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경제를 준비하는 원예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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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원예산업신문
  • 승인 2018.06.11 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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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독일 농업재편과정이 주는 시사점

■인 터 뷰 / 김 경 량<강원대학교 농업자원경제학과 교수>

구동독의 계획경제체계는 서독의 시장경제와 통합되면서 여러 혼란과 갈등을 겪었다. 남한과 북한은 분단이후 60여 년이 지난 현 시점까지도 그 상태가 지속되고 있다. 체제통합과 통일을 위한 연구는 수십년간 진행돼왔으며 관련 정책과 법규의 연구는 현시점에서도 누적되는 중이다.
1980년대 말 독일 괴팅겐(Goettingen)대학교에서 농업경제학 석박사 학위를 취득하며 독일의 통일과정을 생생히 목격한 강원대학교 농업자원경제학과 김경량교수를 만나 독일통일과 농업재편에서 얻을 수 있는 시사점을 들여다보았다.

- 구동독의 농업재편은 어떻게 이뤄졌나
독일은 구동독이 서동독의 시장경제로 편입되는 체제전환으로의 통일을 했다. 농업분야에도 구동독지역에는 급격한 시장자유화가 진행되면서 생산구조가 급변했다. 10년이 채 지나지 않아 구동독지역의 농업은 서독지역의 생산성을 따라잡는 분야도 생겼고 협동농장은 기업농, 가족농 등으로 분화됐다.
통일직전인 1989년 4천500여개의 협동농장이 구동독 농지 82%가량을 경작했다. 구동독 전체 노동자 중 10%가 농업종사자였는데 이 중 75%가량이 협동농장 소속 조합원이었다. 이처럼 협동농장은 구동독 농업에서 절대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다. 구동독은 국영 및 협동농장들이 이윤을 달성할 수 있도록 생산자를 위한 고정가격정책을 펼쳤고 이를 위해 정부 총예산의 15%를 사용할 정도였다.
통일된 독일농업의 뚜렷한 변화는 개인농의 증가와 더불어 평균 농가면적의 축소를 뽑을 수 있다. 농장의 수도 늘어났다. 협동농장은 평균 면적이 4천ha이 넘었으나 1천ha 미만 기업농 및 상업농이 증가했고, 3천ha이상의 대형 농업경영체는 숫자와 경작면적에서 1/3정도로 감소됐다. 1996년 말 당시 3천ha이상 경작하는 100여개 농가는 전체 농경지의 9%를 담당했다.
협동농장과 국영농장은 새로운 협동조합이나 농장법인으로 통칭할 수 있는 다양한 법인체로 전환됐다. 초기 전환과정 중 절반가량만이 살아남았고 협동조합의 수는 줄어들었고 회사형태의 농업법인은 늘어났다.

- 협동농장의 사유화로 많은 갈등이 발생했을 것 같다
그렇다. 사유화가 되면서 평균 경지면적이 대폭 줄어들었다. 1989년과 비교해 1992년의  농작 경지토지 비율은 75%수준이 됐고, 3년이 지나자 이 비율은 63%로 더 떨어졌다.
협동농장이 개인농으로 재편되는 형태전환은 해산절차를 거친 후 협동농장 내 토지분배를 통해 조정되는 것이다. 이에 따르는 조합원간의 재산권 분쟁을 피할 수 없었다.
자산을 공동 투자 한 법인체 상태로 남고자 하는 조합원과, 반환금을 많이 가지고 탈퇴하려는 조합원 사이에 이해가 심하게 대립됐다.
탁상에서 롤플레잉 식으로 만들어진 신 농업정책은 사회갈등을 야기했고, 예상치 못한 비용이 발생해 경기침체가 찾아오는 등 여러 부작용이 발생했다.

- 남북한도 유사한 갈등 발생가능성이 있나
독일통일을 직접 적용하는 것은 무리가 있겠으나 남북한 통일시에도 체제차이에 의한 토지, 자산 소유권 분쟁은 농업부문의 근본적 문제일 것이다. 이는 미시적이고 구체적으로 고려해봐야 한다.
독일은 토지이용관계의 이용관계 존중의 축이 무시되지 않고 강화됐으며 이는 현지의 농업생산기반의 급격한 붕괴를 막는데에 효과적이었다.
또한 집단소유의 자산 분배 중 농촌사회의 전통적 사회적 만족도를 유지하는 작업도 굉장히 중요했다. 
 

- 북한농지의 사유화 형식을 제안하자면
집단화 되어있는 농경지를 분산화 시켰을 때 비효율적인 면이 발생할 수 있다. 규모의 경제를 유지하면서 경쟁력있는 농업으로서의 도약을 위해서는 주주(shareholder)방식으로 전환하는 것을 적극적으로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구동독의 원소유자 반환방식에서 통일비용이 증가하는 문제와 통일초기의 혼란을 해결하기 위한 대안으로써 의미가 있을 것이다. 통일이 되면 일정기간동안 소유권을 분배해 인센티브를 제공하면서 남한으로의 이주를 방지하고, 기존시설에 대한 지속적 사용과 개편을 통해 농업생산성을 증가시킬 수 있을 것이다.

