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인터뷰 - 김병률(한국농촌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신년인터뷰 - 김병률(한국농촌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
  • 조형익 기자
  • 승인 2019.12.30 11: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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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급안정 위해 시장유통량 체계적 접근 필요
생산 후 대응하는 ‘목표시장 없는 생산체계’ 개선 시급
RECP 등 개방화 대비 추가 예산과 정책 제시해야

한국식품유통학회장과 한국농촌경제연구원 부원장, 농업관측센터장 등을 역임하며 원예분야 전문 연구자로 권위를 지닌 김병률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선임연구원으로부터 원예산업의 현황과 발전방안 등에 대해 들어봤다.

▲2019년 원예산업을 어떻게 보았나?
2019년은 국내외 정치·경제적으로나 국내 농업과 원예산업에서 말 그대로 다사다난했던 한해였다. 많은 정책들이 추진됨에도 불구하고 정책의 시너지 효과보다는 시행착오와 부작용, 갈등과 분열 모습이 곳곳에 분출되고 있다. 경제·사회 현실과 정책의 부정합(미스매치)이며 ‘따로국밥’ 형국이다. 이는 특히 경제의 성장 둔화를 초래하고 서민생활과 소비수준에 직접적인 타격을 주고 있다.
경기침체가 심화되고 국민들의 소비가 둔화되면 소비자들은 우선적으로 불요불급한 소비를 줄이게 되어 기본적으로 부식인 채소와 과일 소비가 위축될 수밖에 없다.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비용 상승을 상쇄하기 위한 요식업계의 밥값 인상, 청탁금지법과 주 52시간 근무제 시행, 수입농식품의 국내시장 잠식 확대로 인한 국내산 시장 위축 등도 농축산물 소비둔화를 초래하여 가격 하락의 요인이 된 것으로 보인다.
이 같은 어려움과 암울한 현실에도 불구하고 2019년도 원예산업은 한편으로 4차 산업혁명 기술의 영향과 적용, 깨어있는 앞선 농업인들과 지자체, 정부의 노력으로 첨단 재배시설과 기술이 접목된 ‘스마트팜’으로 미래농업의 중핵부문으로 자리매김하는 모습들을 곳곳에서 보이고 있으며 가속도가 붙고 있다. 또한 정부에서 직불제를 대대적으로 개편하는 방향으로 원예산업의 주생산무대인 밭작물에 대해 쌀과 동일한 직불제를 시행하기로 함에 따라 원예농가소득 향상과 안정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는 한 해였다.

