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농(上農)이 되는 길
상농(上農)이 되는 길
  • 원예산업신문
  • 승인 2021.06.21 1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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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을 기르는 상농, 지속가능한 생산 위해 퇴비조절 필수
밭 건강 상태·적정비료량 파악해 땅심 높여야

다산 정약용 선생은 하농(下農)은 풀을 기르고, 중농(中農)은 곡식을 기르고, 상농(上農)은 땅을 기른다고 하였다. 농사를 잘 지으려면 흙을 정성껏 관리하여 땅심, 즉 지력을 높이는 것이 중요하다는 의미이다. 지속가능한 생산을 위해서는 건강하고 좋은 흙을 만드는 것부터 챙겨야 한다는 요즘 이야기와 같다.

오래 전부터 우리 선조들은 땅심을 높이기 위해 퇴비를 만들어 써왔다. 무기질비료가 부족했던 시대에는 농사를 퇴비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던 까닭이다. 옛 속담에 밥 한 그릇은 남 주어도 퇴비 한 소쿠리는 안준다는 말이 있다. 퇴비를 만드는 것이 어렵기도 하거니와 땅심을 높이고 농사짓는 데 있어 퇴비가 그만큼 중요한 자리를 차지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요즘 퇴비는 가축분뇨 등을 원료로 하여 공동퇴비장에서 충분히 생산하고 있다. 각종 무기질비료도 넘쳐난다. 시중이나 농가 주변에 비료자재나 퇴구비가 풍부하다보니 자연스레 밭에 주는 양분의 양도 늘어날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 농경지에서 사용하고 있는 비료의 단위 면적당 사용량이 OECD국가 중 상위에 속한다는 사실만 봐도 우리가 밭에 얼마나 많은 양분을 주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지나치게 많은 비료나 퇴비를 관행적으로 사용하는 것은 여러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과다한 질소나 인산 성분이 빗물을 따라 지하수에 도달하거나, 비료성분이 묻은 흙 알갱이가 하천에 흘러 들어가면 오염물질로 작용할 수 있다. 농민 입장에서는 불필요한 비료를 계속 돈 주고 사용하기 때문에 경제적으로도 손해이다. 뿐만 아니라 흙 안에 비료성분이 너무 많으면 염류장해로 인해 작물의 생육이 부실하고 열매의 생산량이 감소한다.

지난 한 해 필자는 시설하우스 재배 농가 백 여 곳을 대상으로 토양관리를 어떻게 하고 있는 지 조사하였다. 방문한 농가 중 본인의 밭에 비료를 얼마나 주고 있는지, 얼마나 주어야 하는지 알고 있는 농가는 단 한 농가에 불과하였다. 회사로 치면 본인의 회사가 잘 운영되고 있는지, 현재 회사의 상태가 어떠한지 모르고 있는 농가가 대부분이라는 뜻이다.

좋은 흙을 만들기 위해서는 비료나 퇴비자재들의 특성을 잘 이해하여야 한다. 그래야만 작물을 기르기에 적절한 땅심을 유지할 수 있다. 비료포대에 적힌 대로 주고 전문가들이 주라는 만큼 주어도 비료성분은 흙 속에 차곡차곡 쌓인다. 추천시비량이라는 것은 열매를 최대로 생산하는데 필요한 비료를 주도록 만들어져 있어서 작물이 이용하고 남은 양분은 해마다 흙속에 남는다.

화학비료는 양분의 농도가 진하기 때문에 밭에 뿌리는 양이 많지 않다. 반면에 퇴비는 농도가 약하기 때문에 관행적으로 많이 사용한다. 과거에 선조들이 땅심을 높이기 위해 퇴비를 많이 썼기 때문에 퇴비는 많이 주어도 괜찮다는 믿음이 우리 마음속에 자리하고 있다. 요즘 사용하는 퇴비는 과거 선조들이 사용하였던 퇴비와는 그 특성이 다소 다른 면이 있고, 농도가 낮은 퇴비라 할지라도 많은 양을 여러 해 동안 반복적으로 사용하면 무시 못할 양이 된다.

땅심을 기르고 유지하기 위해서는 내 밭의 현재 건강상태와 작물 생산에 필요한 비료량을 알아야 한다. 내 밭에 양분이 얼마나 있고, 앞으로 비료를 얼마나 주면 되는지 알고 싶으면 가까운 농업기술센터를 방문하여 흙의 상태를 분석해 보자. 흙의 산도와 염류농도만 측정해 봐도 밭의 상태가 적절한지 혹은 문제가 있는 것인지 알 수 있다.

흙의 건강상태를 알아보는 것은 우리가 병원에 들러 숨소리를 들어 보고 혈압을 측정하여 건강상태를 진단하는 것과 같다. 상농을 향해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가는 바람직한 방법은 흙을 주기적으로 분석해 보고 진단하는 것이다. 과학영농 없이 상농이 되기는 어렵다.

■이인복<농진청 원예원 원예특작환경과 농업연구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