 계산해 추정한 금액이다.
장미, 파프리카 등 일부 화훼 품목에 국한된 로열티 지불이 향후에는 모든 품목으로 확대돼 농업경쟁력 향상을 제약할 가능성이 있다는 전망도 나왔다.
종자산업에 대한 정부 대책은 부족하다. 올해 농림축산식품부는 글로벌 종자 강국 실현을 목표로 하는 Golden Seed 프로젝트(GSP)를 수행할 연구기관 선정계획을 지난달에 공고했다. 지난해에 동부팜한농이 몬산토코리아 사업을 인수해 외환위기 때 빼앗겼던 종자주권 중 일부를 되찾은 정도이다.
주요 선진국은 종자산업이 미래의 국가 경쟁력을 좌우하고 고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녹색성장의 핵심동력이라는 판단 아래 유전자원 확보와 기후변화에 적응 가능한 품종을 육성하는데 집중하고 있다.
한지학 농우바이오 연구원은 최근 개최된 '한국원예학회 50주년 기념 학술발표회'에서 한국 종자산업의 안정적인 미래를 이루기 위해서는 R&D에 대한 전략적 투자를 강화, 종자기업들이 영세에서 탈피할 수 있는 정부정책 등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 수확후관리 인식부족 총괄운영해야
원예농산물은 다른 농산물과는 달리 수확 후에도 생명력이 지속되고 신선도를 유지하는 것이 필수적이기 때문에 수확후 관리가 품질고급화를 이루는 대안이라는 목소리가 높다.
'수확후관리'란 농산물이 생산자의 손을 떠나 최종 소비자에게 전달되는 모든 과정에서 수확물의 신선도를 높이 한편 손실을 줄여 유통판매기간을 연장하는 활동을 의미한다. 출하시기를 조절해 원예농산물의 수명을 연장하는 장점도 있어 농업인과 유통업자은 더 높은 이윤을 얻고 소비자는 고품질의 제품을 얻는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수확후관리는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 실정이다.
농촌진흥청에는 선별기 등 기계장비 개발부서는 있으나 수확후관리에 필요한 작물 품질관리 부서는 없다. 품질보증과가 원예특작과학원에 있었지만 이명박 정부 출범 후인 4∼5년 전 구조조정으로 없어진 실정이다. 농림축산식품부도 마찬가지로 유통정책과에 기술정책을 전문으로 하는 담당자가 없고 주무관이 1명 있을 뿐 수확후관리의 중요성을 크게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우리 배가 미국에 수출하기 위해서는 미국 검역관이 국내에 상주(8∼9억원의 체류비 농식품부 부담)하면서 검역을 통과해야 수출할 수 있지만 중국산배는 미국 검역관의 검사 없이 자체검사만 한 후 최근에 미국에 수출하는 실정이다. 이는 그만큼 미국이 중국의 수확후관리기술을 신뢰하고 있는 것을 반증하는 셈이다.
김종기 중앙대학교 생명자원공학부 식물시스템과학전공 교수는 ‘제7회 원예산업정책토론회’에서 “수확후관리기술의 발전 없이는 농산물 경쟁력을 높일 수 없고 유통시스템이 안정화될 수 없다”며 “수확후관리와 관련된 정책과 R&D를 총괄하는 사령탑인 ‘수확후관리센터’ 설립이 시급하다”고 밝혔다.
홍윤표 농촌진흥청 국립원예특작과학원 농업연구관도 같은 토론회에서 국내 원예산물의 수확후 손실률은 선진국의 7~10%에 비해 30~35%로 매우 높으며 수확후 상품성 향상을 위한 처리 시설이나 기술이 상대적으로 낙후돼 있다고 밝혔다. 아울러 수출시 수출 품목의 수확후관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수출품 고급화에 걸림돌이 되고 있어 세척, 훈증, 저장의 선진화된 기술들이 접목돼야 한다고 전했다.
한편 APC에서 취급 비중이 큰 사과, 배, 감귤, 단감, 토마토, 딸기, 참외, 풋고추를 대상으로 89개소(APC)를 선정하고 수확후관리기술을 공정관리와 시설관리 분야로 구분해 역량을 평가했다. 그 결과 APC 품질관리 개선을 위해 조직화 및 규모에 적합한 신기술의 개발 및 보급이 요청되고 APC 농산물 품질관리 실무자의 육성 및 교육을 확대하고 품질평가 기기를 확보해 자체 품질관리 시스템을 확립하는 것이 중요 사안으로 대두됐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수확후관리센터’의 하위개념으로 ‘APC기술지원센터’의 운영도 필요하다.
/김진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