- 농업구조개편과 정책결정 시 고려해야 할 부분이 있다면
통일 이전 농업의 비중, 노동집약도, 농업경영체구조 등의 초기조건은 정책 선택뿐만 아니라 결과에도 큰 영향을 미치는 요소다. 독일의 경우 통일이 이뤄지는 동안 가격과 교역의 자유화, 재산권 개혁, 농장구조 전환 정책 등이 농업 부문에 큰 변화를 일으켰다. 해당 정책들은 앞서 언급한 초기조건을 기반으로 생산성에 관련된 필수적 요소, 상대가격변화, 재산권 그리고 농업 경영체 구조개혁을 결정했다.
예를 들어 통일이전 협동농장에 속해있던 많은 농장원들은 그들이 속해있던 토지에 대해 한번도 임차료를 지불한 적이 없었다. 농업구조조정법에 의해 새로 농장구성원이 된 사람들은 이전 사용기간의 임차료를 물어야 했다. 이러한 조치는 몰수된 농지나 국유지가 아닌 농장원들이 소유했던 농지만 경작한 경우 무료로 사용하던 사람들이 임차료를 상당금액 지불하게 된 것인데 37년간의 임차료를 지불해야 하는 경우도 있었다.

 - 독일 통일로부터 얻을 수 있는 시사점은
독일농업은 흡수방식의 통일을 겪으며 외부로부터는 경쟁압박, 내부로는 자본주의 체계로의 재편이라는 무거운 정책과제를 떠안았다. 한국농업도 개방 압박 속에서 남북경제교류와 통합을 준비하는 단계에 돌입했다.
현재 남북한의 경제격차는 동서독 통일시점보다 훨씬 큰 상태라 예상되는 통일을 위한 비용(Recovery charge)도 높다. 독일은 막강한 경제력이 기반됐음에도 불구하고 통일 후 통일비용이 예상보다 증가해 서독경제가 침체되는 후유증을 겪었다.
우리나라도 통일 직후 1년 내로 모든 게임이 끝날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독일통일 직후 발생한 급격한 농업구조개편과 농업정책 변화는 좋은 선례가 되어 교훈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구동독의 집단농업이 갖고 있던 비효율성과 생산의 고비용, 과도한 노동력 투자는 농산물가격의 급증을 불렀다. 구서독은 농업경영체중심으로 생산활동을 했으며, 구동독은 곡물과 가축을 분리해 전문화하여 대규모로 생산했다. 실제로 구동독은 협동농장의 일반작물생산 면적으로 보면 곡물과 같은 일반작물의 평균생산규모가 5천ha가 넘는데 반해 원예작물생산은 15ha에 그쳤다. 명령경제체제로부터 마련된 가격정책과 생산체계는 식량을 낭비하게 되는 부작용을 발생시켰는데, 심지어 가축에 남는 빵을 사료로 먹이는 경우도 발생했다.
독일의 사례로 보면 통일 시 계획경제가 자유시장 경제에 적응하기 위한 경영능력을 길러야 하는 것을 기본으로 법과 제도를 지도해줄 전문 관료의 양성이 필요하다. 계획경제시장의 실업증가와 사회불안 발생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농지의 소유권 문제에 대한 정확하고 명료한 제시가 필요하다. 농업의 주형을 한쪽으로 전환 유도 한다고 했을 때 경험미숙은 정책실패를 불러오기 쉬워 현장을 반영한 실효성 있는 정책이 마련되어야 한다.

- 북한과 동독 농업 간 공통점을 찾자면
사회주의 하 공산권의 농업은 일정수준의 최고점을 기록한 후 정체를 보인다. 독일과 한국 모두 1970년대 중반을 기점으로 시장경제가 계획경제를 역전하는 반전이 일어났다. 계획경제는 일정수준까지 빠른 발전을 이룬 뒤 정체기를 맞거나 쇠퇴하게 된다. 반면 시장경제는 느리지만 지속적으로 발전한다는 특징이 있다. 북한농업은 70년대까지 남한의 농업발전을 앞질렀었다. 기술과 장비에 투자가 이뤄지지 않고 생산을 인력에 의지하게 되기 때문이다. 시장에서는 통일 이후 동독 주민마저 경쟁력이 낮은 동독지역의 농산물을 외면하는 일이 발생했다.
다만 남북한은 이념 차이로 적대적 관계를 유지했던 것이 큰 차이점이다. 구동독의 토지 사유화 방법을 북한에 적용하기는 어렵다. 동독은 농민을 조합원이라고 생각했지만 북한은 인적자원의 일부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구동독은 농업 인력의 이탈을 막기 위해 농업개혁을 했다. 농민의 소득을 보장하려 수취가격을 파격적으로 인상했고 실제 가격과 계획된 가격과의 격차는 정부 예산으로 채웠다. 전체 예산의 15%가 소모될 정도였다.

- 남북관계의 변화 측면에서 유의해야 할 것이 있다면
단기적으로 통일보다는 경제협력의 방향으로 남북관계의 변화가 이뤄질 것이라고 예상되며, 경제협력시 모든 것을 단기간에 해결해야 한다는 생각을 지녀야 한다. 빠르면 빠를수록 비용절감이 가능하며 늑장을 부릴수록 통일비용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기 때문이다.
현재 남한의 곡식소비량은 연간 2천만 톤 가량인 반면 북한은 500만톤이라고 한다. 그러나 북한 인구는 남한의 1/4이 아닌 절반이다. 심지어 해당 수치는 저급의 옥수수나 쌀과 같은 식량 차원에서만 계산된 것인데, 채소 과일 등의 원예 농산물에 대한 수요는 반영되어있지 않다.
북한이 남한의 소비구조를 따라가는 데는 채 2년이 걸리지 않을 것이다. 빠르면 1년, 6개월 안으로 함께 소비하며 살아갈 방법을 마련해야 한다.

/김다혜 기자