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방화시대 품목농협의 역할과 과제
축적된 지도사업과 판매역량 바탕으로 연합사업 주도해야
농업은 언제나 위기라고 말하지만 품목농협에게는 몇 가지 메가톤급 변화가 내년부터 몰아칠 예정이다.
첫 번째, 한미FTA의 국회통과와 함께 한중FTA, 한중일FTA가 추진되고 있다. 국제검역협정이 방파제 역할을 하겠지만 장기적으로 배, 사과 등 대표과실의 시장개방이 가시권에 들어오고 있는 셈이다. 미국이나 중국에 비해 생산비가 5배에 이르는 우리나라의 과실산업은 긴장할 수 밖에 없게 되었다.
두번째, 농협중앙회의 사업구조개편이 내년 3월에 예정되어 있다. 경제사업 자본금의 확보를 바탕으로 하는 경제자회사의 확대, 활성화, 지역농협의 마케팅 역량을 높이기 위해 추진되는 조합공동사업법인과 공선출하회의 육성 등 농협의 경제사업 환경이 대폭 바뀔 예정이다. 강력한 경쟁자가 농협 내부적으로 만들어 진다는 이야기이다.
세 번째, 금융위기의 그림자가 국내외 경기침체를 장기화시키고 있다. 한국은행은 최근 7월에 발표한 2012년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4.6%에서 3.7%로 0.9%포인트 하향조정했다. 소득양극화도 심화되고 있다. 이런 경기침체는 앞으로 수년간 지속될 것이라는 관측이다. 수입과일의 가격격차를 감안할 때 국내 과실의 시장이 좁아진다고 볼 수 있다.
변화화는 현실에도 불구하고 우리 과수농가는 여전히 소농구조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그래서 과수농가들의 힘을 모아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조직인 품목농협의 역할은 갈수록 중요해 진다.
# 희망은 찾아내는 것
희망은 있는 것이 아니라, 찾아내고 만들어가는 것이다. 생산비가 높지만, 그만큼 세계 최고수준의 정밀농업을 자랑하는 것이 우리나라 농업이다. 국내에서 고급과일 수요층은 적을 지 몰라도 중국과 일본, 동남아시아로 눈을 돌리면 큰 시장이 있다. 과일은 맛과 가격이 여전히 경쟁하고 있는 상품이다.
국내여건도 마찬가지이다. 지역농협은 상호금융 수익의 강점은 있지만, 다양한 품목을 경영하는 농가로 인해 원예산업에 과감한 투자를 하기 어렵다. 소규모 원예농가가 뭉치면 품목농협이 주도할 수 있는 가능성은 더 높아진다. 품목농협이 확보한 기술지도 능력은 쉽게 따라잡을 수 없는 핵심역량이다.
품목농협이 이런 여건 속에서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장점을 잘 발휘한다면 위기를 기회로 활용할 수 있지만, 품목농협이 스스로 혁신하지 못하고 그동안의 틀에서 벗어날 수 없다면 품목농협의 존립을 좌우하는 위기로 심화될 수도 있다.
# 품목농협의 현황
품목농협은 하나의 구조로 묶기가 어려울 만큼 크게 세 가지 유형으로 나뉘어 있다. 도시에 속한 공판장형 원예농협과 산지의 시군단위 품목농협, 광역단위 품목농협이 그것이다. 이들 세가지 유형은 각각 다른 발전방향을 수립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공판장형 원예농협은 주로 30만 이상의 중소도시와 대도시에 속해 있으며 공판장과 상호금융이 주사업이다. 모두 19개소인데 경제사업의 대부분이 공판사업과 연계된 판매사업이며, 구매사업은 상대적으로 매우 취약하다.
산지시군 품목농협은 업무권역이 1시군으로 한정된 품목농협으로서 9개소가 있으며, 경제사업규모나 당기손익이 가장 작다. 판매사업은 평균 200억 정도이며, 조합원수도 평균 865명에 불과하다.
산지광역 품목농협은 19개소이며 평균 조합원수 2729명, 판매사업 540억, 구매사업 111억 등으로 품목농협 중 가장 큰 규모를 보여주고 있다. 조합원수나 실질적인 판매사업 규모 등을 비교해 볼 때 광역농협이 주도하고 있다.
품목농협은 그동안 썬플러스 브랜드 사업 등 전국단위 공동브랜드사업의 추진, 묘목과 재배기술 및 마케팅의 결합, 대규모 가공사업, 산지공판장의 모범적인 운영 등 많은 선도적인 경제지도사업의 성과를 제시해 왔다. 하지만 2000년 이후 외부여건의 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는 평가도 있다.
# 품목농협의 평가와 과제
지난 20년간 품목농협에 대한 외부의 기대는 높았다. 품목농협의 조합원은 지역농협과 달리 한 두가지 품목을 중심으로 하는 전업농이므로, 경제사업을 할 수 있는 여건과 의욕이 높다고 평가되었다. 실제로도 개별 지역농협에 비해 품목농협의 성과는 상당히 높았다.
하지만 지역농협은 경제사업 역량의 격차를 신용사업의 수익으로 보전하는 방식을 통해 경제사업 조합원들이 품목농협으로 이탈하는 것을 방지해 왔다. 여기에는 농협중앙회는 지역농협 중심의 의사결정으로 인해 품목농협에게 상대적으로 소홀했던 이유도 있다.
