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으로 보는 한국문화
2005-12-06 원예산업신문
▲문학예부터 소박하면서도 청초한 아름다움으로 우리 조상들과 함께 살아온 국화는 시인들의 더없는 시재의 대상이 되었다.특히 옛 사람들은 찬 서리 속에서 피어나는 그 성격과 아울러 그 절조성을 사랑하였으며 또 그 은일미를 사랑했기 때문에 문인들은 주로 국화의 은일과 절조를 예찬하는 시를 많이 읊었다. 또 식용에 공하여 불로장수한다는 데 관심을 가지고 이러한 내용을 소재로 하거나 술을 짝으로 하여 읊은 경우도 적지 않다.△인고와 지조=먼저 국화의 인고 정신이나 지조를 찬양한 글을 보자. 고려의 이규보는 국화에 관한 여러 편의 시를 남겼는데 그 중에는 다음과 같은 시가 있다.봄의 신이 꽃 피우는 것 맡고 있는데어찌 가을의 신이 또 꽃을 피우려 하나서늘한 바람 날마다 불어오는데어디서 따뜻한 기운 빌어다 꽃을 피우는지-이규보, <영국>, 《동국이상국전집》원래 꽃을 피게 하는 책임은 동쪽에 있는 봄의 신의 소관이다. 그는 양의 기를 담뿍 지니고 있어 꽃을 피게 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서쪽에 있는 가을의 신은 꽃을 피우려해도 이미 찬서리가 내리고 음기가 대지에 깔려 힘이 미치지 못한다.그런데도 어디서 따뜻한 기운을 빌려와 국화를 피게 한 것이다. 국화는 천지의 조화로움 속에서 가을의 신의 눈물겨운 노력으로 인고 끝에 피어나는 꽃이다.조선 세조·성종 때의 문신이며 강희안의 아우인 강희맹(1424~1483년)은 그의 <우국재부>에서 다음과 같이 읊고 있다.사시가 건듯건 듯 철이 바뀌니봄·여름 온갖 꽃들 시들어지네뭇꽃들 지고 난 다음 꽃을 피워서맑은 향기 뼛속까지 스며드누나만장의 홍진이 눈을 가리고된서리가 머리칼에 날아들어도너는 끝내 향기를 그대로 지녀밝은 달에게 그윽한 향기 보내는구나-강희맹, <우국재부>, 《속동문선》또 조선 숙종 때의 학자 이형상(1653~1733년)은 그의 찬(贊)에서 국화의 덕과 절(節과) 걸(傑)을 다음과 같이 예찬하였다.아, 일찍 심었는데늦게 피는 것은 덕이오아, 독특하게 홀로서깨끗한 것은 절개요아, 맑고도 높은 것은서리 아래 호걸이로다-이형상, <찬>, 《병와집》서리 내리는 늦가을 찬바람이 불어오는데 헐벗은 뜰에 외로이 피어 차라리 얼지언정 뭇꽃들과 같이 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국화는 봄철에 피는 요염한 꽃들도, 또 작렬하는 태양 아래 피는 진한 빛깔의 꽃들과 차라리 연민의 정으로 바라보는 것이다.언제나 의리를 지키는 군자와 사리에 밝은 소인들 사이에서 갈등이 일어나는데 그런 속에서 국화와 같이 어떠한 역경이나 고난 속에서도 꿋꿋한 지조를 지켜나가는 것이 선비의 갈 길임을 설파한 것이다.시인 이은상은 그의 <국화삼도>라는 글에서 “국화에서는 충담·청원·정고의 세가지 생명”이라고 하고 있다. 여기에서 충담은 곧 냉향을 말하는데 저 송대의 왕십붕이 화훼의 십팔향을 말한 가운데 국화의 향기를 냉향이라고 하여 적절하게 평하고 있다.또 청원은 그 형정한 빛깔을 말하는 것인데 저 당대의 유우석이 흰 국화를 찬미하여 형정이라 하였다. 정고란 방심을 말한 것인데 고려 말의 정몽주가 국화를 노래하되 그 꽃다운 마음을 사랑한다 하여 방심이란 문자를 쓰고 있다는 것이다.다음에는 현대시의 예를 보자. 서정주의 <국화 옆에서>는 국화의 인고를 읊은 대표적인 시라고 할 만하다.한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하여봄부터 소쩍새를그렇게 울었나 보다한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하여천둥은 먹구름 속에서또 그렇게 울었나 보다그립고 아쉬움에 가슴 조이던,머언 먼 젊음의 뒤안 길에서이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내 누님같이 생긴 꽃이여노오란 네 꽃잎이 필려고간밤엔 무서리가 저리 내리고내게는 잠도 오지 않았나 보다-서정주, <국화 옆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