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배의 역사
우리나라 배의 역사
  • 원예산업신문
  • 승인 2021.07.19 1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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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서로움·희망·건강·벼슬 등 상징
생활패턴 변화 따른 중소과 육성·보급 지속

예로부터 배나무는 상서로움, 희망, 건강, 지혜, 벼슬 등을 상징하는 과일로 인식되어 지역별 명품배는 진상품으로 쓰이거나 귀한 선물로 활용하였다. 배나무에 배가 주렁주렁 달려 있거나 배꽃이 환하게 피어있는 광경을 본 꿈은 하고 있는 일이 잘 풀리고 안정될 것을 예견하였는데, 그 중에서도 배를 따거나 얻는 꿈은 태몽일 확률이 높다. 내 자식을 남보다 아낀다는 뜻의 “배 썩은 것은 딸 주고, 밤 썩은 것은 며느리 준다”나, 한 가지 일로 두 가지 이득을 얻는다는 의미의 “배 먹고 이 닦기” 등은 모두 구전되는 속담으로 배를 귀중함, 좋은 것에 비유한다. 이처럼 우리 배는 친근하고 익숙한 과실로 생활 속에서 사랑받아 왔다.

문헌상에 남아 있는 가장 맛있는 배로는 함소리(含消梨)와 교리(交梨)에 대한 내용이 전한다. 서거정은 “향기로운 배 살지고 부드러운 것이 함소리로다. 한입 씹으니 혀 밑에 파도가 이는 것을 알겠다”라고 기록하였다. 조선 중기 시인 이응희는 “교리를 깨물어 먹으면 눈을 입에 머금은 듯하고 삼키면 서리를 먹는 것 같다. 속세의 번뇌가 사라지니 굳이 신선의 음료를 마실 필요가 없다”라고 읊었다.

우리나라에 자생하는 배나무 속 식물은, 우리나라 특유의 종인 심실 2개의 콩배(Pyrus faurie), 현재 재배되고 있는 배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 5심실의 돌배(山梨: P.serotina REHD.), 재래종 및 중국배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 산돌배(北支山梨: P. ussuriensis MAXIM.) 등이 기본종을 이루고 있다. 이러한 기본종 외에 한국에는 콩배나무, 좀돌배나무, 백운산배나무, 꼭지돌배나무, 남해돌배나무, 청위봉배나무, 개위봉배나무, 위봉배나무, 금강산배나무, 산돌배나무, 털산돌배나무, 들배나무, 문배나무 등이 전국에서 발견된 바 있다.

기록상 한반도의 배나무 속 식물은 17세기 허균의 저서인 ‘도문대작’에 5품종이 나오고 19세기 작품으로 보이는 완판본 춘향전에서는 청실배(청실리) 라는 이름이 나오며 구한말에 황실배(황실리) 등과 같은 명칭이 있다. 1920년대의 조사 자료에는 학명이 밝혀지지 않은 재래종을 포함하여 총 33품종이 나타난다. 2008년도 자료를 보면, 한반도의 자생 또는 재래종 배나무 속 식물은 50여 종( 품종)으로, 그 중 20여 종(품종)에 대해서만 학명이 밝혀져 있을 뿐 나머지는 그 분류 체계가 확립되어 있지 않다고 한다.

학명이 밝혀져 있는 한국의 재래종 배 품종은 8종 12변이종이 있는데, 그 중 청실리(靑實梨)는 극만생종으로 함흥이 원산지인데 단맛이 뛰어나고 석세포가 많아 씹을 때 오돌오돌한 느낌을 주며 저장하면 맛이 더 좋아진다. 청실리는 1969년에 농촌진흥청에서 육성한 맛이 좋은 ‘단배’의 교배에 이용되기도 했다.

과거의 배는 고급 선물용, 제수용, 대가족 소비에 적합하도록 과실이 크고, 모양이 예쁜 것을 중심으로 육성되었다. 그러나 핵가족과 싱글족 급증, 즉석식품 소비 증가, 국제 교류 활성화 등 생활 패턴이 급격하게 변함에 따라 소비자는 보다 쉽고 편리하게 소비할 수 있는 농산물을 요구하고 있다. 과실크기도 과거에는 1kg 이상의 큰 과실을 선호하던 패턴에서 500g 이하의 중소과를 선호한다. 이에 국립원예특작과학원 배연구소에서는 이른 추석에 맛볼 수 있는 ‘신화’, ‘창조’, 싱그러운 과피색과 아삭한 육질을 가진 ‘그린시스’, ‘슈퍼골드’, 껍질째 먹을 수 있는 ‘조이스킨’, 조각과실용 ‘설원’ 등을 육성하였다. 또한, ‘소담’, ‘솔미’, ‘소원’ 등과 같이 소가족이 선호할만한 중소과를 육성하여 보급 중이다. 맛있는 이야기와 오랜 역사를 품은 우리 배가 새로운 품종 개발로 힘을 받아 오랫동안 사랑받을 수 있길 기대한다.

■정해원<농진청 원예원 배연구소 농업연구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