공판장형 원예농협은 법정도매시장의 확대와 대형유통업체의 등장으로 인한 산지의 조직화, 규모화라는 외부여건의 변화에 따라 그 역할이 축소되고 있다.
지역농협들은 2000년 이후 연합마케팅, 조합공동사업법인 등 사업연합을 통해 품목농협에 비해 부족한 전문성과 마케팅역량을 키워왔다. 햇사레나 잎맞춤, K메론 등 광역마케팅사업은 품목농협의 성과를 위협하는 측면도 있다. 특히 시군품목농협은 중앙회의 사업구조 개편이 가시화되어 시군단위로 경제사업이 재편될 때 차별성이 사라질 수 있다.
따라서 품목농협이 경제사업의 선도조직으로 경제사업의 미래를 제시해야 한다는 외부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측면에서 적극적인 전환이 필요하다.
협동조합의 발전은 “협동조합의 정체성”을 제대로 지키는 것이다. 품목농협도 이런 협동조합의 정체성 향상을 중심으로 사업역량, 경영성과를 종합적으로 생각하며 발전을 도모해야 한다.
품목농협은 무엇보다 “품목별 전업농”을 조합원으로 한다. 전업농은 소규모 농민과 달리 역량이 높고, 개별적인 판매망을 구축할 수 있는 가능성이 높다. 품목농협은 이런 조합원의 특성을 감안하여 이들을 끌어들일 수 있는 더 높은 사업역량을 만들어야 한다.
협동조합은 조합원의 수준만큼 발전한다. 조합원에 대한 지속적인 교육이 필요한데 기술재배교육도 중요하지만 협동조합의 중요성을 가르치는 정신교육과 작목반 등 출하조직을 강하게 만드는 조직교육이 함께 개발되고 학습되어야 한다.
지역농협이 시군단위의 판매조직을 구축하고, 경제사업 자회사들이 도매 및 소매사업을 강화하려는 상황은 위기이자 기회이다. 그동안 확보된 지도사업과 판매역량을 가지고 시군연합을 주도한다면 품목농협이 실질적으로 산지유통을 주도해 갈 수 있다.
이미 품목농협은 과수농협연합회를 통해 전국적인 브랜드를 구축하고 있다. 하지만 시스템을 구축한 성과에 비해 브랜드 판매액의 성장율이 취약하다는 점이나 참여 품목농협의 자체 브랜드와의 관계 등을 감안할 때 연합회적 성격보다는 협의회적 성격에서 머무르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있다. 과감한 연합회 체계를 통한 시너지효과를 추구해야 한다.
# 무엇을 할 것인가?
품목농협의 부류별로 발전의 과제가 다르게 나뉜다.
우선 공판장형 원예농협은 현재의 구조 속에서는 조합별 발전전략을 수립하기 어렵다. 통합경매나 전국 공통발주 등을 통해 협동조합간 연합을 강화해 나가야 한다. 장기적으로는 네덜란드의 그리너리를 모델로 전국단위 합병을 통해 고품질 채소류 및 화훼류의 동아시아 원예산업 경매물류의 허브로 활동할 비전을 세워야 한다. 산지광역품목농협의 수출사업과 적극 연계하는 큰 그림을 그려야 한다.
산지시군품목농협은 지역농협의 연합마케팅이 본격화되면 어려움에 처할 수 있다. 사전에 연합마케팅사업을 주도하든가 아니면 업무구역을 광역화하고 산지공판장의 사업여건이 악화되는 조건 속에서 구체적인 전략품목을 선정, 육성하는 전략이 수립되어야 한다.
광역품목농협은 세 가지 측면에서 발전과제를 수립해야 한다.
첫번째는 조합원과의 관계이다. 전업농 조합원이 품목농협에 몰입할 수 있도록 품목농협의 체질을 전환시켜야 한다. 전업농의 조직화를 추진하고, 이들 전업농 조직을 실질적으로 지도할 수 있어야 한다. 전업농형 공선출하회, 썬플러스작목반 등이 더욱 확대되도록 교육프로그램 등을 더욱 전문화시켜야 한다.
두번째는 연합회 전략을 체계적으로 정비해야 한다. 연합회에 위임할 사업과 의사결정권한, 품목농협이 유지해야 할 사업 등을 구체적으로 정의하고, 연합회가 수행할 역량을 정의하고 거기에 맞는 초기투자가 과감히 이뤄져야 한다. 실질적인 연합회 전략은 농협중앙회와 회원농협간에 신용사업의 관계를 연구하면 많은 함의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세번째는 공동브랜드 전략을 더 체계적으로 정비해야 한다. 판매연합의 성과와 구심력은 공동브랜드의 성과와 직결된다. 우선 썬플러스의 브랜드파워를 정확히 측정하고 성과를 높이는 것과 함께 기존 참여 품목농협의 브랜드를 포괄하는 품목농협 전체의 패밀리브랜드 전략을 수립하고 강력하게 추진해야 한다. 품목농협이 먼저 똘똘 뭉쳐야 농협경제자회사나 대형유통업체와 대등한 협상력을 확보할 수 있다.
이런 세 가지 과제는 기본체질을 강화하는 것이다. 그러면 자연히 수출사업의 통합, 품목별 수급조정 등의 구체적인 미래과제도 쉽게 접근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