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는 것이 곧 농사를 짓는 일이다

2012-01-09     원예산업신문

소, 돼지 등의 가축을 기르고, 벼와 고추를 재배하는 사람은 농업인이다. 옳은 말이다. 그러나 어떤 가축과 작물을 어떤 방식으로 재배하고 얼마나 생산할 지는 결코 농업인이 결정하지 않는다. 아니 농업인이 결정하지 못한다. 언뜻 보기에는 농업인이 이 모든 것을 결정하는 것처럼 보이더라도 말이다.
그 예를 들면, 조류 독감 같은 병이 한 번 지나가서 소비자가 닭을 외면하게 되면 닭 소비가 한동안 급격히 줄어든다. 이 현상이 지속되면 닭 농장에서는 닭을 계속 기르지 못할 것이다. 사료값을 충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아울러 포도가 몸에 좋다는 사례가 공중파 방송을 한번 타면 포도 값은 폭등하고, 이것이 지속되면 포도 재배면적은 점차 늘어나게 되는 법이다.
최근에는 공장형 가축사육 형태와 비료?농약 과다 사용에 대한 염려로 유기농 농산물에 대한 시장이 날로 커지고 있다. 현재 국내 유기농 농산물에 대한 시장 규모도 1조원이 넘는 규모로 급성장하였다. 이 시장은 정부나 대기업이 주도해서 만들어진 시장이 아니라 소비자와 농업인 서로가 힘을 모아 만든 것이다.
유기농은 우리의 생태계를 보전하면서 농업생산 활동을 영위해야 인간도 살고 지구도 살리는 길이라고 믿는 운동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지금은 제도권 안으로 들어와서 각 나라마다 다른 법의 테두리에 싸여 있지만 말이다. 유기농 농산물을 구매하는 일은 단순한 먹거리 구입에 머물지 않고 유기농으로 농사를 짓고 있는 농업인의 중요한 가치에 지지를 표명하는 일이기도 하다. 농업은 음식 이상의 것들을 많이 생산한다. 즉 유기농 쌀을 구입한다면, 우리 들녘에 더 많은 생물들이 살 수 있게 하는 것이고, 가을의 황금 들녘을 편안한 마음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할 것이다. 벼가 심겨져 있는 논 주위의 둑에 제초제가 뿌려져 풀 한 포기 자라지 않는 논들을 보면 무섭고 섬뜩하다. 논 안에 살포된 제초제의 많은 부분이 어디로 갔단 말인가! 모두 분해되어 남김없이 사라졌다고 믿을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이러한 풍경도 결국 우리 소비자들이 결정할 수 있다는 사실을 과연 소비자는 알고 있을까?
그리고 지역생산, 지역소비를 주창하는 로컬푸드 운동에 동참하여 지역에서 생산된 바로 그 농산물을 구입하는 것도 단순히 먹거리 구입 이외에 많은 여러 가치에 지지를 나타내는 일인 것이다. 그 이유인 즉, 농장은 음식 외에도 지역의 경관과 삶의 터전인 지역 공동체를 창조하기 때문이다.
1989년 로마의 맥도날드 점포 개설에 대한 항의로 시작된 슬로푸드 운동은 지역의 전통적인 식생활 문화나 식재료를 지지하는 운동이다. 슬로푸드 운동의 지지자들은 산업적 음식에 익숙한 세대에게 그들이 농업인, 농장, 음식이 되는 동식물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주고자 했다. 이 운동의 창시자는 '소비자는 공동 생산자'라는 구호와 함께, '하나의 세계, 하나의 맛' 이라는 패스트푸드의 이상에 대항하여 사람들에게 고장의 전통적 음식을 향유하는 훨씬 더 큰 기쁨을 가르쳐주려고 했다. 소비자의 먹는 행위가 바로 풍경과 생물종과 전통 음식의 보존에 공헌한다고 주장하면서 말이다.
유기농 자체가 현재는 개혁적인 운동에서 하나의 식품 산업에 흡수되는 경향을 보이고 있기는 하지만, 소비자가 우리 농업 활동을 결정한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운동 사례들이다. 물론 로컬푸드나 슬로푸드를 먹는 데는 많은 수고가 필요하다. 생협이나 장터, 직거래 등을 통해서 구입해야 하고, 또 전문 유기농 매장은 가격이 더 비싼 경우도 많다. 또 원칙을 지키자면 제철 음식만 먹어야 하는 불편도 있다. 그동안 누렸던 산업적 음식의 편리함도 포기해야 한다. 그러나 그러한 불편함 속에서 우리의 건강뿐만 아니라 지역사회와 이웃을 생각한다는 자부심, 우리 자손들에게 보다 나은 미래 세상을 물려준다는 생각 등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은 외면할 수 없는 진실일 것이다. 이번 기회에 우리들 모두가 우리의 권력과 의무를 다시 한번 깊게 생각해 보았으면 한다.
■ 농촌진흥청 국립원예특작과학원 인삼과 박기춘 농업연구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