▲2019년 초부터 제주도에서 시작된 산지폐기가 양파, 마늘 등으로 이어지면서 수급불안이 어느 해 보다 심화됐다. 해소 방안은
원예부문은 근본적으로 단기적인 가격변동이나 공급량조절이 어렵다는 점을 정책담당자, 정치인, 사회적으로 모두 공감할 필요가 있다. 오히려 일정규모 이상 재배농가들을 대상으로 재배면적과 수확량, 시장공급량을 조절하고 전반적으로 시장유통량과 유통시스템을 조절하는 체계적 접근이 필요하다.
우리 농업, 농정은 수요에 대응한 생산체계(농가, 품종, 면적, 기술)가 아니라 생산한 후에 농산물을 신선시장, 원재료시장, 수출시장으로 나누어 판매하는 ‘목표시장 없는 생산체계’(Non-targeting production system)를 지속하고 있다.
 수출용은 어떤가? 많은 경우 최근 양파가 과잉 생산되어 해외에 수출하듯이 과잉생산 시 밀어내기식(pushing-out) 수출이 여전하고, 농가나 생산자조직은 국내가격과 수출가격을 비교해 유리한 시장으로 판매하는 무계획적인 수출이 많다.
 채소, 과일을 비롯해 원예산업의 정책 방향을 새로운 시각으로 설정하여 정책수단들을 구상할 필요가 있다. 시장별 수요에 대응한 맞춤형(On demand) 생산체계 구축과 생산공급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 생산농가들은 신선시장, 원료용 시장(가공용, 외식업소용), 수출용 시장 등 시장별 수요에 적합한(대응한) 맞춤형 생산과 함께 판매 또는 조달을 해야 한다.
또한 가공 및 요식업소용 원예농산물에 대해 수입산을 대체할 수 있는 수입대체정책을 추진하고 수출만 전문으로 하는 수출전문단지를 지속적으로 육성할 필요가 있다. 국내가격과 수출가격 차 보전 등 수출농가와 수출조직의 수출 수익 안정화 장치가 필요하다. 특히 신선품 보다는 오히려 수출잠재력이 큰 수출용 원예가공식품 제조업체 육성과 수출 확대전략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 최근 WTO 개도국 지위를 포기를 선언하면서 국내 농업의 자생력은 더 악화될 것이란 전망이다. FTA, RCEP 등이 갖는 의미와 이후 대응 전략은
최근 우리나라는 중국, 일본, 아세안국가를 포함해 16개국이 RCEP, 즉 역내 포괄적 경제동반자협정이 진행 중에 있다. 2019년 1월에 인도를 제외하고 무역규범 등 협정문에 대한 타결을 하기로 합의하고 2020년 1~2월에 협정을 타결하기로 하였다. 물론 참여국가 전체가 해당되는 공동양허나 개별국 간의 세부 양허안이 현재 진행형이나, 중국 및 아세안국가들로부터의 원예품목 수입이 늘어날 것은 확실시되고 있다. 특히 중국과 기 체결된 FTA에서 대부분의 민감품목이 제외되는 등 최소한의 개방 폭이 정해져 수입피해를 최소화하고 있으나, RCEP 체결 결과에 따라 중국으로부터의 수입개방 정도가 정해질 수 있어 우려를 낳고 있다.
더욱이 불과 얼마 전 정부에서 WTO 개도국 지위 포기를 선언했다. 정부가 개도국 지위 포기 선언과 함께 내놓은 농업경쟁력 제고대책은 충분한 논의과정이 없이 발표한 문제도 있지만 그보다도 경쟁력제고 목표를 위해 내놓은 정책으로 공익형 직불제와 농업재해보험 품목ㆍ초등학교 과일간식ㆍ로컬푸드 확대 등이 있으나, 이는 농업의 국제경쟁력 제고와 큰 관계가 없는 지엽적이고 단편적인 정책 수단으로 보인다. FTA 체결 확대, RCEP체결 임박, 개도국 지위 포기 선언 등에 따른 부차별적인 시장개방 확대에 대응해 농업경쟁력을 높이려면 복합적인 사안의 심각성을 예견하여 적어도 과거 정부에서 추진한 42조 사업, 15조 농특세사업, FTA피해보전대책 등 특별예산과 같은 추가적인 예산과 정책이 제시될 필요가 있다.

▲농산물 안전성 강화가 제도적으로 추진되고 있다. 제도의 정착과 농업인의 어려운 점을 해소하기 위한 방향이 있다면
‘좋은 제도’라 해서 시공을 초월해 즉시 강제 도입을 강요하는 것도 문제이나, 실행 시기의 적절성(시의성)과 제도 이행 대상 농가의 수용성이 중요하고, 제도 정착과정에서 시행착오와 부작용, 무지와 몰이해로 부득이하게 위법자가 양산되기도 한다. 꾸준한 계도와 교육으로 농가 스스로 안전한 농사를 지을 수 있도록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농민들이 부당하게 불편함과 비용을 부담하지 않도록 주변여건 개선이 선행되어야 한다.

▲스마트팜은 미래농업의 대안으로 주목을 받고 있으나 구축 비용 부담과 활용능력이 부족하다는 얘기가 많다.
4차 산업혁명의 확산이 전 산업에 확산되고 있다. 부지불식 간 국민 생활 구석구석에 파고들고 있어 일자리 문제와 직종의 생사 문제까지 파급이 확산되고 있다. 농업부문도 예외는 아니다. 농업인력의 고령화가 심각한 수준에 있고 인력부족현상이 심화되어 농작물 재배, 가축 사육에서 4차산업기술이 절실하게 필요로 하고 있다.
스마트팜의 전국적, 전산업적 확산을 위해서는 시설과 장치, 운영시스템 구축에 고비용이 수반되기 때문에 어느 수준에 오를 때까지 정부의 집중적인 예산 투입이 필요하다. 더욱이 개방화시대 국제경쟁력 강화를 위해 과거 UR협상 타결, FTA 확대 체결에 대응한 대규모 예산 투입과 같은 대대적인 정책 지원사업이 만들어질 필요가 있다. 이를 통해 한단계 업그레이드, 나아가 획기적인 도약을 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될 필요가 있다.
더욱이 고령농이 청년농으로 세대교체가 대대적으로 예상되고 있어 청년취농과 연계한 스마트팜 정책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 고령농보다 청년창업인들이 농업에 종사하여 농업을 첨단비지니스로 이끌어갈 수 있도록 적극적인 지원책이 필요하다.     
 
▲품목농협의 전문성 강화와 경쟁력 제고를 위한 방안은
농업이 품목 전문화 방향으로 발전하는 것은 농업의 국제경쟁력 강화 차원에서 더더욱 필요하다. 그 중심에 품목농협이 있고, 거래교섭력 발휘와 판매시장의 확대와 수출시장 개척 및 확대, 경쟁력 강화를 위해서도 품목농협을 육성해야 한다.
원예농산물이 소득작물로 주목을 받으면서 너도나도 재배하여 산지가 집중되기보다 확산되는 경향도 있다. 부분별한 산지 확산은 품목의 생산공급 조절을 어렵게 하여 부정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오히려 품목농협 중심으로 재배면적과 재배지역의 관리, 조절 및 통제가 필요하다. 일본이나 유럽지역의 원예산지 집중관리와 출하창구 집중화 정책은 반드시 배워야할 타산지석이다. 유럽의 프랑스 브레따뉴 지방 채소협동조합에서 1960년대 초 산지 출하경매장을 운영하고 출하창구 일원화를 이룬 것은 협동조합 중심의 주산지 강화를 유지하게 하였다. 벨기에나 네덜란드 등에서도 이와 유사한 방법으로 원예협동조합 중심의 주산지 집중과 경쟁력 강화를 유지하게 되었다. 품목농협의 품목 수급통제 역량이 크면 클수록 주산지 확산은 통제될 수 있으며 집중화를 유지할 수 있다.
   
▲지역농산물의 소비 및 판로안정성 확대를 위해 대기업의 급식재료의 20~30%를 지역농산물로 공급할 수 있도록 의무화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식재료의 안정적인 조달을 위해서는, 물론 필요에 따라 지역 내에 유능한 납품업체를 확보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전국권 농산물을 효율적이고 안정적으로 조달하기 위한 경로 확보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 전국적인 생산-유통망을 구축하고 있는 협동조합과의 연계도 중요하며, 지역단위 공영도매시장을 통한 안정적 물량 확보 방안도 중요한 대안이다.    
특히 지역 푸드플랜의 경우 지역단위에서 공급할 수 있는 식재료 농산물과 식품을 우선 구매 조달할 수 있도록 계약재배와 계약거래 구조를 확립하는 것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조달물류비용 효율과 신뢰성, 투명성이 확보될 수 있도록 개인 간 계약보다 생산자조직과의 계약 공급을 우선할 필요가 있다.
로컬푸드니 푸드플랜이 과도하게 강조되고 추진되고 있다. 심지어 학교급식에서 나아가 지역에 조성된 산업단지 및 대기업의 급식재료의 20~30%를 지역농산물로 공급할 수 있도록 의무화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하지만 과도한 지역 중심 푸드플랜정책은 농산물 생산과 유통을 오히려 폐쇄적으로 만들어 과도한 경쟁과 갈등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중요한 것은 농가들이 생산한 농산물을 제값받고 판매하여 전반적인 소득이 높아져야 한다. 지역 중심의 눙산물 유통은 오히려 가격을 왜곡시킬 수 있고 전국시장 나아가 제계시장에서의 경쟁력도 약화시킬 수 있다. 과유불급이 될 수 있다. 의무보다 권장 수준이 적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